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장 피에 드 포르
새벽같이 일어나 아슬아슬하게 기차를 잡아타고 생장으로 향하는 아침. 차창으로 고흐의 그림같은 풍경이 옆으로 펼쳐지는데, 아침으로 맛있는 살구파이도 먹었고, 아껴뒀던 무한도전도 연속으로 봤는데 생각보다 신나지 않았다.
바욘역에서 내려 생장까지 가는 열차를 갈아타려 기다렸다. 비오는 역에서 나가기 싫어 플랫폼에서 기다리는데 옆자리의 일본인 부부가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생장까지 간단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혹시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냐고 물었더니 알고 있긴 하지만 걸으러 가는 건 아니란다. 실망이다. 어쩌면 동행이 생길 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었는데.
삼십분쯤 기다리자 두칸짜리 작은 기차가 도착했다. 열차에 올라 트레킹 차림을 한 사람을 찾았다. 10월 말이 다 돼가서 그랬던 걸까. 이 기차엔 사람이 별로 없다. 아마도 산티아고까지 걸으려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이 있는데 프랑스어밖에 못하는 듯 싶다.
생장에 내리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했다. 가장 먼저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등록이든 정보를 얻든 하고, 순례자들의 숙소라는 알베르게를 찾아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엔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아, 난 침낭이 없으니 근처 가게에 들러 침낭도 우비도 하나씩 사둬야하는구나.
주변에 영어할 수 있는 사람의 비중이 점점 낮아지는 듯 싶어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역에 내려 길을 찾아야 한다면 어떻게 물어볼지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때 생각났다. 생장에 내려 제일 먼저 찾아가야 하는 순례자사무실이 뭔지 영어로든 불어로든 스페인어로든 알고있지 않았다. 순례자는 도대체 영어로 뭐지? 제대로 찾아갈 수는 있는 걸까? (참고로 순례자는 영어로는 pilgrim, 스페인어로는 peregrino였다. 스페인어로 여자 순례자는 페레그리나라고 했던듯 싶었는데 그냥 대부분 페레그리노라고 하면 알아듣는 분위기)
점점 더 무거워지는 마음 옆으로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이 지나갔다. 하나밖에 없는 기찻길 옆으론 나뭇가지가 무성하게 늘어져 계속 창문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풍경은 예쁘긴 했지만 마음탓인지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그렇게 생장역에 도착해 아까 기차에서 봤던 배낭 멘 아저씨들을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쫓아가고 있는데 바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상징인 조가비 모양을 발견했다. 그걸 따라 걸었더니 배낭을 멘 사람들이 다들 그 쪽으로 걷고 있다. 아마도 이곳이 순례자사무실인가 싶은 곳으로.
도착한 사무실엔 인상좋은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줬지만 불어밖에 못한다. 파리에서 한 번도 쓰지않았던 ‘빠흘레 부 장글레?’ ‘주 느 빠흘레 빠 프랑세즈’가 아주 유용하게 쓰였지만 문제는 그 이후론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생각해보면 그렇다. 낯선 외국인이 와서 "혹시 독일어할 줄 알아요?" "난 한국말 못해요"라고 하면 아, 이 친구는 한국어를 못하는구나 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독일어패치를 깔고 그가 원하는 정보를 줄 순 없는 노릇이니까.
옆에 아저씨의 통역으로 대충대충 수속은 마치고 크레덴셜과 알베르게 위치가 적혀있는 종이와 등고선이 표시된 종이를 얻고 첫날 알베르게까지 수속을 마쳤다. 그러나 다음 혹시 산티아고로 짐을 미리 부쳐둘 수 있는지, 거기서 언제까지 내 짐을 맡아주는 지를 물었더니 통역해주는 아저씨가 자신은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단다.
한참을 손짓발짓과 그림을 그려 설명해보려 했지만 아무도 내 얘기를 이해하지 못했고 친절한 할머니는 통역해 준 아저씨를 통해 한시간 뒤엔 영어할 줄 아는 사람이 사무실에 온다며 그 때 다시 오라고 얘기해줬다.
찾아간 첫 알베르게의 할머니 역시 프랑스어밖에 못한다. 게다가 와이파이도 안 된다. 주변에 혹시 동양인이 있는지를 찾았지만 아무도 없다. 아까 사무실에서 잠깐 기다리며 본 방명록엔 3~4일 전 날짜에 한국인 이름은 많은데 그 이후로는 보이지 않았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한국인이 많다 그랬었는데, 여기서 동양인을 만나면 90%는 한국인이라고 들었었는데.
