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까미노데산티아고-잘 걷는다 싶더라니

-보야디야 델 까미노-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사아군

by 호빵씨

건조한 메세타 고원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다며 기뻐한 바로 다음날부터 이틀 연속 비가 내렸다. 하루에 반팔과 파카를 넘나들며 입을 수 있고, 며칠간은 비 같은 건 내리지 않을 듯 쨍쨍하던 날씨가 순식간에 변하는 이 길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슬슬 짜증이 나려 했다. 비가 오면 원망할 대상은 많았다. 비를 뿌리는 하늘, 계절, 이런 시기에 걷겠다고 결정한 나, 등등. 하지만 제일 얄미웠던 건 역시, 비오고 질척거려 걷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즐겁다고 생각했던 까미노 초반의 나였다. 가능하다면 그때의 내게 돌아가 말해주고 싶었다.

‘이래도 재밌냐?’라고.


까미노에서의 비는 단지 기분과 체력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다. 이틀의 비는 세탁 후 바짝 말리지 못해 곰팡이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옷과 축축한 신발을 선물해줬다. 뿐만 아니었다. 두껍고 무거운 내 우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얇았던 A의 우비는 몇백번의 뒤집어쓰고 벗었다 하는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져버렸다. 처음엔 손가락 한마디 정도 찢어졌던 우비는 세찬 바람을 맞으며 점점 그 범위가 커졌고 곧 다른 부분까지 찢어지더니 급기야는 얘가 우비를 걸치고 다니는 건지 비닐조각을 얹어놓고 다니는 건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판초우의의 소매 단추부분이 통째로 떨어지는 바람에 바람이 불 때마다 배낭 위에 얹어놓은 그 비닐조각은 깃발이라도 날리듯 펄럭거린다. 내 우비는 쓰레기봉지 같다며 한숨 쉬면서도, 비라도 올라치면 이제 우비로의 기능은 모두 끝나버린 것 같은 비닐쪼가리를 꼭꼭 챙겨 입는다.

그동안 내가 배낭의 무게 때문에 어깨가 아프다면

‘네 가방끈의 쿠션이 좋지 못해 그래. 버려!’

내가 난방이 되지 않는 알베르게에서 추워할 때면 침낭을 만져보고는

‘세상에, 네 침낭엔 아무 것도 안 들어있어. 버려!’

란 말로 몇 번 염장을 지른 터라 기회는 이때다 싶어 놀려줬다. 

“네 우비는 다 찢어져 너덜거리는 쓰레기봉지 같아. 버려!”

내 튼튼한 우비를 보며 더욱 씁쓸한 표정을 짓는 A, 그동안 이런 기분으로 날 놀렸던 거겠지. 다음 대도시인 레온에 가면 꼭 우비를 사입겠다며 결의에 차있는 A는 잠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제대로 된 우비를 사입고 다시 천진난만한 얼굴로 내 배낭과 침낭을 비웃을 그 때를. 레온에 간다해도 내 배낭과 침낭은 더 나아질 수 없는데, 젠장, 하다가 다음에 여행을 간다면 그땐 정말 좋은 배낭과 침낭을 사야지 하는 식으로 생각은 발전됐고,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장비병에 걸리는 거구나 생각했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자 다시 맑아졌다.

길이 아무리 좋아도 비가 오는 날은 속도를 내기 힘들어 이틀동안 평균 30Km쯤 걸었던 둘은 날이 맑아지자 약속이나 한 듯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둘이 급하게 가야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한 달 반정도의 여행이 남아있고 A는 돈 떨어질 때까지 돌아다니겠단 계획으로 막 미국에서 출발했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도 되니 매일 오후 세시에서 네시까지만 걷자고 합의했지만, 모든 운동엔 젬병이나 걷기만큼은 자신있다며 집에서 약10Km떨어진 직장을 걸어서 출퇴근 하던 나와, 뉴요커는 원래 다들 잘 걷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주장을 펼치며 배낭이 없으면 자기는 훨씬 빨리 걸을 수 있다며 아쉬워하는 A의 조합은 맑은 날 평지에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를 보여줬다. 게다가 이 둘, 잘 쉬지도 않는다. 한참 속도가 나기 시작하면 둘 다 말 한마디 없이 열심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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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걷는 사이 우리는 여전히 푸른 풀밭과 평원과 하늘을 지나갔다.

메세타는 상대적으로 힘들지 않은 길이 이어지고, 비슷한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새로운 환경에 눈을 뺏기지 않고, 온 정신이 힘든 몸에 집중되지 않을만큼 편한 길에선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혼자 생각은 많이 하는데 곧 다 잊어버렸다. 

