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까미노데산티아고-새로운 사람들

-온타나스-보아디야 델 까미노

by 호빵씨

그들을 처음 만났던 건 부르고스의 알베르게였다. 새벽 일찍 힘든 몸으로 짐을 챙겨 나가는데 “안녕하세요”하며 누군가 인사했다. 낯익은 언어에 놀라 쳐다보니 까미노 길에서 처음 보는 한국인 무리였다. 물론 반갑기도 했지만 순간적으로 내게는 ‘정보원’이라는 느낌이 더 컸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여행을 오는 한국인들은 대체로 사전조사가 충실히 되어있는 경우가 많고, 하다못해 가이드북이라도 들고있으니 어떤 상황에서든 나보다는 훨씬 훌륭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인사를 하기가 무섭게 안부도, 목적도, 친분도 쌓을 기회도 없이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나와 그런 뒤에서 여전히 힘든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신발을 느릿느릿 신고 있는 A. 한참을 내 질문에 대답해 주던 이 착한 무리는 아무 말 없이 뒤에 앉아있는 A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저 분도 한국인이에요?”

십여일을 함께 다니며 한 번도 A의 국적을 내게 물어본 사람은 없어 순간 난감했다. 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날 처음 봤을 때는 본인이 한국인이라 하긴 했었는데 이후 만나는 외국인들이 국적을 물어보면 항상 자기는 미국인이라(정확하게는 뉴욕에서 왔다고) 대답했었는데. 머뭇머뭇하며,

‘그게, 한국사람이긴 한데 뉴욕에서 왔어요’라고 대답해주자 이 무리들은 ‘아, 네’하면서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길을 떠났다. 사실 나도 A가 어디서 왔어?라고 묻는 질문에 '미국(from U.S.A)'이 아니라 '뉴욕(from New York)'이라며 번번히 얘기할 때마다 속으로 좀 웃었었다. 왜 쟤네는 꼭 뉴욕에서 왔다고 지역을 강조하는 걸까, 하면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뉘앙스는 느껴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뉴요커라 거들먹거리는 애와 붙어다니는 애 정도로 꼬리표가 붙여진 느낌이었다.

뭐, 더 이상 볼 일은 없어보이니 그냥 그렇게 생각되고 말겠지 하며 길을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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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날 아침, 걷다 처음으로 들른 바에서 이들을 다시 만났다. 아까 내게 말을 걸었던 두명 외에 세명이 더 있었다. 부르고스 알베르게에서 스쳐지나갔던 모든 한국인들은 모두 이 그룹이었던 듯 싶었다. 간단하게 커피와 비스켓을 먹고 일어서는 우리와 달리 이 그룹은 아침부터 맥주를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 살짝 문화충격이 왔다. 아, 바에서 저렇게 즐길 수도 있구나.


까미노의 마을에는, 가끔은 길 한복판에서도 바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바'라면 술을 마시는 것이 주 목적이라는 기존의 내 인식과는 달리 이 곳에서는 물론 술을 팔긴 하지만 간단한 음식과 커피나 차 같은 것을 파는 식당에 가까웠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열려있어 길을 걸으며 끼니를 해결하러 들르곤 하는 장소였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아침을 먹으러 하루에 한번쯤 바에 들르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바에 들어가면 마치 시간과 정신의 방처럼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에,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오후 늦게까지 걸어야 해 피하는 편이었다. 중간중간 편히 쉬는 것보다 차라리 일찍 알베르게에 들어가서 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바에 들어가더라도 커피 한잔, 혹은 거기에 간단한 요깃거리를 먹는 정도만 하고는 곧 일어나곤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는 그룹이라니. 인사하고 일어서며 아마 이들을 다시 보진 못하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날 그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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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엔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중반이 지나면서는 이제 내리는 비를 보면 '힘들지만 즐겁게 걸어가야지'라기 보다는 '아, 또...' 하는 짜증이 더 높은 빈도로 일어나기 시작하는 때였다. 지치고 짜증나는 그 기분은 일기에도 반영이 되었는지 평소같으면 오늘은 어디를 걸었다. 누가 무슨 얘기를 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했다를 잔뜩 적어놓던 당시의 일기에 이 날을 달랑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1/3 16:43
오늘은 하루종일 비. 죽도록 힘들게 걸어 27.8Km 떨어진 Boadilla del camino에 왔다. 공립 알베르게는 춥고 부엌도 없고 와이파이도 안 된다. 그리고 세사람뿐. 내일도 이렇게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깨도 이젠 좀 덜 아팠으면 싶다.


길을 걷는 내내 잠을 잤던 알베르게는 까미노 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위해 지어진 숙소다. 운영주체에 따라 공립알베르게와 사립알베르게가 있는데 대략 하룻밤 묵는 가격이 5~10유로쯤 한다(가끔 기부제 알베르게도 있다. 기부제 알베르게는 묵고난 후 적당한 금액을 각자 알아서 넣는 곳). 공립보다는 사립이 좀 더 비싼 편이고(15유로가 넘는 곳도 있음) 시설이 좀 더 좋은 편이다. 어찌됐든 알베르게는 호스텔보다 싼 가격에 묵을 수 있는 건 확실하지만 그만큼 '숙소라면 이런건 당연히'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한 방에 50개가 넘는 침대가 놓여 있다거나, 11월인데 온수가 안 나온다든가, 난방장치가 없다든가 한다든지.

