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세스바예스-라라소아냐
까미노 데 산티아고 둘째날.
어제의 산행으로 온몸은 욱신거리며 아팠지만 새벽부터 짐을 꾸려 복도에 앉았다. 새벽은 전날처럼 어둑했고 사람들은 역시 어제처럼 일어나는대로 씻자마자 배낭을 메고 바로 알베르게를 떠났다. 다들 출발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저 무리에 섞여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겼다. 전날 산에서 가장 무서웠던건 체력의 저하나 비, 갈증보다 아무도 없는 산길에 혼자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랬던건 우체국에 들르느라 남들보다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었고 말이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당장이라도 출발하고 싶지만 손전등이 없어 해가 뜨면 길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짐을 챙겨 복도에 나와 벤치에 앉았다. 문을 나서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짐안에 더 버릴 것이 없는지를 생각했지만 역시 불안해서인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복도에서 길을 떠나는 사람들 중엔 생장에서 봤던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동양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생장에서부터 계속 봐왔던 이름모를 뉴욕청년 역시 아침 일찍 알베르게를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언제쯤이면 해가 뜰지를 고민하다 거의 마지막인듯 싶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날이 완전히 밝진 않았지만 따라 나섰다. 오전 8시쯤이었는데 여전히 사방은 깜깜했다. 어제 알베르게 수속할 때 손전등을 팔긴 했는데 좀 비싸게 파는 듯 싶어 고민하다 사지 않았다. 어둑한 길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걷다보니 비싸더라도 샀어야하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출발하고도 한참 해가 뜨지 않아 어둑어둑하고 게다가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을 걸으니 더 깜깜하다. 그렇지만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출발할 때 같이 출발해 주변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인듯 싶었다. 손전등을 켜고 걷는 사람 뒤를 따라 걷다보면 특별히 문제될 것도 없고, 길도 평지에 가까워 발을 조심할 일도 없다. 앞사람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 걷다 날이 밝아지자 그들을 추월해 앞으로 나갔다.
둘째날은 오르막이 거의 없는 평지라 수월하게 거의 쉬지도 않고 3시간 가까이를 걸었다. 처음엔 길에 사람이 제법있었지만 속도를 내서 걷다보니 어느새 길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 사람을 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혼자 걷는 길이란 느낌이 강하다.
전날 내린 비때문이었을까 아침의 론세스바예스는 안개가 나무를 뒤덮었다. 그 멀리로 아슴푸레하게 내가 갈 길이 보인다. 이런 아름다운 곳을 걸을 수 있다니, 어제의 고생도 그다지 나쁜 건 아니었구나 싶다. 늘 그렇다. 힘든일이 있으면 그만큼의 아름다운 일도 있다. 어제의 고생이 있었으니 오늘은 이런 풍경을 보는 거고, 회사에서 짤렸으니 나는 이곳을 걷고 있는 거다. 그건 알지만 매번 힘든 일이 나타나면 모든걸 잊어버리고 세상 그렇게 불행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불평해대곤 한다.
물론 피레네산맥을 뛰어넘어 론세스바예스에서 시작했더라도 같은 풍경을 봤을 거고, 얌전히 회사에서 돈을 번 후에 서른두살의 3월이 되어 일년간의 세계여행을 떠났어도 이 길을 걸을 수 있다. 하지만 힘든 일 후의 위안같은 아름다움을 만나지는 못했을 거다. 다음번에 또 힘든 일을 만났을때 잊어버릴지라도 지금 당장은 이 풍경을 기억해야겠다.
숲길을 혼자 걷다보면 이 곳에는 나혼자만 걷는다는 느낌이 더 강해진다. 내가 내뱉는 숨소리와 발소리가 이곳의 소리의 전부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다 발을 멈추면 내 숨소리도 조용해지고 주변도 조용해지며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뭇잎이 마치 빗소리같이 떨어졌다.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저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다. 아까는 솔개가 날아다니는 것도 봤다. 아름답긴 하지만 뭔가 야생이구나.
걷다 작은 교회를 만났다. 잠시 쉴 겸 성당에 들어가 나무의자에 앉았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순례길이 시초. 원래는 순례길이고, 그 길이 이어지는 오백여년 동안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수많은 순례자들이 걸었던 길인만큼 가는 길 곳곳에는 작은 성당을 심심치않게 만날 수 있다. 관광지의 성당처럼 화려하거나 크지 않지만 오래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매일 저녁이면 미사가 올려지는 작은 교회들은 늘 그 존재만으로도 소박하고 경건했다. 그곳에 앉아 유리창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며, 윤이 나는 나무의자와 제단을 보며, 높은 천장과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조용한 공기를 느끼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이 길을 걷기까지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지나쳐 흘러갔다. 유리창을 통해 돌바닥에 비추는 빛을 바라보며 문득 지금까지의 여정에 감사한다고 기도했다. 고비는 있었지만 그래도 큰 탈 없이 살아와, 이 길을 걷게 해 준 지난 일들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기도를 마치고나자 이 길을 더 즐겁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이 길을 완전히 걷고 난 후에 내 지난 삶도, 앞으로의 삶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길.
