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승 강경빈 Dec 10. 2019

부부가 각방을 쓴 사연은?

제목만 보고 오해를 할 것 같아 미리 밝히지만 우리 부부는 사이가 좋다. 각방을 쓴 건 사실이지만 4주 후에 만날 일은 절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각방을 써야 했던 이유는 반려견 코코 때문이다. 


코코 (푸들) 2살 / 동일견 맞음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던 일요일 오후..라고 생각했지만 위기는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잘 놀던 코코가 갑자기 다리를 절기 시작한 것. 왼쪽 뒷다리가 아픈지 네발로 딛지를 못하고 세발로 깽깽이걸음을 하는 코코를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머릿속 비상등은 사고를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상황판단에 돌입했다.   

다리를 저는 이유를 두고 최악의 상황부터 최상의 상황까지 유추해 봤는데 최악은 고관절 또는 슬관절 탈구였고 최상은 꾀병이었다. 다리 저는 것 외에 아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골절은 제외.


개 들도 꾀병을 부린다고 하는데 주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함이 그 이유라고 한다. 꾀병인가 싶어, 아니 차라리 꾀병이라 믿고 싶어 코코를 유심히 관찰했지만 꾀병 같진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탈구일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근거 없는 불안감일 뿐이었다. 탈구가 왔다면 평소에 어떤 징후 같은 게 있었을 테니 말이다. 






막연한 불안감에 얼어붙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괜찮을 거라는 행복 회로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다음날이 정기검진 날이라는 것. 내일이면 병원에 간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심을 할 수 있었고 우리 부부는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병원에 가기까지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다고 판단되었다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겠지만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코코는 꼭 우리 부부와 함께 자려고 한다. 예전에 혼자 자는 훈련을 시키려고 시도했었지만 번번이 실패. 그러나 코코가 밤새 침대에서 자는 건 아니다. 중간에 불편한지 혼자 자는 경우도 있고 화장실도 가고 가끔은 혼자 공놀이도 한다. 밤 사이 몇 번이나 침대를 뛰어오르고 내리 고를 반복하는 것,  


평소라면 코코가 침대를 오르내리는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겠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코코를 위해서 라면 어떻게든 침대에 못 올라가게 해야 되는데... 방법은 우리 부부가 거실에서 자는 것 하나뿐이었다. 






다행히도 집에 라텍스 매트릭스가 있기 때문에 거실에서 자는 게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매트릭스가 일인용이라는 점만 빼고서는 말이다. 

둘 중 한 명은 바닥에서 자야 했고 나는 호기롭게 아내에게 매트릭스를 양보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닥에서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몸은 그렇지 않았다. 쉽사리 잠들 수 없었고 보다 못한 아내는 들어가서 침대에서 자는 것을 종용했다. 


아내의 말이 맞다. 이럴 때는 내일의 컨디션을 위해 고집부리지 말고 실리를 취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코코는 아내를 더 따르기 때문에 나를 따라 침대에서 잘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각방을 썼고 숙면을 취한 나와 달리 아내는 퀭한 얼굴이었다. 매트릭스는 편했지만 거실은 많이 추웠다고....이것이 우리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된 사연이다. 


아침이 밝자 우리 부부는 서둘러 코코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고 다행히도 탈구는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람도 발목을 삐끗하듯이 개도 삐끗하는 경우가 있는데 심하면 2주까지도 간다고 하며 진통 소염 주사와 약을 처방받았다. 


개가 주사 맞는 거 본 적이 있는가? 코코는 주사를 맞을 때 표정 변화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개들은 통각을 못 느끼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아니란다. 무리 생활을 하는 개는 약한 개체는 무리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아파도 티를 안 낸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다리를 절 때도 불편해 보이기는 했지만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비록 아픈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아프다는 표현은 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병원을 다녀온 코코는 잘 걸었고 우리 부부는 안심했다. 그리고 집의 환경을 좀 더 친코코적으로 꾸미는데 동의했다. 지금도 거실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있고 여러 면에서 친코코적인 환경이지만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침대다. 지금 쓰고 있는 침대 프레임을 처분하고 저상 프레임으로 교체를 하고 싶은데 하루 이틀 만에 해결하기엔 프레임이 너무 크다..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내다 버리기에도 너무 크다. 침대 옆에 계단을 놓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코코가 계단으로 안 다닐 확률은 거의 100%이기 때문에 침대 높이를 낮추는 것이 최선이다. 


누군가는 개 한 마리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코코를 키우기 전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기에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막상 개를 키우면 그런 생각은 저 멀리 우주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코코가 우리 부부에게 주는 행복, 안정감의 가치는 돈으로도 살 수 없다. 


개를 키우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코코가 없었다면 우리 부부는 불행해졌을 수도 있었기에 코코의 행복은 곧 우리 부부의 행복이다.


병원에 다녀온 후 편하게 뻗은 코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