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아군-릴리고스
나는 여섯시간째 인가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평원을 혼자 헤매고 있었다. 물 한 모금 없이 인적 하나 없는 길을. 건조한 날씨에 입술은 바짝 마르다 못해 찢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나 목마름 정도는 나를 엄습하는 불안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여섯시간째 사람이라고는 단 한명도 구경할 수 없었다. 이쯤 되면 뭔가 심하게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아침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그러니까 전 날 40Km를 걷고 사아군에 도착해 쪼그려앉아 빨래를 하고나니 왼쪽 정강이의 통증이 더 심해졌었다. 전날 아침 잘 가라며 인사했던 늘 만나던 한국인 무리를 다시 만나 그들에게 아침을 얻어먹고 다함께 출발했는데 도저히 A를 따라갈 수 없었다. 첫 마을인 칼자디야 데 에르마니요스까지 3Km를 걷는데 30분에 한번쯤은 쉰 듯 싶었다. 메세타에 들어온 순간부터 적게 걸으면 하루에 30Km 가까이. 많이 걸으면 40Km 가까이 걸었던 여파가 한 번에 몰려오는 듯 했다.
그렇게 아프면 여기서 쉬는 건 어때요?
첫 마을에서 바를 찾다 실패한 뒤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며 A가 말했다. 아직 오전 열한시도 안 됐는데. A는 여기서 15Km쯤 더 걸어 엘 부르고 라네로라는 마을까지 가려고 한단다. 최근에 너무 많이 걸었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만 걷다 쉬어야겠다고.
A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 다리 상태로는 15Km를 따라 걷기는 힘들 것 같지만 이렇게 알베르게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다음 마을에서 쉬는 건 좀 아쉽다. 이제 겨우 3Km를 걸었는데 말이다. 좀 더 걸을까 쉴까를 망설이는 내게 A는 쉴 것을 강력히 계속해서 제안했다. 무리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며, 너의 최종 목적은 산티아고까지 가는 것 아니냐며.
바로 전까지만해도 쉴까에 좀 더 무게가 가긴 했는데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고 있자니 점점 오기가 생겼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선언했다. 나는 다리가 아파도 포기하지 않고 산티아고까지 걸어갈 거라고, 그리고 오늘은 여기서 7.2Km 더 걸어가겠다고. 좀 전까지 세상 가장 지쳐있는 듯 싶다 갑자기 아무리 아파도 걷겠다며 강한 의지를 불태우는 나를 잠재우려 A는 계속 만류했지만, 그럴수록 한동안 잠잠했던 고집쟁이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원래 말리는 사람이 있을수록 쓸데없는 고집은 더 커지지 않던가. 게다가 팔할은 고집으로 이뤄진 내 인생이기에 사서 고생하며 여기를 걷고있는 것 아니던가. 결국 A는 설득을 포기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잘 걸으라며, 걷다가 언젠가 또 만나자고 하면서. 어차피 목적지가 다르니 내 발걸음에 맞추기보다는 A 능력대로 가는 편이 낫다.
이제 따라가야할 동행이 없으니 나는 내 페이스대로 걷고 쉬고 하며 천천히 걷기로 했다.
그 때 시간은 열시반쯤. 남은 길은 7.2Km.
평소같으면 한시간 반정도면 충분히 걷겠지만 오늘은 천천히 오후 한시까지 도착해 일찍 쉬는 걸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천천히 걷는 내 옆으로 멀리 기차가 지나갔다. 날은 따뜻하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풀밭이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다. 처음 출발할 때 물통을 채우고 오는 걸 잊어버린데다 만나는 수도꼭지마다 전부 음용금지 푯말을 붙이고 있는 점이 살짝, 아주 살짝 찜찜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얼마 걷지 않아도 되는데 무슨 일이 생기랴 싶었다.
그러던 내가 처음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건 혼자 걷고 세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7.2Km떨어져 있다는 마을이 세시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엔 다리가 아파 천천히 걷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상황이 애매했다. 평원을 걷다보면 눈 앞에 걸리는 것이 없어 대략 3~4Km반경 떨어져 있는 마을까지도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세시간을 걸었는데도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마을은커녕 풀밭만 이어지고 있었다.
분명히 까미노 길을 가르쳐주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왔고 오는 동안 갈림길도 없었는데 말이다.
800Km를 걷는 동안 노란 화살표는 제대로 그려져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화살표를 놓치거나 해서 길을 벗어날 때가 있었다. 그동안 걸으면서도 길을 벗어났다 돌아오는 경험을 몇번씩 해서, 우리에게는 여기가 길이 맞는지 불안할 때 주변에 사람도 없다면 길을 가늠하던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다.
다른 까미노길에도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걷는 까미노 프랑세즈, 프랑스길은 어딜가나 있는 일부 사람들 덕분에 쓰레기와 낙서는 피할 수 없었고 그것은 우리에게 가끔 훌륭한 보조 이정표가 되었다. 어쩐지 갑자기 노란화살표가 나타나지 않을 때 길마저 깨끗하다면 여긴 길이 아니라며 다시 아까의 자리로 돌아왔고 그 판단은 대부분 맞았다.
불안해하며 길가에 쓰레기(특히 휴지)가 버려져 있는지, 길가 구조물이나 돌에 낙서가 되어있는지를 살폈다. 그런 보조이정표 역시 내가 걷고있는 길이 까미노 데 산티아고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할 만하면 노란 화살표는 하나씩 나타나기도 했다. 일단은 어쩔 수 없이 걷는 수 밖에.
