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까미노데산티아고-눈물의 피레네 산맥

-생장 피에 드 포르-론세스바예스

by 호빵씨

긴 길을 떠나기 전날 밤. 이제는 걸어야 한다며 짐정리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나올 때 이미 내 배낭은 14킬로그램이었다. 여행지는 이집트에서 러시아, 북유럽까지 있었고 계절은 가을부터 시작해 한해의 마지막쯤에 끝나는 여정이었다. 배낭엔 여름옷부터 겨울옷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고, 혹시 심심할까 챙겨온 가전제품들은 스마트폰에 태블릿pc에 당장 필요없는 것들이 이것저것 많았다. 그리고 그 전에 들렀던 나라에서 이것저것 기념품을 사기 시작해 가방 무게는 점점 늘어날뿐 줄어들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800KM를 걸을 수는 없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는 일종의 서비스같은 것을 제공한다.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우체국으로 자신의 짐을 부쳐놓으면 나중에 길을 걷고나서 우체국에 들러 자신의 짐을 찾아갈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중간에 내가 오늘 가려는 마을 알베르게에 택시나 기타 교통수단으로 짐을 미리 보내둔다든지하는 짐을 가볍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은 이래저래 찾아보면 많이 있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짐과 기념품을 정리하자 짐은 크게 세개로 나뉘었다. 한국에 부쳐야하는 짐(기념품, 정말 필요없는 것들),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보내는 짐(당장은 필요없으나 나중에 쓸만한), 들고 걸어야 하는 큰 배낭. 아침에 일어나면 우체국에 들러 짐 두개를 보내고 큰 배낭을 들고 걸으면 된다.

라는 계획을 세워놓고 침대에 누웠지만 배고파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던 나는 갑자기 감상에 빠져들었다.

산티아고까지 들고가는 이 배낭은 어쩌면 내가 가진 욕심 혹은 인생의 무게이지 않을까. 이게 내가 들고 걸어야 하는 인생의 무게라면 아예 있는 모든 것을 짊어지고 힘들게 걸을 때 오히려 더 느끼는 것이 많지 않을까. (지금은 깊이 후회한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산티아고로 미리 부칠 짐을 다시 큰 배낭에 넣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아주 깊이 후회한다)


그렇게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든 생장의 첫날 밤이 지나갔다. 이게 대체 무슨 궁상이람.

배가 고파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알베르게에서 제공해 주는 밥을 먹으러 나왔다. 거창한 식사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간소한 아침식사를 줬다. 빵과 잼, 대접에 차 한 잔. 빵이라도 많이 먹겠다며 열심히 먹고있는 내게 누군가 인사를 한다.

전날 길을 물어봤던 뉴욕에서 온 청년이다. 이 친구도 이 알베르게에서 묵었었나보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니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듯 옆 사람이 자리를 비켜줬고, 어쩌다보니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있고, 옆자리에 앉았으니 뭔가 얘기라도 해야할 듯 싶어 이름을 물었다. 주변이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다.

뭐, 이 친구는 아침 일찍 출발한다니 그닥 다시 볼 일은 없을 듯 싶어 되묻진 않았다. 이 친구도 내이름을 제대로 들은 것 같진 않았지만 다시 묻지 않는 걸로 봐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밥을 먹자마자 사람들은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프랑스의 국경을 넘어 스페인의 론세스바예스까지 도착하는 첫 날은 국경을 접한 피레네산맥을 넘어야 한단다. 어제 사무실에서 나눠준 종이에 따르면 생장과 이 마을은 27Km가 떨어져 있단다. 빈 몸으로 평지를 걷는다면 5~6시간이면 충분히 걷겠지만 산길로 배낭을 멘 채로 걸어야 하기 때문에 몇 시간이 걸릴지 짐작하기 힘든 상황이다. 혼자 걷는데다 손전등도 없어 날이 어두워지면 대략 난감해지니 기를 쓰고 해가 지기 전까지는 다음 알베르게에 들어가야 한다.


어제 론세스바예스까지 10시간 이상 걸린다던 상점 아저씨의 충고가 기억나 우체국을 포기하고 이 사람들을 따라 일찍 걸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며 순례자사무실에 들렀다. 그리고 우체국은 언제 여는지, 다음 마을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가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우체국은 아침 9시에 열고, 다음 마을까지는 8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고, 가는 길은 산을 올라 가는 길이 있고 평지를 걸어가는 길이 있단다. 마을을 벗어나 나오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산, 오른쪽으로 가면 평지라고.

