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한 일본인 여자가 헬싱키에 오니기리를 파는 식당을 연다.하지만 지나다니는 핀란드 사람들은 그녀와 식당을 구경만 하고 지나가고, 가게의 유일한 손님은 일본문화 오타쿠같은 청년이 전부. 그나마도 이 가게의 첫 손님이라며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만 마시고 가버린다.
그러던 여자는 어느 날 서점에서 눈감고 지도를 찍어 핀란드에 오게 됐다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공항에서 분실된 수화물을 기다리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어쩌다보니 함께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
그러면서 낯설기만 했던 주변사람들과 어울리고 제법 장사도 잘 되고, 그 안에서 그들을 치유해주기도 하고, 자신이 치유받기도 하는 그런 영화가 있었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기 전에 자일리톨을 씹습니다
가 그 나라의 이미지의 전부였던 내게 핀란드도 어쩌면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그러고보면 세상은 참 신기한 일투성이다.
막연히 핀란드도 괜찮겠구나 생각했던 내가 몇년이 지난 후에 그 곳에 가있다니 말이다. 이렇게 맘먹은 대로 다니다보면 언젠가 아프리카에도, 뉴욕에도, 몽골의 평원에도, 나우루 공화국에도 가있고, 어느 순간 보면 진짜 세계일주도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카모메 식당’을 보고 헬싱키에 왔지만 진짜 카모메식당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못했었는데 검색을 하다 알아냈다. 카모메식당은 원래 헬싱키에 있는 로컬 식당을 빌려 영화를 찍은 곳이었다. 오니기리(주먹밥)가 메인 메뉴인 가게로 나오는 영화와는 달리 그냥 핀란드 음식을 파는 로컬식당이란다. 하지만 카모메 식당의 그 장소는 실제로 헬싱키에 존재하고 있다.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식당을 찾아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식당을 제외하고는 굳이 영화촬영지를 다 돌 생각은 없었지만전 날의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가 있다. 헬싱키의 모든 관광지는 거의 대부분 카모메식당 촬영지와 가깝거나 관련이 있고, 일단 시내 자체가 작아 하루 안에도 다 돌아볼 수 있다는 것. 일단 특별히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목적지를 삼지 않고 그냥 동네 산책하듯 걸어다니며 보이는 대로 구경해야겠다.
첫 번째 목적지는 ‘디자인 뮤지엄’
요즘 열광하는 북유럽 디자인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근현대의 디자인에서부터 시작해서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도 전시되어 있는 곳을 보며
‘아, 이거 진짜 갖고 싶다. 그런데 비싸고 무겁고 두 달 동안 들고 다니면 깨지겠지’
를 백번 되뇌다 나왔다. 박물관 안 가게도, 근처의 조그만 가게도 들어가는 족족 폭탄이다. 예쁘고 갖고 싶은 것들은 잔뜩한데 비싸고 깨질 것 같은 물건들만 가득하다.비교적 물가가 싼 러시아에서 넘어와서 그랬던 걸까. 체감 가격이 너무 높다. 난 물가 싼 러시아에서조차도 비싸다며 아끼고 다녔던 정말 가난한 여행객인데 말이다. 역시 북유럽은 돈을 많이 벌어서 와야하는 곳이었나 보다. 그랬더라면 죽을때까지 북유럽 근처엔 발도 못 디뎠으려나.
나중에 엄청나게 부자가 되어 다시 올 거라고, 어쩌면 이런 제품은 한국에서 더 싸게 팔지도 모른다며 돌아나와 트램을 타고 카모메 식당으로 향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카모메식당은 로컬식당을 빌려 안의 구조를 약간 달리하고 찍은 영화인데 ‘카모메 식당’을 보고 감동을 얻은 일본인 및 한국인들의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카모메 식당 투어라는 것도 생기고 했었단다. 그래서인지 역시 식당 앞으로 가자마자 그 앞을 찍는 동양인들이 잔뜩하다. 그리고 안에 들어갔더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일본어. 들어가자마자 일본어로 사진 좀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식당 안에는 영화와 달리 사람으로 꽉 차있었다. 어느 투어상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모메식당 할인쿠폰을 꺼내놓고 시켜놓은 음식을 사진찍고 테이블을 배경으로 한 자기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반절 이상이다. 저 사람들도 나처럼 영화 속의 카모메식당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겠지.
그렇지만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와 같은 외관과 같은 벽, 같은 바닥이지만 이곳은 내가 기대했던 그곳은 아니다. 진짜 카모메식당을 찾고 싶다면 스스로 자신만의 카모메식당을 찾는 방법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북유럽치고 싼 가격에 점심도 배부르게 먹은 뒤 길을 나섰다.
일부러 식당근처에서부터는 지도를 펼치지 않았고, 다 먹고 나온 다음에도 내키는 대로 걸어다녔다. 아마 나중에 다시 헬싱키에 갈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때 걸었던 길은 완전히 되짚어 갈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까 타고 왔던 트램길을 되짚어 따라 걷는(다고 생각했던) 길. 조금만 옆 쪽 골목으로 돌아볼까? 저쪽 길로 나서면 바다가 보일 것 같아 하며 걷는 그 길은 공원도 나오고, 바다도 나오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다. 날씨는 맑고 바람은 싸늘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겨울 날씨다. 산책하기에 최고의 날씨다.
혼자 쉬다 걷다 근처의 교회도 구경했다하면서 카우파토리까지 걸었다. 오후 네시가 넘어가는 카우파토리(시장)는 거의 파장분위기였다.
그동안 잊고 있었다. 여긴 칼퇴근 칼휴일의 유럽이라는 걸. 게다가 그 중에서도 복지가 잘 돼있기로 유명한 북유럽이라는 걸.
그래도 그렇지. 네시에 시장의 반절 정도의 좌판이 닫고 들어가버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아직 해도 안 졌는데 말이다.
굉장히 맛있어 보이는 연어가 있었으나 아직도 배가 다 꺼지지 않아 다음 날로 패스하고 또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눈에 익은 길이고 숙소에 가는 트램의 노선도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걷기 좋은 날이어서 더이상 걷기 힘들 때까지 쭉 걸었다. 지치면 잠시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고, 눈이 마주치면 미소지으며 '안녕'하고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한참을 걸었다.
걷는 길이 내가 만난 헬싱키고, 내 카모메식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