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을 때 필요한 것
비록 지금은 꿀팁 하나 없는 여행기를 쓰고 있지만, 사실 까미노를 걸을 때만 하더라도 돌아가면 이 조언을 모든 사람에게 해주고 싶다는 열망이 넘쳤었다.
그 계기가 됐던 것은 애증의 내 배낭.
앞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결국 14킬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이후 한 달 가까이를 걷게 됐다. 그리고 아마도 유유상종인지, 주변에는 은근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우리는 늘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게 이렇게 힘든데 살이 찌면 얼마나 힘들겠냐며 살은 찌우지 말자고 다짐했고(결국 여행이후 배낭무게만큼 살이 쪘다. 내 무릎ㅠㅠ) 길을 걷는 다른 사람들이 단촐한 배낭을 들고 걷고 있을때 저 짐엔 대체 뭐가 들어있길래 저 크기, 저 무게가 가능한거냐며 부러워했다. 길이 중반 이후로 접어들수록 그 대화의 빈도가 잦아졌는데 무거운 짐을 저주하며 우리는 만약 다음번에 산티아고에 또 가게 된다면 이것은 꼭 가져가야지, 가져가지 말아야지를 토론하곤 했다. 아래는 그렇게 해서 나왔던 가을에 떠나는 산티아고 길의 추천목록과 비추천목록이다.
즉 한마디로 하자면 '개고생을 통해 체득한, 영혼으로 추천하는 리스트'라고나 할까.
짐이 가볍다고 해서 마냥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은 아니지만, 짐이 무거우면 길은 몇 배쯤 더 어려워진다. 길을 걸을 때 배낭의 무게는 7~8kg내외를 추천한다.
산티아고길만 걷기 위해 온 사람들은 대체로 이 무게가 가능하지만 중간에 까미노 일정이 있는 장기여행자들에게 7~8kg를 맞추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내 주변에 가방 무거운 사람들을 보면 막 1년의 세계일주를 시작하는 친구, 1년간 어학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까미노를 걷는 친구, 장기여행의 중간에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가방의 무게가 줄어들지 않는다 싶으면 산티아고 우체국에 당장 안 쓰는 짐을 보내놓자. 막상 볼 때는 다 필요한 듯 싶지만 없어도 어찌 해결은 된다. 까미노는 혼자만 걷는 길도 아니고 오지도 아니다. (주변에 슈퍼가 잘 없긴 하지만) 이게 이렇게 필요할 줄 몰랐었는데 싶은 것들은 주변에 빌리거나 현지에서 살 수 있다. 필요한 모든 것이 나오는 만능배낭을 가져갈 필요는 없다.
안 쓰는 짐을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기준은 사용빈도. 삼일에 한번 정도도 사용하지 않을듯 싶으면 그 물건은 필요없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가방에 넣기 전에 좀 더 고민해보자.
'우선순위로 투자한다'는 의미가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이 물품들만은 질이 좋은 것들로, 기능성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적당할듯 싶다. 몇번 쓰지 않을 물품에 돈을 들이기 아깝다면 신발, 우비를 제외하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빌리는 것이나 중고로 사는 것도 괜찮다.
-배낭
배낭 때문에 까미노 내내 고생했던 1인으로 배낭이 그렇게 중요한지 까미노를 걷기 전까진 몰랐다. 배낭은 웬만하면 인터넷말고 직접 가서 메보고(그래도 잘은 모르겠더라만) 결정하자. 내 가방은 40리터의 배낭 앞에 20리터의 배낭을 매달고 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숙소까지 60리터 배낭을 들고 이동한 다음 숙소에 40리터부분은 두고 작은 배낭만 들고 다녀 편리했다.
하지만 까미노에서는 이게 잘못된 선택이었던게 가방과 가방을 엮다보니 필연적으로 배낭이 등뒤로 솟아오르게 됐다. 그러다보니 무게중심이 뒤쪽에 쏠리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허리를 굽히거나 몸을 숙이고 다니게 되고 이 자세가 계속 이어지다 중반부터는 큰 고생이 시작된거다. 허리끈이 튼튼하고, 가방을 멨을 때 납작하게 등에 밀착되는 형태인 걸로 구하자.
또, 배낭은 어깨가 아니라 허리로 메는 것이다. 허리끈이 얼마나 무게를 분산해 줄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 팁으로 짐을 쌀 땐 무겁고 사용빈도가 낮은 것들은 가방의 맨 아래, 등쪽에 붙여서 싸고, 가볍거나 사용빈도가 높은 것은 위쪽으로 넣어야 한다. 사용빈도가 극히 높은 것들은(예를 들어 물병이라든지 우비라든지) 손을 뻗어 바로 집을 수 있는 위치에 넣으면 좋다.