8시간과 10시간은 엄청난 차이가 있어 누구의 말을 믿어야하는가 싶긴 했지만 원래 나는 잘 걷는 축에 속하니 늦어도 9시간 정도면 걷지 않을까 싶어 우체국에 들렀다 가기로 결정했다. 사무실에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시 한 번 방명록을 읽었다. 역시나 최근 3~4일의 한국인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갔던 시기가 비수기여서(10월 중순) 더 사람이 없었던 듯 싶기도 했다. 어제 알베르게도 거리도 그렇게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동양인의 90%가 한국인이라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나는 과연 한국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사무실에서 할 일 없이 기다리다 나와 우체국 앞으로 가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며 날이 밝아지는 것을 봤다.

가서 무사히 짐도 부치고 이제 월요일이라 문을 연 근처 가게에서 점심으로 먹을 비스켓도 사들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살짝 두근거렸다.

이제 까미노 데 산티아고다.



전 날 생장에서 수속을 마쳤을때 크레덴셜과 함께 종이를 세 장 나눠줬다. 한 장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산에 대한 안내문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게 ‘수렵기간은 10월까지’라는 얘기까지만 읽고 나머지는 귀찮아서 안 읽었다) 

한 장은 불어로 된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의 알베르게 정보가 적혀있는 종이,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34일 일정으로 짜여진 일정표와 등고선이다.

그러나 그동안 지도에 익숙해진 나는 알베르게 정보와 일정표를 보며 이것이 의미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도 못한 채 일단 걷겠다며 시작한 것이다.

아홉시 반쯤 뒤늦게 출발하자 산길엔 아무도 없었다. 조금 빨리 걷다보면 만나겠지 혹은 아까 우체국에서 봤던 사람들을 곧 만날 수 있겠지라며 별다른 위기의식없이 갈림길에 도착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피레네산맥을 넘어가는 왼쪽 길이냐, 평지로 우회하는 오른쪽 길이냐.

그 순간 어젯밤 다 싸놓았던 산티아고행 짐을 다시 배낭에 넣게 만들었던 감수성 충만한 자아가 또 튀어나왔다. 기껏 고생하러 가는 거 제대로 한 번 고생해 보자고.

산을 넘는다고 하니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올리며 크나큰 결심을 했는데 의외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거의 대부분 포장되어 있는 길이고 오르막길의 경사도 그리 높지 않다. 이 정도면 갈만하다 싶었는데 몇시간이 지나도록 내리막길 하나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오르막.

평지도 내리막도 잘 걷는 내 유일한 취약점은 오르막인데 말이다. 사실 그래서 산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거였다.

저 배낭은 앞의 작은 것과 뒤의 큰 것이 분리되는 모양. 예정대로였다면 저 배낭 부피의 절반정도는 떼어져 산티아고로 향하고 있어야 했다.

어젯밤 보내지 않았던 그 배낭은 점점 무거워진다. 어깨가 빠질 것 같다.

무엇보다 적응이 안 되는 건 길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 수렵기간이라더니 저멀리 산 속에서 총소리는 들리고, 사람은 없고, 지나다니는 차는 가끔 엄청 과속으로 달려 위협적이고, 오르막길은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아침에 물을 꽉꽉 눌러담아 나왔는데도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그대로 받으며 걷다보니 금세 동이 나버린다. 중간에 식수대를 한 번 만나 물을 담았는데도 곧 비웠다. 끝없는 오르막을 갈증과 함께 걷고 있는데 시냇물이 유독 눈에 잘 들어왔다.

유럽의 물은 석회수이기 때문에 되도록 생수를 사먹어야 하고, 원래 한국에서도 시냇물은 안 떠먹었고, 이제 곧 식수대가 나올 거라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이해시키려 노력했으나,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낭은 길 위에 벗어던지고 냇가로 내려가 물을 뜨고 있었다. 아, 전날 밤 주워먹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 여행은 점점 야생이 되어가고 있다.

여섯 시간 넘게 오르막을 오르자 드디어 내리막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호한 것도 잠시. 기껏 나온 내리막은 예상외로 너무 가파르다. 등산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치 않아 맨 몸으로 온 나는 등산스틱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중에 일정표에 익숙해지게 된 다음에 그 의미를 파악하고 정말 무식하니 용감했구나를 느꼈던게,

알고보니 첫날은 27킬로미터 해발 200미터 지점에서 해발 1400미터까지 올라갔다 900미터 지점까지 내려오는 코스다.