우리가 도착한 이 날 알베르게는 난방이 되지 않았다. 있는 라디에이터(우리의 온돌은 정말이지 얼마나 훌륭한가)를 틀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예 난방장치처럼 생긴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그냥 시멘트로 만든 커다란 방에 침대만 스물몇개쯤. 당황해서 벽을 훑으며 살펴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그 알베르게엔 나와 A, 처음 보는 할아버지 외엔 묵는 사람도 없었다. 당연히 온수도 나오지 않았고 전기 콘센트라고는 화장실 거울 밑의 한 개가 전부였다. 그래도 비오고 지쳐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없다며 그냥 들어가 찬물로 샤워하고 추운 알베르게에서 역시 추운 침낭 안에 옷을 잔뜩 껴입고 몸을 똘똘 말아 낮잠도 잤다.

내가 낮잠을 자는 사이 동네 산책을 다녀온 A가 말했다.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사립 알베르게가 있단다.

생장에서 나눠준 표에는 이 마을의 알베르게는 여기밖에 없다고 했는데 속은 기분이다. 그 알베르게에서는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며 오늘은 그 곳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스페인의 식당은 식사시간을 정해놓고 파는 경우가 있다. 점심식사는 몇시부터 몇시까지만, 저녁식사는 몇시부터 몇시까지만 하는 식으로. 그런데 보통 이 저녁식사시간이 우리 기준으로 굉장히 늦게 시작하는 편이다. 빠르면 일곱시 늦으면 여덟시부터. 이 식당도 마찬가지로 일곱시 반에서야 저녁을 판다고 했다. 가로등이 없는 캄캄한 시골길을 걸어 사립 알베르게 식당에 도착했다.

불도 제대로 안켜진 우리 알베르게에 비해 여기는 들어서자마자 뭔가 아늑하고 환한 분위기가 들어 더 억울했다. 저녁식사를 기다리며 와이파이를 하고 있는(이 알베르게엔 와이파이도 됐다 세상에) 둘에게 직원이 '이 알베르게에 너희말고 또 다른 한국인들이 있다'며 함께 저녁을 먹으라고 식탁을 세팅해줬다. 전 날의 경험으로 봐서 A가 그들과 잘 어울릴 것 같진 않아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거부할 필요도 못 느껴 일단 앉았다. 이번에 만날 한국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역시 빨리 걸었더니 나보다 최소 3~4일쯤 먼저 출발했을 한국인들을 계속 만나는 군 하며 뿌듯해하는데 곧 문이 열리고, 전 날 만났던 한국인 무리들이 들어왔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저 사람들은 아침부터 술 마시고 한참을 바에서 쉬었는데 같은 거리까지 올 수 있었던거지? 역시 인간이 걷는 속도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건가?


저녁을 먹으며 얘기하다보니 의문은 약간 풀렸다. 이들도 각자 와서 걷다가 한명씩 한명씩 만나 다섯 명이 되어 걷고 있다고 했다. 최소 삼일에서 최대 열흘정도 우리보다 일정을 먼저 시작했던 그들은 그동안 천천히 걸어 부르고스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속도대로 걷기엔 이 사람들 중 몇 명의 비행기 스케줄이 빠듯해 부르고스부터는 좀 더 많이 걷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우리가 오후 3~4시쯤 알베르게에 들어와 쉴 때, 이들은 6~7시까지 걸었다고 한다.


그나마 이젠 낯이 익어선지 아니면 그 때만큼 몸이 힘들지 않아선지 A도 저녁을 먹을 때는 제법 잘 얘기하고 어울렸다. 그리고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한국인 무리에는 가이드북을 들고 오거나 사전지식을 쌓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 가이드북엔 사립알베르게의 정보가 있어 마을 안쪽에 박혀있는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그들에게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정보를 얻었다. 메세타에 대한 악명도 이 날 처음 들었다. 생장에서 준 종이 두 장을 들고 걷는 둘에게는 온갖 정보를 다 알고 있는 듯한 이들이 마치, 맨몸으로 게임을 시작한 저렙캐릭이 풀아이템을 장착한 고렙캐릭을 바라볼 때처럼 아우라가 느껴졌다. 우리에게도 이런 정보를 가진 사람이 하나쯤 있었으면 부르고스에 가는 날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텐데. 그러면 J도 지금쯤 함께 앉아 좋아하는 닭을 먹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렇게 한시간이 넘도록 3코스로 이루어진 순례자메뉴를 먹으며 함께 포도주도 마시고 한참을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물론 (내게는)반갑고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우리도 그 무리도 헤어지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했지 ‘나중에 또 봐요’라고 인사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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