-신발
까미노는 산, 도로, 흙길 등 다양한 길을 걷기 때문에 이 모든 길을 커버할 수 있는 신발을 사는 것이 좋다. 출발하기 전에 충분히 신어 길을 들여놓고, 두꺼운 양말을 신었을 때의 사이즈에 맞춰 신발을 사고, 걸을때 발목을 잘 조이며, 잘 말려주는 것이 물집을 줄이는 길이다. 나는 전부터 있던 코브라 트레킹화를 신고 등산양말을 주로 신었는데 그나마 물집이 덜 잡힌 편이어서 만족했다. 이건 정말 돈 들여 꼭 사가세요!라고 백번 얘기하고 싶은 물품!
-침낭
까미노는 춥다. 실내에서 자니 여름용 침낭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실내에서 자도 얼어죽을만큼 추울 수 있다는 걸 거기서 알았다. 알베르게는 가끔 방안에 히터가 없는 곳도 있으며, 있다 하더라도 추운 곳이 많다. 따뜻하고 아늑한 숙소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몸이 천근만근으로 피로해 자는데 추워서 새벽에 수십번씩 깨는 기분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몹시 슬프다. 베드벅때문인지 거의 대부분의 알베르게에서는 이불을 제공하지 않고 설사 이불을 제공한다 해도 별로 쓰고싶지 않은 모습이 대부분이라 따뜻한 침낭은 필수. 아, 하지만 부피가 크지 않고 가벼운 것을 사야 짐 전체 무게가 줄어든다.
-우비
이건 계절에 따라 약간씩 다르긴 하다. 여름에서 초가을쯤에 걸었던 사람들 중에는 우비를 한 번도 입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갔던 10월 중순에는 정말 비가 오지게 왔다. 평생 맞을 비를 다 맞고 걸은 것처럼 맞고 왔다. 굉장히 두껍고 튼튼한 우비를 (바가지써서) 샀지만 수백번 입고 벗었다를 반복하다보니 마지막엔 좀 얇아진 듯 싶고 판초우의의 목부분이 살짝 찢어졌다(이건 단지 내 머리가 큰 탓인가) 비싸고 싸고를 떠나 몇십 몇백번을 쓰고 벗고 하다보면 얇은 제품들은 찢어지기 쉽다. 두껍고 튼튼한 걸로 사자. (그래서 어쩌라고 싶긴 하지만 두꺼운 건 무겁다는 단점은 있다)
-비닐봉지
환전했더니 사은품으로 비닐팩 20장이 들어있는 손바닥 반만한 곽을 줬다. 부피가 크지 않아서 들고 갔는데 이게 의외로 참 편리했다. 먹다 남은 음식물을 넣을 때도 쓰레기를 모아놓을 때도 좋았다. (다음에 같은 은행에서 환전했지만 이제는 그 사은품은 주지 않아 아쉬웠다.) 물건을 살때 받는 작은 비닐봉지를 모아 대체할 수 있다.
-의류수납팩(비닐봉지 대체 가능)
꼭 의류팩이 아니더라도 배낭안에 물건을 분류해서 싸놓을 수 있는 주머니의 존재는 매우 소중하다. 까미노에서는 빨래해 널거나 비에 젖어 말렸으나 완전히 마르지 않은 옷들을 배낭안에 넣어 걸을 일이 많다. 이때도 역시 방수가 되는 주머니는 필요하다.
-밴드에이드
길을 걸으면 빈도의 차이일뿐 물집은 반드시 잡힌다. 물집용 밴드를 가져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후드달린 옷
우비를 입기에는 살짝 애매한 비가 내릴 때나 추울때 등등 후드달린 옷은 유용하게 쓰인다. 후드티셔츠의 단점은 다른 의류에 비하면 부피가 크고 무거운 편이고 빨아도 곧 마르지 않는다는 것. 그것 말고는 좋았다. (이건 바람막이로 대체하면 없앨 수 있는 단점이기도 하다)
-좋은 카메라
당시에 카메라가 DSLR밖에 없어 그걸 들고 갔었는데 까미노 길에서 가장 후회했던 물품이었다. 물론 이건 내가 사진을 잘 찍는데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다. 매일같이 비가 오고 온갖 익스트림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도 별로였지만 일단 무거우니 얘를 꺼낼 일이 없었다. 처음엔 목에 걸었지만 곧 배낭 위로 자리를 옮겼고 차츰 배낭 밑으로 그 위치가 이동했다. 몸이 힘들면 되도록이면 귀찮은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그럴때 카메라가 무거우면 오히려 사진을 안 찍게 된다. 가벼운 거, 손에 딱 잡혀서 주머니에 넣기 좋은 것들이 좋았다.
