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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Aug 23. 2023

술꾼과 책임감

평소 나는 먹방을 즐겨보지 않는다. 가끔 보고 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영상에 먹방이 나오면,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잠시 주의 깊게 보지만 등장인물들이 그 음식을 먹으면서 감탄사를 내뱉기 시작하는 장면에서는 보통 영상을 빠르게 감거나 다른 채널로 돌려 버린다. 내가 화면에 나오는 음식을 직접 맛있게 먹어야 의미가 있지, 그 음식을 먹고 있는 저들을 굳이 쳐다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먹을텐데’라는 제목으로 맛집을 소개하면서 가수보다는 먹방·술방 유튜버로 더 유명해지고 있는 성시경의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지는 않고 있는데 배우 하정우와 주지훈이 성시경과 영화 홍보를 빙자한 술자리를 갖는 모습이 나오면서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뜬 영상을 봤다. 보통은 메뉴인 모둠전과 홍어 삼합을 찍은 장면 정도만 잠시 보고 영상을 껐을 텐데 말발이 센 사람들이라 그런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들려서 본격적으로 각 잡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두 배우에게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2015년 결혼 이후로 극장에 가 본 적이 없고(짧게 이유를 말하자면, 외국에 살았고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올라 버린 영화 표 가격에 화들짝 놀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대신 영상을 보면서 두 개의 키워드가 떠올랐다. 이 글의 제목은 그 두 개의 단어를 나열한 것이다.

     

1. 술꾼


영상에 등장하는 세 명이 낮에 만나서 양주 두 병을 거의 비우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다들 주량이 보통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세 명 모두 전날에 술을 상당히 마신 후에 완전히 깨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하정우는 전날 술자리의 마지막 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또한 영상 초반부에는 본인들이 얼마나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시는지를 강조하고 술맛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행동까지 하는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장면을 지켜보고 있자니 ‘정말 술꾼들이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어떤 단어를 쓰는 게 맞을지 고민을 좀 했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단어는 ‘알코올 중독’ 또는 ‘알코올 의존증’이었는데 찾아보니 이 표현은 술을 끊지 못하는, 질병에 가까운 증상이었다. 개인적으로 저 연예인들의 상태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함부로 쓸 말은 아닌 것 같아 그나마 중립적으로 보이는 ‘술꾼’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알코올 중독’이나 ‘알코올 의존증’라는 표현까지 생각했다가 ‘술꾼’으로 바꾸었다고 하니 이들의 음주 행위에 도덕적 심판을 내리는 느낌이 있는데 그걸 의도하지는 않았고 단지 동영상에 나타난 현상을 묘사한 것 뿐이다. 나도 그들 못지않게 폭음을 하는 날이 꽤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이 이들의 음주 행위를 재단할 만한 자리나 상황에 있지도 않다. 다만, ‘연예인은 술을 매일, 많이 마셔야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구나.’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 보는 게 맞겠다.


2. 책임감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얼마 전에는 이병헌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화제가 되었고, 하정우도 영화 홍보를 위해 친분이 깊지는 않았지만 잘 나가는 유튜버인 성시경에게 굳이 연락을 해서 ‘먹을텐데’에 나왔다. 요즘에는 오히려 유명한 배우가 홍보할 작품이 없는데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할 경우 ‘정말 그 프로그램이나 채널을 즐겨 보는 모양이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그동안 이렇게 작품 홍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다 보니 이들이 작품 홍보에 나서는 동기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배우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출연한 영화를 홍보하고 싶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었다.


이 영상에서 하정우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명한 배우들인데도 체면을 구기고 망가져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작품 홍보에 나서는 동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함께 작업한 감독, 동료 배우, 촬영 스태프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영화에 투자해 준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다. 하정우가 유독 책임감이 강한 것인지, 아니면 강한 책임감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명배우가 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화에서 드러난 그의 진정성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나는 하정우만큼의 에이스는 아니지만 과연 나의 위치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주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6/20130506018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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