낯선 곳에 정보도 없이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리고 그곳에 인포메이션 센터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얼마전부터 내가 익힌 유용한 대처법은 '한국인을 찾는다'였다. 일단 말이 잘 통하니 정보를 얻는 것도 쉽고,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어오는지 처음 와 본 동네의 볼거리부터 맛집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몇마디 붙여보면 나처럼 어리바리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티가 나는지 추천 코스까지 얘기해주곤 했다. 아아, 그러니까 이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이날 오후는 한국인을 찾아야했다.
점점 더 불안한 마음으로 근처 상점에 침낭과 우비를 사러 갔다. 여기에 오면 뭔가 싸게 파는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비싸다. 그냥 한국에서 사올 걸 그랬나보다. 물건을 사고 아저씨에게 물었다.
여기 우체국이 있는지, 산티아고에 짐을 부치면 언제까지 맡아주는지,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 근처에 슈퍼는 어디 있는지.
아저씨는 대답해줬다.
우체국이 있긴 하지만 오늘은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고, 산티아고에 짐을 부치면 언제까지 맡아주는지는 모르겠으며, 내일 출발해 다음 알베르게까지 10시간 넘게 걸어가야 하는데 9시에 문 여는 우체국에 들러 짐을 부치고 가면 너무 늦을 것이고, 오늘은 일요일이라 이 동네의 슈퍼는 문을 다 닫았다고 얘기해줬다. 아, 이놈의 유럽의 일요일.
고맙다고 인사하는 내게 아저씨는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고 말해줬다. 눈에 물음표를 백만개 띄우고 다시 쳐다보자 아저씨가 설명해줬다. 잘 걸으라는 여기의 인사라고, 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면 ‘부엔 까미노’하며 인사해 주는 거라고. 그러고보니 뭐 그런 비슷한 얘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히말라야 트레킹할 때 사람들을 만나면 ‘나마스떼’하고 인사하는 것과 비슷한 건가 보다.
지나가는 한국인도 찾아볼 겸 물건을 사들고 근처를 돌아다녔다. 생장은 동화 속 동네처럼, 과거에서 시간이 멈춘 듯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양떼가 있는 목장근처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돌아오며 전망대에 올라가는 길에 아까 기차에서 만났던 일본인 부부를 만났다. 마치 십년지기처럼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 다녀온 데를 추천해주고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 들렀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짐 정리를 어느정도 마치고 나니 배가 고파왔다. 전자렌지만 있어도 밥을 해먹을 수 있는데 이 알베르게는 취사할 수 있는 시설은 없는 것 같다. 일요일이라 동네의 모든 슈퍼는 문을 닫았다고 했는데. 골목을 걸어다닐 때 언뜻 빵집을 본 듯도 싶어 찾으러 나섰다. 그러나 역시 일요일의 유럽. 문을 연 곳이 거의 없다. 이쯤에 빵집이 있었던 것 같은데 라며 헤매고 있는 내 옆으로 동양인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만나는 동양인의 90%는 한국인이다’라는 정보가 스쳐갔다. 동양인=한국인=지금 불안한 기분을 종식시켜줄 수 있는 정보원의 등식이 눈앞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원래 낯가림이 심해 낯선사람에겐 말도 잘 못 걸지만 지금은 더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저, 혹시 한국분이세요?
하고 묻자 이 청년, 뭔가 복잡한 얼굴을 하더니 대답한다.
-네. 한국분이예요.
엇? 뭔가 이상한데 싶었지만 일단 한국말은 하는 것 같으니 빵집의 위치를 물어봤다. 역시나 내가 헤맸던 그 근처에 빵집이 있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이 친구 한국인이라기엔 한국말을 너무 못한다.
-저, 그런데 어디서 오셨어요?
라고 묻자
-아, 뉴욕에서 왔어요.
란다. 역시 그랬던 거였다. 오늘 유일하게 만난 한국인이었지만, 한국말을 잘 못하는 데다 잠시 얘기를 나눠보니 굳이 나보다 더 나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고맙다고 잘 가라고 인사한 뒤 빵집을 찾아갔더니 닫혀있는 문. 일요일을 대비한 식량사두기.
걷는 동안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의 리스트가 하나 추가되었다.
‘배가 고파’라고 중얼대며 아까 갔던 목장 근처로 걸어갔다. 걷고 있을 때 목장근처 길에 밤이 잔뜩 떨어져 있는 것을 봤었기 때문. 어차피 여기서 저녁을 먹긴 틀린 것 같아 밤을 주웠다. 한주먹 넘게 밤을 주우며 난 왜 먼 프랑스 땅까지 와서 밤을 줍고 있는 걸까 잠시 고민을.
돌아와 밤을 까먹고 그래도 배고파 내일 아침은 밥을 잔뜩 먹겠다며 다짐하며 잠들었다.
이제 아무런 정보가 없는 나는 끝까지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800킬로미터를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이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