-팩류
추울 때 쓰려고 가져간 핫팩, 다리가 너무 아프면 쓰려고 가져갔던 휴족시간 등등 팩류는 있으면 좋긴 했지만 굳이 그 무게를 감당하며 들고 갈 정도로 필요하지 않았다. 얼어죽을 듯이 추울때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좀 더 두꺼운 침낭을 사는게 좋았을 듯 싶으며, 쿨링팩은 그다지 도움이 되는 느낌이 아니었다.
-태블릿PC
심심할 때 책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인터넷도 하려고 가져갔으나 까미노에서는 전원공급이 쉽지 않다. 수십명이 자는 알베르게에 콘센트는 달랑 네개인 곳도 있었으며 그마저 콘센트가 없는 곳도 있었다. 초반부와 후반부에 충전은 어렵지 않았으나 중반부에서는 거의 꺼진 상태로 들고 다녔다. 게다가 태블릿 등은 무거우며 짐 속에 전자제품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충전기, 케이스 등 그 부속품도 함께 늘어나 짐 무게를 늘리기 딱 좋다. 스마트폰만 들고가도 충분했다.
-사용가능성 낮은 물건들
아예 안 쓰지는 않았지만 사용빈도 3회 미만일 것이 예상되면 넣지 않는 것이 좋다.
왜 그것을 내 가방에 넣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배낭엔 등산용 스테인리스컵이라든지, 접는 그릇, 빨랫줄용 와이어 같은 것이 있었다. 이것들은 끝까지 각각 한번씩 썼다. 마지막에 그릇이 없는 알베르게도 있었지만 거긴 그릇뿐만 아니라 냄비도 없어서 어차피 그릇을 쓸 일이 없었다. 빨랫줄용 와이어도 딱 한번 사용했고 사용할 때 주변인들이 부러워했지만 그 한번을 위해 굳이 가져갈 필요는 없었다.
-대비용 의약품들
물집이 생겼을 때 밴드에이드를 제외하고 나머지 의약품은 그리 쓸 일이 없었다. 감기약, 지사제, 진통제, 근이완제, 항히스타민제, 모기약 등등 약은 있으면 좋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데 대비한답시고 가져갈수록 짐이다. 종류별로 한두알 정도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구하는 것도 방법일 듯 싶다.
-라이너
이건 그냥 내 라이너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지만 별로 따뜻하지 않았고 무거웠다. 중간중간 너무 추웠지만 그닥 도움이 되는 느낌이 없어 중간에 버렸다. 계속 얘기했지만 다른 방한대책을 세우지말고 그냥 가볍고 두껍지만 부피는 작은(이라고 쓰고 비싼이라고 읽는) 침낭을 사자.
-고어텍스 바람막이
고어텍스 바람막이는 걷는 동안 제일 부러웠고, 결국엔 한국에 돌아와서 다음 여행을 가기 전에 샀다. 바람막이는 비가 가볍게 올 때 우비 대용으로 쓰기도 좋고 날이 추울 때 그 안에 옷을 겹쳐 입고 걸으면 바람이 막아져 따뜻하다.
-보조배터리
길을 걷는 동안 초반과 끝부분의 알베르게는 시설이 괜찮은 편이지만 중간에 급격히 나빠지는 지점이 있다. 급격히 나빠지는 알베르게를 설명하면 '시멘트로 벽을 바른 큰 헛간에 이층침대를 스무개쯤 가져다 뒀다' 느낌의 곳. 이런 곳은 전기콘센트가 없거나(방에 전기콘센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있어도 한두개 있어 스무개의 이층침대를 쓰는 사십명이 모두 콘센트를 써야하는 평화롭지 않은 풍경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알베르게가 중반엔 꽤 많아서 이틀 삼일 연속으로 다니다보면 충전이 몹시 필요해진다. 어찌됐든 전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인간이라면 보조배터리를 챙기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처음엔 굉장히 의욕에 차서 시작했으나, 쓰다보니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 싶기는 하다. 게다가 짐에는 아무래도 개인성향이 반영되니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쉽지 않다. 여행팁을 정리해 포스팅을 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었구나...
찾아보면 까미노행 짐 챙기는 법은 많이 나올테니 그걸 읽다 뭘 빼야할지 고민될 때 보조용으로 보면 아주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