걸으며 하는 생각은 흙탕물을 휘젓는 것과 비슷했다. 과거의 기억도 떠올리고 신경쓰지 않고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휘저어 떠오르게 하지만 특별한 결론없이 그저 앙금이 가라앉는 것처럼 생각이 가라앉게 둔다. 처음 여행을 나올 땐 많이 생각하고 많이 깨닫자고, 앞으로의 내 인생을 뭔가 결정하고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이젠 그대로 두자는 마음이 더 컸다. 스스로의 행보를 비판하려는 마음없이 그냥 지켜봐주자,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이러면 안돼, 이렇게 생각해야지라고 평가할 필요는 없이, 그냥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런 것을 봤구나,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고 기억해두도록 하자. 이러다보면 가라앉아있는 흙처럼 언젠가 또 휘저어 떠오를 날도 있겠지 생각했다.



걷다 하루에 한번 이상은 부르고스부터 계속 마주쳤던 한국인 무리를 만났다. 마치 처음 출발하고 며칠동안 A와 내가 길에서 만난 것처럼 말이다. 늘 비슷한 시간에 출발하는지 아침에 길 어디선가 만나면 오늘은 어디까지 걷겠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늘 오늘은 조금만 걸을 거야라고 했고, 그들은 오늘은 많이 걸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항상 같은 마을의 알베르에서, 바에서, 길에서 만났고 그 다음날엔 비슷하게 출발해 같은 질문과 대답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했다.


스케줄상 빨리 걸어야 한다던 이들은 이틀간 비가 와서 예상보다 많이 못 갔다며 이제는 더 이상 늑장부릴 여유가 없다고 했다. 이날은 40Km 떨어진 사아군까지 간다며 너희들은 얼마만큼 가느냐고 물었다. 그 중 한명은 다리가 아파 40Km를 완전히 걸을 수 없어 중간에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사아군으로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단다. 우리는 특별한 목적 없이 오후 세네시까지 걸을 계획이지만 당분간은 40Km씩 많이 걷진 않을 거라고 대답해주고 헤어져 걷는데 A가 ‘cheating’이라며 중얼거린다.


산티아고까지 800Km를 걷는 프랑스길은 여러 방법이 있다. (까미노에는 프랑스길뿐만 아니라 여러 길이 있으나 그 이야기는 다음에) 나나 A처럼 생장에서부터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J처럼 론세스바예스나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사리야 등 중간부터 걷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고, 중간에 힘이 들거나 시간이 없거나, 주변 풍경이 험하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버스나 기차, 택시를 타고 중간을 점프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순례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사리야부터 산티아고까지 100Km는 반드시 걸어야 한다)

걷다가 짐이 무거우면 처음 내 계획처럼 필요없는 짐을 산티아고의 우체국에 미리 보내둘 수도 있고 각 마을의 운송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이 그 날 묵을 알베르게까지 배낭만 미리 배달해 놓을 수도 있다. 나는 800Km를 내 배낭을 오롯이 짊어지고 완보하겠다란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건 내 선택일뿐, 남들이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나에 비해 A는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일단 시작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원칙이고 그걸 벗어나면 반칙이라는.

그러나 계속해서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 면전에 대고 ‘너는 반칙’이라고 얘기하지는 않는 최소한의 예의는 가지고 있기에 상황을 난감하게 만들 것 같진 않아 별로 신경은 쓰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40Km까지 걸어갈 생각이 없고 앞으로 이렇게 거리가 차이나기 시작하면 더이상 볼 일은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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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아군에서 5.8Km떨어진 모라티노스에 도착했을 때였다. 시계를 보니 두시반. 아직 알베르게는 문도 열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이르니 뭐 가볍게 다음 마을까지 더 걸어갈까하고 3Km 더 간 산 니콜라스 델 레알 까미노는 11월부터는 알베르게 운영을 안 한다고 했다. 결국 그렇게 걷다보니 무리해 걷지 않겠다는 40Km를 걸었고, 안 가겠다던 사아군 가까이에 와 있었다. 요 며칠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계속 그들과 알베르게에서 만날 운명이었던가.

A가 저녁때 그들 앞에서 치팅 어쩌구 하면서 말하지 못하게 좀 주의를 기울여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걷고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맑은 날이라 흥분해 오버해 걸었는지 사아군을 2Km쯤 남겨놓고는 왼쪽 정강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물집이 생겼다 사라져 이제는 좀 걸을만 하다 싶었었는데. 정강이는 그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잠깐 쉬자고 한 뒤 A에게 여기가 아프다며 정강이를 짚었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그거 안 좋은데’란다. 하지만 되돌아가는 건 더 멀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걸어야 했다. 점점 다리가 아파와 절뚝거리며 사아군으로 들어서며 생각했다.


그러게 잘 걷는다 싶더라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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