다섯시간째 여전히 마을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자니 점점 더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아무리 많이 쉬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쉬는 시간보단 걷는 시간이 더 길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길을 걷다 해가 져버리면 어쩌지 싶었다. 손전등도 없고 물도 없고 동행도 없는 나는 조난당하기 딱 좋은 꼴이다.
내가 이렇게 아무도 없는 길에서 헤매고 있는 동안 A는, 매일 만났던 한국인 무리들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A도 그들도 예정대로 잘 걸어갔겠지. 벌써 예상 목적지까지 도착해 내 걱정같은 건 할 생각도 않고 쉬는 사이 나는 이대로 어디론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지도. 그러게 왜 쓸데없는 고집은 부려서 일을 이렇게 만든걸까 자책하며 빨리 걸어야겠단 생각을 했지만 아픈 다리로 속력을 내기란 힘들었다.
하필이면 까미노에서 다리가 가장 아팠던 날이 이 날이었던 걸까.
여섯시간반째 평원을 걷던 나는 오후 다섯시쯤 돼서 해가 질 무렵 마을이름이 쓰여진 이정표를 발견했다. 마을 이름을 확인했다. 이정표에 적힌 마을 이름은 릴리고스. 무려 사아군과는 31Km떨어진 곳이며 처음 A와 헤어졌던 마을로부터는 28Km가 떨어진 곳이다. 이게 대체 무슨 도깨비조화란 말인가. 내 눈에 뭐가 씌이기라도 해서 그 사이의 마을을 모두 못보고 지나쳤던 걸까.
아는 이름이 나오니 조난은 면한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되는데 여전히 걸어가도 마을은 나오지 않는다. 속도 안 나는 발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내 옆으로 여섯시간반만에 자동차가 지나갔다. 비록 차지만 너무 기뻐 ‘올라’하며 손을 흔들어줬더니 길가에 차를 세우고 인상좋아보이는 뚱뚱한 할아버지가 내려 걸어왔다. 한국인이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 듯 싶다.
릴리고스에 간다고 했더니 아주 친절하게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설명해주신다. ‘노 에스빠뇰’이라 얘기했지만 여전히 정말 친절하게 스페인어로 정보를 주는 할아버지. 말은 못 알아듣지만 두려움에 떨다 사람을 만나서 반갑기도 하고, 할아버지도 친절해 그냥 뭐라고 하는지 듣고 있었다. 안면에 미소를 띄우며 십여분간 스페인어를 듣다보니 ‘텔레비전 안테나’라는 말이 들린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가리킨 손끝엔 안테나같은 것이 저 멀리 서있다. 저 안테나가 서있는 곳이 릴리고스라는 말인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페인어 'gracias(그라씨아스)!'를 외치고 헤어져 다시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안테나를 향해가는 듯 싶었지만 이상하게 길은 점점 안테나와는 멀어지고 있었다. 뭔가 다시 길을 벗어나는 기분이긴 하다만 마을 근처면 지나가는 사람도 있겠거니 싶어 무작정 내려가고 있는데 과연 길 저 편 사람같아 보이는 그림자가 꾸물거린다.
언뜻 본 형체가 내가 아는 사람과 비슷해 혹시 A?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역시 A다.
그 어떤 때보다 얘가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둘 다 보자마자 감격의 포옹을 하는 동시에 속사포처럼 지난 7시간 반의 얘기를 쏟아냈다. A 역시 오는 길 내내 화살표는 따라오는데 마을은 물론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며 겨우 마을 입구에 찾아냈는데 이게 갈림길의 한편이고 다른 길로 들어가면 6Km를 더 걸어가야 마을이 나온단다. 혹시라도 내가 입구를 그냥 지나쳐버려 6km를 더 걷게될까 기다리고 있었단다.
드디어 릴리고스로 들어가는 길. 알베르게에 들어갈 때 이보다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처럼 세상 모든 인간과 이야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까. 급 인간친화적이 된 둘은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다 말을 걸겠다는 기세로 길을 물었다. 그러다 만난 마을 할머니에게 이 마을에 알베르게는 어디있는지 물었더니 길을 가르쳐주며 너희는 왜 이 길로 들어오냐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말해줬다. 우리는 까미노 프랑세즈가 아닌 까미노 어딘가의 길을 걸었단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한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길, 포르투갈길, 은의길 등 수십개의 길이 있다.
그 중 우리가 걷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걷는 프랑스길, 까미노 프랑세즈였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여러 개의 길은 가끔 다른 길과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 우리가 쉬었던 첫마을이 그 길들이 만나는 지점이었던 거다. 프랑스길을 계속 걸으려면 마을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길을 따라 걸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본의아니게 28Km를 강제소환 당한 거였다.
나중에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늘 보던 한국인 무리의 정보에 의하자면 이 길은 프랑스길보다 4Km쯤 더 돌아가고(그럼 32Km강제소환인건가) 최근까지도 늑대가 목격되었다고 했다. 정말이지 나중에 들었으니 그랬구나 싶지, 걷다가 중간에 들었더라면 겁에 질려 걷지도 못했을 듯 싶다.
다시 못 만날 줄 알았던 A를 다시 만나고 밥을 먹고 음악을 들으니 참 좋았다. 무엇보다 쓸데없는 고집쟁이의 최후가 늑대밥이나 조난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