확실히 다들 비슷하게 출발해선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날까지는 프랑스어를 대부분 사용했다면 하루 차이나는 이 길에서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프랑스어도 스페인어도 모르는 나. 그리고 그런 내게 끊임없이 아주 친절하게 줄곧 스페인어로 떠드는 사람들. 어쩌다보니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사진 찍혀주고, 쉬다가 초콜릿도 얻어먹고, 비스켓도 나눠주고 한참동안 그 아저씨의 수다를 듣고 있다. 비록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즐거웠다. 역시 말은 안 통해도 서로 호의를 갖고 있으면 그것은 전달되는 법이다. 물론 마음과 마음으로만 이어지는 그런 관계는 오래 가진 못하겠지만.
오후 두시쯤 되자 수비리 마을에 도착했다. 원래 내가 생각했던 이 날의 목적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일러 생장에서 나눠준 알베르게 안내 종이를 펼쳤다. 다음 마을인 라라소아냐까지는 5킬로미터 가량 떨어졌단다. 다음 마을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마치 걱정인형마냥 온갖 걱정은 사서했던 나는 출발하기 전까지 했던 수많은 고민 중 하나에 하루에 얼마나 걸어야하는지도 있었는데 걷다보니 조금쯤은 기준이 생기는 듯 싶다. 언제까지 산티아고에 도착해야한다는 일정도 없고, 같이 걸을 동행도 정보도 없으니 한동안은 해가 뜨면 알베르게를 출발해 늦어도 오후 4시 이전까지는 알베르게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
어쨌든 수비리마을에 들어가 길을 찾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는 얼굴이 보인다. 생장에서부터 쭉 봐왔던 뉴욕에서 온 청년. 오늘은 동행이 생겼는지 동양인 여자와 함께 벤치에서 빵을 먹고 있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더니 이 친구도 라라소아냐까지 간단다. 어느 방향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저쪽인 것 같다고 했지만 틀렸다. 덕분에 반대방향으로 500미터쯤 헤매다 돌아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잘못된 정보로 500미터를 헤매느라 힘들었지만 여전히 빵을 먹고 있던 청년에겐 친절하게 ‘이 길은 아니었다’며 ‘저 쪽이 맞는 방향’이라며 올바른 정보를 주고 걸어왔다.
그렇게 도착한 라라소아냐의 알베르게는 직원이 없다. 그리고 아시아 사람인 듯 싶으나 어느나라 앤지 추정이 되지 않는 남자애 하나만 자고 있다. 테이블에 앉아 직원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 국적불명의 남자애가 일어나 부스스 걸어나오며 묻는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까미노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다. 아까 도착했는데 알베르게 문은 열려있고 직원은 없어 일단 샤워하고 낮잠을 좀 자던 참이었단다. 이 친구도 나와 같은 일정으로 걸어왔다는데 그동안 어디에 있어서 눈에 띠지 않았던 걸까. 서로 반가워하며 이따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이 친구는 다시 낮잠을 자러 들어가버리고 나는 근처 책장을 보다 한국어로 된 스페인어 회화책을 발견했다. 이날 하루 돌아다니다보니 여기서 혼자 끝까지 걸어나가려면 적어도 스페인어 몇마디쯤은 할 줄 알아야겠다 싶었다. 직원을 기다리는 한시간 반사이 스페인어라도 몇 마디 외워둘까 싶어 펼쳤는데 잘 외어지진 않았다. 내가 어색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그것은 얼마입니까' 따위의 스페인어 문장을 읽고있는 사이 뉴욕청년과 동행인 여자가 들러 직원이 없다는 말에 배낭만 내려놓고 사라졌고, 생장가는 길에서부터 몇 번 봤던 프랑스 할아버지 둘이 들어와 프랑스어로 대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한참을 기다려 수속을 마치고 샤워한 뒤 좀 전에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한국인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까 주운 회화책으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봤으나 묻는 것은 아무 의미 없었다. 생장에서 프랑스어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는 프랑스어 못해요'라고 말하는 것과 그닥 다르지 않았다. 듣는 걸 못하는데 질문하는게 의미있을 리가. 어디까지 익혀야 생존 스페인어는 가능해지는 걸까.
겨우 찾아 온 식당은 피자와 샐러드밖에 안 판단다. 까미노의 식당에선 순례자메뉴라는 것을 파는데 그게 가격도 싸고 괜찮다고들 해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피자와 샐러드와 와인을 먹고있는데 이 동네의 식당은 여기 하나 뿐인지 우리 알베르게의 모든 사람들이 이 식당으로 모인다. 지금까지 다섯 번째 우연히 만난 뉴욕청년을 포함하여.
어쩌다보니 이 친구가 옆자리에서 밥을 먹게 됐다. 동행인 여자는 피곤해 저녁밥을 거르고 자고 있단다. 나와 함께 밥을 먹으러 온 친구는 막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에 나온 사교성 넘치는 친구. 셋이서 함께 얘기하다 드디어 이 친구와 통성명했다. 얘는 A. 호빵씨와 동갑이란다. 군을 막 제대한 친구는 H. 외국인에게 호빵씨의 이름의 난이도가 중상정도 된다면 이 친구의 이름은 거의 극상이다.
한국인인 나조차도 한 번에 못 알아들었고 제대로 발음하려면 신경써서 불러야 한다. A가 난감한 얼굴로 바라보자 자신이 어학연수하던 시절 이름이 잭이었다며 그냥 잭으로 부르란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내일 일정 얘기가 나왔다. 잭은 내일 일곱시 반에 출발예정이란다. 손전등도 없고 정보도 없는 내가 불쌍한 얼굴로 혹시 너를 따라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한다. 다행히 손전등을 사지 않고도 걸어갈 수 있을 듯 싶다.
내일은 또 어떤 길이 기다릴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