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해 주세요

정말? 그래도 괜찮은가?

by 강미아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주차요원이 주차빌딩에서 차를 빼주시면 내가 운전대를 잡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면 된다. 그날따라 후진을 해야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병원은 항상 주차요원이 있어 운전 지도를 해준다. 기어를 R에 놓고 앞에서 주차요원이 그대로 뒤로 가라는 수신호를 한다. "더더더~!" 나는 조금씩 계속 뒤로 가다가 "쿵" 그만 기둥 모서리에 살짝 부딪친 것이다. 나는 그저 아저씨의 수신호만 믿고 간 건데 억울해서 창문을 열고 하소연 하였다. "아저씨, 잘못 가르쳐주시면 어떡해요~" 주차요원 아저씨도 난감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다. 어쨌든 내 잘못이니 그냥 속상해하며 집에 왔다.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럴 경우 100프로 운전자 잘못이라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런데도 사고 날 당시에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난 그냥 그 분만 믿었을 뿐인데... 어쨌든 그 뒤로는 주차요원은 거들뿐.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차를 한다.


생각해보니 중요한 결정 혹은 사소한 결정을 남을 믿고 맡겼던 경우가 꽤 있었다. 그 중에서는 미용실에서의 머리 모양(중요하긴 하지만)처럼 시간이 지나면 잊고 되돌릴 수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반대로 그 결정 하나로 지금까지도 문득 생각나면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pexels-daniel-frank-305566.jpg (맨위)Jens Mahnk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위)Daniel Frank 님의 사진, 출처: Pexels


나의 경우에는 치과치료였다. 20대 초반 어느 날 뛰는데 어금니에 뭔가 바람 들어간 것 같이 느껴졌다. 사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불편해서 함께 살던 외할머니께 말하니 집 앞에 새로 생긴 치과가 있는데 한 번 가보자는 것이다. (그 당시 주택가에 있는 한 동 짜리 아파트에 살았기에 시골 분위기의 치과도 오래된 3층 건물에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보시더니 어금니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 같다며 치료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구멍을 메우는 건 줄 알고 "네 그럴게요.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했는데 치료를 받다 보니 너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 거울을 보니 작은 구멍이 있는 것 같다는 그 어금니를 죄다 갈아서 조금밖에 안 남은 것이다! 깜짝 놀라 물어보니 거기에 가짜 어금니를 끼운다고 한다. "네 에에??" 나는 너무 놀랐다. "아까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어. 아까 동의한 줄 알았는데요?" 오 마이 갓. "우와앙~~~~" 나는 울고 말았다. 멀쩡한 내 어금니를 갈아버리다니 이럴 수가!! 젊은 의사 선생님은 당황하고 미안해하시며 치료해주셨다.


pexels-andrea-piacquadio-3779700.jpg Andrea Piacquadio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지금 생각해도 갑자기 열이 올라온다. 의사선생님보다는 20대 초반의 나에게 말이다. 나는 내 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았을까? 2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가짜 어금니가 너무 단단하여 맞닿는 아랫니의 레진 부분을 자꾸 눌러서 닳게 만들고 있다. 그 당시 엄마가 그 얘기를 듣고 "아유~ OO아. 치과는 절대 아무 곳이나 가면 안돼. 특히 개원한 데는 절대 가면 안 되는 건데... 가도 간단한 치료만 하고..."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의사 선생님을 믿고 알아서 해달라는 결과를 평생 지고 가야 하다니... 젊은 의사 선생님이셨는데 알고 보니 우리 할머니는 그 개원의사가 총각이라는 걸 동네 사람에게 듣고 자연스럽게 엮어 주려고 일부러 나를 데려간 것이었다. 결과는 그 뒤로 너무 화가 나서 그 치과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혹시 내가 여우 같았으면 그 핑계로 의사 선생님한테 밥이라도 사달라고 했었을까? 하하하. 그리고 박소현의 러브게임에 사연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알아서 해주세요."


전문가를 믿고 종종 쓰는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오롯이 내가 지고 가야 한다는 것. 이 말을 꺼내기 전에 분명히 남이 알아서 해줘도(망쳐도) 되는 일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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