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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Oct 12. 2016

#37까미노데산티아고-풍경이 내려앉는 순간

-부르고스-온타나스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겨우 통증이 덜해 잠들었다가 다시 종아리에 쥐나 일어나보니 새벽 여섯시 반이었다. 여전히 어깨와 종아리는 욱신거리지만 그래도 다시 배낭을 들고 걸어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이게 프랑스아저씨가 말했던 11일의 마법인 걸까.


몸이 아파 뒤척거리면서 계속 생각했었다. 밤이 지나고나면 J의 생각이 달라져 같이 가고 싶어할지도 모른다고. 그렇지만 우리가 일어나 씻는 동안에도 J는 일어날 생각을 않았다. 짐을 챙기는 사람들로 시끄러울텐데도 푹 잠이 들어있는 모양이다. 오늘 하루는 무조건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일어나지 않았던 걸까. 결국 우리가 거의 짐을 다 챙길쯤 느지막히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마지막 짐을 꾸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쩌면, 또 어쩌면 하면서 계속 기대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이미 배낭을 다 챙긴 A가 내게 묻는다.

같이 갈래요? 먼저 갈까요?

그렇게 둘이 출발하게 됐다.

처음엔 하나였다가 넷이 되었다 셋, 둘로 줄어들고 있는 이 길.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는 몇 명이 되어있으려나. 



어제는 밤늦게 들어와 정신없어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었지만 아침에 다시보니 이 알베르게 꽤 훌륭하다. 제법 침대도 편한 느낌이었고 최근에 시설을 정비한 듯 깔끔한 환경에, 세탁기에 건조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빨리 걷긴 했는지 보이지 않던 한국인들도 제법 보인다. 하지만 피로에 쩔어든 우리에게 그 사실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원래 대도시에 도착할 때면 시간을 넉넉히 두고 도착해 주변을 관광하는게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이었는데 그게 완전히 깨져서인지 몸이 피곤해서인지 주변은 감흥없이 다가왔다. 아마도 부르고스는 가장 힘들었던 날 잠을 잤던, 힘든 곳 정도로 기억에 남겠구나 싶었다. 이게 이 도시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때론 편견으로 장소가 규정지어질 때도 있는 법이고, 그 편견을 적극적으로 떨쳐보려는 시도는 지금의 몸 상태론 수고롭기 짝이 없어 하고 싶지 않았다. 이 도시엔 더 이상 미련도 없었다.

밝아오기 시작하는 대성당을 사진 찍고는 그대로 다시 걸어 도시를 벗어났다.



생각해보면 A와는 길을 시작하기 전 생장에서부터 만났다. 그래서 같이 걷지 않던 시절엔 하루에 한번 이상, 같이 걷기 시작하고는 하루종일 꼬박 붙어 있던, 까미노를 걷기 시작하고 가장 많이 봤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둘이 대화를 5분 이상 해본 적은 없었다. 이상하다, 하며 차근차근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그나마 단둘이 가장 오래 대화하며 앉아있었던 기억은 까미노 첫 날 생장 알베르게에서 아침 먹을 때 정도 뿐이었다.

그 때의 기억은 글쎄 뭐랄까, 그런 거였다. 분명 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 건 알겠고 나도 그에게 괜찮은 사람이겠지만 저 사람이 내 친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던? 별로 궁금한 것도 없는, 그냥 만나면 반사적으로 적절한 미소를 띠며 '안녕. 오늘은 어땠어?'하고 인사하고 바로 헤어져 걸을 수 있는 그런 사이?

그러나 셋이 걷게 됐지만 의외로 둘이 말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나와 A는 둘 다 말이 없는 성격이었고 가끔 J가 산책나가 알베르게에 둘만 남겨진다해도 각자 다른 일을 하지, 마주보고 앉아 서로 대화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같이 갈 거냐고 물어 일단 따라나서긴 했으나, 어차피 난 오늘 걸을 거고 혼자가는 것보단 A와 둘이라도 걷게 되서 다행이다 싶었으나,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어색하지 않을까 고민이 시작됐다. 그리고 실제로 며칠 뒤 J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이런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이 걷고 있어(깊은 침묵과 함께)’


걷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시작되는 J의 수다가 그리워졌다. 그의 부재는 생각보다 컸다. 한사람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출발하며부터 어울리지 않게 계속 말을 했다. A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삼일치의 농담을 한꺼번에 쏟아내기라도 하는 듯 말이 많았다. 조금이라도 덜 어색해지려 서로에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문장이 끝나는 순간에는 어쩔수없는 어색함이 우리 위로 쌓였다. 말을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분위기가 어색해지던 순간이었다. 깊숙이 도시 한가운데로 들어갔던 길을 되짚어나와 다시 까미노 길로 들어서려는 초입. 공원도 물도 보였다. 영원같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도시를 되짚어 나오는 몇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을 보며 별 생각없이 A에게 말을 꺼냈다.

한국에서 내가 일하던 직장은 이런 곳이었다고, 거기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고 그 당시에 정말 힘들었었다고.

그러다 일을 그만 둘 시점이 됐는데 어느 날인가 갑자기 우리집 옆 유등천의 발원지가 너무 궁금했던 거예요.
이런 비슷한 곳이었는데 물이 시작하는 지점을 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거든.