그 중 초반 21킬로미터 동안 1200미터를 쭉 올라간 다음 나머지 6킬로미터 동안 500미터를 급경사로 내려와야한다는 의미였다. 저 모양만 봐도 올라가는 길도 내려가는 길도 굉장히 급경사같아 보이지 않는가. 실제로도 급경사였다. 게다가 내리막길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슬슬 날이 꾸물꾸물해지며 급기야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무식하고 용감하게 출발했던 첫날이라 전날 구입한 우비는 배낭 깊숙이 박아놓은 상태였다. 우비를 꺼내려면 배낭을 완전히 다 풀고 맨 밑바닥에 깔린 우비를 꺼낸 후 다시 짐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도저히 그 짐을 다 헤집으며 우비를 꺼내는 것은 불가능하여 그냥 내리는 비를 다 맞으며 얼른 도착해야겠단 생각만 하며 급하게 걷기 시작했다. 거기에 첫날 입고 있던 옷은 면 후드티. 내리는 비에 옷이 젖어들며 점차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적 없는 길에서 사라져 아무도 내가 사라진 걸 모르겠구나 싶으며 몸은 지쳐가지만 발걸음은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무릎 정도로 낙엽이 쌓인 길을 막 지날 무렵, 이어진 황토길에서 그대로 미끄러졌다. 낙엽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신경을 쓰다 막 방심한 상태라 어이없을 정도로 넘어지며 오른쪽에 어깨에 멘 카메라와 함께 몸 반절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넘어지고 나서도 어라, 내가 왜 넘어졌지 싶을 정도로 사태파악이 안 됐다. 몸 절반이 그대로 처박혀 아프기도 아팠지만 그렇다고 마냥 쉬고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해가 질테고, 나는 손전등이 없으며, 옷은 이미 젖었다. 얼른 흙을 털고 다시 출발해야지 싶었는데 이미 젖어 달라붙은 흙은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하아,

이쯤 되면 전날밤부터 아침까지 기세를 떨치던 감수성 충만한 자아가 비난받을 차례다. 왜 굳이 무리를 하며 짐을 다 짊어지고 이 산길을 올랐으며, 굳이 평지로 갈 수도 있는 길을 사서 고생한답시고 이렇게 기어이 올라왔던 건가.

그리고 인간의 장점은 학습능력이 있다는 거 아닌가. 왜 나는 히말라야에서 그 개고생을 하고도 가방은 가볍게, 우비는 짐 제일 위에, 옷은 기능성으로의 수칙을 기억하지 못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1년 전에 히말라야 푼힐 트레킹을 다녀왔었는데 그때 기능성 의류들을 허세라고 비웃으며 면티입고 산에 올랐다 중간에 비맞고 땀흘린 것이 식으면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무엇보다 푼힐 내려오며 내 인생의 산은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결심해 놓고서 왜 금세 다 잊어버렸던 걸까.

(그리고 나는 까미노길이 내 인생 마지막 산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해인가에 다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오게 된다. 내 쓸데없이 감수성 충만한 자아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듯 싶다)


그렇게 온 몸은 비와 땀으로 젖고 거기에 몸 반절은 흙투성이가 되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해가 지기 전에는 도착해야겠다는 필살의 의지로 일곱시가 다 되어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무렵에 겨우 첫날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정말이지 대장정이었다.


누가 봐도 곧 죽을 것 같이 도착했는지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수속을 밟으려는 내게 자원봉사자들 무리가 달려와 일단은 여기 앉아 쉬라며, 팔은 괜찮냐며, 다친 데는 괜찮냐며 말을 걸며 자신들이 들고있는 저울로 배낭무게를 쟀다. 그리고 다함께 이 짐에서 4킬로그램은 빼야한다고,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들고 왔냐며 경악했다.

그게 다 쓸데없이 감수성 충만한 자아를 갖고 있는 죄랍니다.

샤워를 하고 도저히 손빨래할 기분도 체력도 나지 않아 흙투성이가 된 옷을 세탁 맡기고, 역시 뭘 먹으러 밖에 나갈 체력이 안 돼 밥을 해 먹으러 주방에서 쌀을 씻고 있는데 바깥에서 누가 ‘안녕하세요’하며 지나간다. 아침에 숙소에서 다시 만났던 뉴욕에서 온 청년이다. 얘는 밥 먹자마자 출발해 오후 세시에 도착했단다.

팔팔한 얼굴로 ‘이제 밥 먹으러 가야죠’하며 나가는데 세상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밥을 먹고 나서 배가 고파 자판기에서 음식을 사다 먹고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온 다음엔 버려둘 짐을 정리했다.

네 켤레의 양말 중 두 켤레를 버리고, 헤어컨디셔너를 버리고, 모기기피제와 핫 팩 같은 것들을 버렸다. 양말은 오래 걸어야 해서 제일 두껍고 좋은 걸 챙겨왔었고, 컨디셔너는 뻣뻣한 머리를 견딜 수 없어 러시아에서 꽤 큰 돈을 주고 샀던 거며, 모기기피제는 천연제품이고, 하는 이유들이 떠올랐지만 사소한 이유들로 무거워져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미련은 아주 조금 덜 수 있었다.

나중에 걷다 같은 이유로 몇번 더 짐을 버렸다.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는 것을 들고간다고 생각했지만 몇번씩이나 버릴 짐은 나왔고 그때마다 남은 미련의 크기는 처음보다 더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했지만 마지막까지 내 가방은 다른 사람들보다 무거웠다.


걷다보면 이 무게에도 어느새 적응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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