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핀란드-산타할아버지 돈 많이 버셨어요?

-로바니에미

by 호빵씨

여름이면 백야가 이어지고 겨울이면 극야가 지속되는 북극권에 위치한 깊고 깊은 핀란드의 시골마을. 벌목을 주업으로 살던 아저씨들에게 어느 날 편지가 배달된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산타클로스, 발신자는 한 꼬맹이였다. 아저씨들은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산타클로스인척 답장을 보내주고, 편지를 받아 신기했던 아이와 주변의 입소문으로 점차 이 시골 마을엔 수신인이 산타클로스인 편지가 많아지게 된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숲 속에 산타클로스 마을을 세우고 오는 편지에 답장도 해주고 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산타마을을 구경시키는데...

이것은 내가 추운 야간열차를 타고 도착한 로바니에미의 산타마을의 기원(?)


추운 기차에서 푹 잔 뒤, 이제 난 온갖 이동수단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인간으로 거듭났다며 신나하던 나는 곧 앞으로 일주일간 일정이 백지상태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고 고민에 빠졌다. 산타마을을 구경한 후 로바니에미에서 묵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저녁 때라도 노르웨이로 떠나버리는 것이 좋을까. 일단은 가자마자 버스터미널에 들러 버스표를 알아보기로 결정하고 기차에서 내렸는데 인포메이션도 터미널의 창구도 모두 문을 닫아 걸고 있다.

왜죠? 하는 기분으로 잠시 날짜를 헤아려 보았다. 내가 도착한 날은 일요일. 배낭을 멘 채로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그 하나로 모든 것을 납득해버렸다.


차 시간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어 왔다갔다 하다가 본 터미널 바깥 핀란드어로 된 버스시간표에서 트롬쇠는 월~토요일까지 운행되는 것 같다는 짐작을 하고 자세한 정보는 이 마을 중앙에 있는 인포메이션으로 가 얻으려 했는데 한참을 걸어간 인포메이션 센터의 문이 닫혀있다. 그리고 앞엔 월~토요일에만 연다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분명 여기가 시내 중심가인거 같은데, 오전 11시가 넘었는데 문 연 가게도 없고 황량하기 그지없다. 어쩐지 이 곳에 눈치없이 일요일에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할 것 같은 이 상황은 뭘까. 일단 문 연 곳이 없어 로바니에미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듯 하여 숙소를 잡으러 호스텔에 갔다.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싱글룸밖에 없단다. 헉, 안그래도 물가비싼 북유럽인데. 그러나 오랜만에 방에서 혼자 잔다는 사실은 기뻤다.

타올까지 제공되는 오랜만의 싱글룸에 들어가자마자 산타마을이고 뭐고 간에 다 포기하고 그냥 방에서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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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놀다가 결국 마음을 다잡고 밖으로 나와 리셉션 아가씨에게 관광지도를 받고 산타마을 가는 방법을 물어본 후 정류장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산타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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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엔 산타마을까지 거리가 8Km라고 적혀있어 잠시 걸어볼까도 고민했는데 차타고 가다보니 이십분 넘게 달리는 것 같다. 어딜봐서 그 거리를 8Km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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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산타마을은 눈도 오지 않았고 규모도 작고 거의 대부분이 기념품 가게다.

누가 북쪽은 10월초부터 눈이 내린다 했던가. 하지만 확실히 북쪽으로 와서인지 기온은 0도로 떨어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빈 몸으로 나온다며 손바닥만한 가방하나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장갑을 빼먹어서 손이 시리다.



산타마을엔 산타클로스와 엘프가 산다는 것 외에도 또다른 특색이 있다.

바로 북위 66°33‘지점인 북극권(arctic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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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의 설명으로는 이 지점을 중심으로 북반구의 한대와 온대를 구분하며 이 지점을 중심으로 여름엔 낮이 계속 이어지는 백야, 겨울엔 밤이 지속되는 극야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또 이 북극권에서는 겨울에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다고.

그러나 10월 초에 이 북극권을 방문한 내게는 백야도, 극야도, 오로라도 해당사항은 없었다. 극야와 한겨울의 북유럽의 추위는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오로라를 포기해야하는 것이다. 뭐, 겨울에 와도 오로라는 보기 힘들다던데라며 자신을 위로했지만 사실 오로라는 매우 아쉬웠다.

정말 북유럽은 나중에 돈 벌어서 다시 와야하는 건가.

(라고 한 뒤 몇년 후에 오로라보러 알래스카에 다녀왔다. 뜬금없는 자랑이지만 오로라는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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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어린이들이 산타에게 보낸 편지가 도착하고, 엽서를 보낼 수도 있는 산타우체국에 들렀다.

이 우체국에는 두 개의 우체통이 있다.

하나는 다음 크리스마스쯤 맞춰 배달해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배달해주는 것. 엽서와 우표를 사고 두 우체통을 골라 넣으면 원하는 대로 배달해준다. 한국의 친구에게 크리스마스에 맞춰 배달해주는 엽서를 쓰고 그 옆에 위치한 산타사무실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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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와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산타사무실은 입구에서 개인 사진촬영을 금지시켰다. 대신 산타를 만난 모든 사람은 엘프가 자신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는데 원하면 살 수 있다. 당연히 비싸다.

어두컴컴한 사무실에 들어가자 제일 먼저 시계의 커다란 태엽 모형이 있었다.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 시계로 전 세계의 시간을 멈추고 선물을 배달한다는 그런 얘기라고 했다. 그렇게 캐럴을 따라 어두운 계단을 올라 산타를 만나러 갔다.

아마도 어린이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산타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고, 인사하고, 그 앞에 있는 엘프가 ‘강남스타일’을 외치며 사진을 찍어준 것이 전부.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할 말이 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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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우체국에도 가고 산타사무실에도 갔으니 이제 산타마을 자체는 다 둘러본 거 같아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다 순록육포와 순록통조림과 순록살라미를 발견했다.

아, 산타마을의 순록은 살아서는 애들에게 선물을 배달하며 혹사당하다 죽어서는 이렇게 육가공품이 되어 관광객에게 팔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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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그나마 만만한 순록육포를 사 산타마을 뒤편의 숲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기차에서 초콜릿 몇 조각말고는 먹은게 없어 배고파 뜯었지만 짜고 희한한 맛이 난다.

아무래도 배가 좀 더 고파야 맛있게 먹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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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록고기를 씹으며 숲을 걷기 시작했다. 산타마을은 여러모로 기대에 못 미쳤지만 이 숲은 마음에 든다. 계속 먹으니 순록 고기도 먹을만 한데다 배도 부른 것 같다. 그래도 역시 육포라면 소고기지만.

이런 기분으로는 하루종일도 걸어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일요일, 산타마을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도 일찍 끝나버린단다.

이런, 노동자의 복지를 중요시 여기는 북유럽 같으니라고.


그렇게 숲을 산책하다 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오후 다섯시가 다 돼가자 하루 종일 제대로 된 걸 먹지 못한 몸이 배고프다고 난리다. 그러나 여기는 일요일의 북유럽.

식당도 슈퍼마켓도 문을 연 곳이 거의 없다. 예전에 첫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유럽의 대부분의 가게가 일요일에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강제로 하루 종일 굶었던 기억이 불길하게 되살아나던 무렵, 내 옆으로 맥도날드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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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냥 맥도날드가 아닌 지구 최북단의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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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맥도날드고, 햄버거맛은 어디나와 비슷했지만 오늘은 다행히 굶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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