A와 J를 만난 이후 그동안은 의식적으로 한자어나 어려운 단어는 피하고 짧은 문장으로 천천히 말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없이 내가 떠들고 싶은 대로 한참을 얘기했다. 이 아이가 어디까지 들을지, 어느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공기처럼 존재해 어떤 시점에서 내가 그와 친구가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리고 무자르듯 어떤 정확한 계기에 의해 친해지거나 호감을 갖게 되는 관계가 있다. A와 나의 관계는 후자였다. 우리는 나이테가 새겨지듯 어떤 계기로 명확하게 이전과 이후의 관계가 달라지곤 했다.

그 동안 우리는 열흘 가까이 시간을 공유했고 그 사이 서로에 대한 유대감같은 것은 쌓여 있었다. 왜 까미노를 걷기 시작했는지 역시,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았고, 그때마다 이 여행을 결정한 계기도 부분부분 꺼내놓긴 했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내가 A와 함께 걸어가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가 알아들지 못할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날, 이해하는지 그렇지 못한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던 순간.



J가 없어도 하루는 평소처럼 지나갔다. J가 있을 때와 비교하면 조용히 걷는 시간이 더 길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얘기를 하고 웃으며 걸었다. A의 전 직장에 대한 얘기도 듣고, 서로의 어릴적 얘기를 하기도 하고, 나중에 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어디에 가고 싶은지도, 나중에 어디에서 살고싶은 지도 말했다. 얘기하다 지치면 한참을 조용히 걷다 각자 나지막하게 노래도 불렀다. 상대에게 들려주려 노래한다기 보다는 혼잣말을 한다는 느낌의 노래였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지만 혼자 바람을 맞고 각자 생각에 잠겨있기도 했다. 그런 우리 옆으로 끊임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나중에 안 거지만 부르고스를 지나서 레온까지는 메세타고원을 지난다고 한다. 메세타고원은 넓게 펼쳐진 평원과 건조한 기후가 특징인 곳으로 여름엔 내리쬐는 태양, 겨울에는 칼바람으로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에게 악명이 높은 곳이라고 한다, 라고 남의 얘기처럼 적는 것은 우리가 느낀 메세타는 조금 달랐기 때문.

우리는 그 흔한 가이드북이나 사전정보같은 것도 없이 무작정 능력닿는 곳까지 걷는 여행자. 건조한 기후를 만나자 비가 오지 않는다며 좋아하고, 쭉 평지가 이어지자 산길이 나오지 않는다며 좋아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며 기뻐하고, 큰 나무도 거의 없이 쭉 풀밭만 이어지는 평원에서 오후가 되니 해를 그대로 받아 더워졌지만 오랜만에 따뜻해졌다며 좋아했다.


평지를 잘 걷는 둘은 어제 42킬로미터를 걸은 사람답지 않게 속도를 내서 열심히 걸었다. 그런 둘의 옆으로 윈도우 배경화면같은 푸른 풀밭과 파란하늘이 끝없이 펼쳐졌다. 날아갈 듯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이 풍경만큼은 사진을 남기는 대신 머릿속에 넣어두고 잊지말자고 생각했다. 그래도 언젠가 잊어버리겠지만 또 어느순간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선하게 머릿속으로 그려질 거다. 낮은 언덕과 하얀 풀, 파란하늘이 있던 오후가.



그렇게 오후3시까지 걷고나서 일정표의 거리를 계산해 봤더니 36킬로미터를 걸었다. 전날 걸은 거리를 합쳐보면 80킬로미터가 조금 안 되는 거리다. 굳이 내가 알고있는 지역의 거리로 환산해보자면 대전에서 천안정도의 거리다. 이게 웬 미친짓인지 모르겠다 싶긴 하지만 역시 이유는 평지가 속도가 잘 나서 였으려나. 걸은 거리를 계산하고는 둘다 어이없는 얼굴로 이제는 좀 천천히 걷자고 서로 다짐하긴 했지만 과연 지켜질까.  


부엌이 거의 없었던 초반 알베르게와 달리 중반에 들어서자 주방을 갖춘 알베르게들이 많았다. 부엌이 있는 곳에선 으레 그렇듯 근처 슈퍼에서 스파게티면과 토마토소스를 사다 저녁을 해먹었다. 보통 요리해먹는 날은 A와 내가 각각 1유로 혹은 1.5유로씩 부담해 스파게티면과 토마토소스와 빵만으로 이루어진 초간단 파스타를 먹는편인데 이 날 들른 슈퍼에서는 A가 복숭아 통조림을 내가 티백을 추가로 골라들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A가 음악을 틀어줬다. 춥고 조리기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부엌에, 자세를 바꿀 때마다 삐걱거리는 테이블에서 먹는 저녁이지만 행복하다, 생각하다가 곧 이것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여기는 만남과 헤어짐이 자연스러운 길이니까. 어쩌면 내일부터 못 볼지도 모르는 사람이니 보는 날동안 최선을 다해 잘 해줘야지. 

저녁식사가 끝나고 A에게 말했다.

-설거지 해줘서 고맙습니다.

-뭘요, 요리해줘서 고맙습니다.

-저녁 먹는 동안 음악 틀어줘서 행복했어요.

-오늘은 차가 있어서 조금 더 행복했어요.


만약 내가 그동안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처음보는 것처럼, 다시 보지 못할 것처럼 행동했다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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