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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Mar 22. 2017

#82여행후-그리고, 봄

-유등천

이른 가을에 시작해 겨울에 끝났던 여행이 지난 후였다. 돌아와 나는, 어느날엔 몰아닥친 밀린 일을 처리했고, 또 어느 날은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고, 다른 지역에 놀러가고, 침대에서 밀린 미드를 보고, 책을 읽고, 일자리를 찾아보는 사이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은 서서히 물러가고 있었다. 



일년 전의 어느 날처럼 방안에 있던 날, 갑자기 다시 한 번 유등천이 시작하는 지점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이 시작하는 지점을 보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쉽게 풀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일년 전의 나, 먼 곳에 여행을 다녀오면 자아라도 찾아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육개월 전의 나, 그리고 현재의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나에게 내 긴 여행의 처음을 다시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엔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며 검색으로 알아본 유등천의 정보는 이랬다. 

유등천은 금강의 제2지류로 길이는 59.5km 금산의 진산면, 복수면을 거쳐 대전을 흘러 서구 삼천동에서 대전천과 만나 갑천으로 흘러든다. 

갑천과 합쳐지는 지점에서 우리집까지는 약 10Km, 걸어서 가려면 약 50Km를 걸어야 했다. 아, 물론 중간에 길이 끊어져 있는 지점에서 돌아가는 길은 고려하지 않은 거리였다. 지난번에 물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가지 못했던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발원지가 어디인지는 의견이 갈리는 모양이었다. 물은 자연에 대해 전혀 모르는 멍청한 도시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 줄기의 물이 뿅 하고 솟아올라 갑자기 양이 많아져 시냇물이 되고, 또 양이 많아져 강이 된다기 보다는 자잘한 작은 물줄기가 이리 얽히고 저기서 합해져 하나의 물길이 됐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보고싶어 하던 물이 시작하는 지점은 과연 어디로 가야하는가 싶었다. 발원지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고 그 논쟁을 주의깊게 읽어볼 수도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정확한 발원지가 아닌 물이 시작하는 지점을 보고싶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일단은 큰 물줄기를 따라 걷다 지도를 보며 마지막 지점을 결정하기로 했다. 

50Km에 가까운 길을 한나절에 모두 걷는 것은 무리여서, 지난번 걸어갔다 포기한 지점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만약 까미노에서였다면 A가 치팅 운운했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이미 목적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걷는다가 아니었다. 내가 그때 걸었을, 어쩌면 만났을지 모르는 순간을 한발짝 떨어져 걷는 것이었다. 



여행에서처럼 주변을 주의깊게 둘러보지 않아서였을까. 어느새 주변엔 꽃이 피었고 풀이 무성해지고 있었다. 하늘은 걷기 좋게 맑았다. 

아파트 옆 우레탄이 깔린 길과 그 주변을 반듯하게 정비한 길을 흐르는 물과 이곳에서 흐르는 물이 같은 곳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낯설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낯익은 곳이 보였다. 처음 와보는 길인데 왜 이곳이 낯익을까 하며 생각해보니 아주 예전 어릴 적에 여름이면 이곳에 놀러와 물놀이를 하고 돌아가기도 했었다. 그 때는 몰랐지만 꽤 멋진 곳에 놀러왔었구나. 


가끔 길이 막히면 지도어플을 보고 우회해 다시 물을 찾아 가기도 했다. 조금만 벗어나도 풍경은 익숙한 곳과 전혀 다른 풍경을 보였다. 가끔씩 예상치 못한 것들이 튀어나오는 순간은 신기하고 새로웠다. 


오랫동안 걷지 않았던 몸은 쉽게 지쳤다. 

그때쯤 표지판을 발견했고, 삼가천의 한 줄기쯤 보고 돌아가는 걸로 계획을 변경했다. 처음부터 말했지만 난 그저 물이 시작하는 지점이 보고싶었을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도어플의 가느다랗게 좁아지는 선을 따라 도착한 곳은 시작하는 내 계획과는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여기서 물줄기를 찾기 어렵겠다 싶었다. 

내 모든 것이 바뀔지도 모른다며 떠났던 여행이지만 역시 난 그대로였다. 드라마처럼 위기를 견뎌내고 나면 선물처럼 찾아오는 해피엔딩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수풀 무성한 곳을 사진찍고 발걸음을 돌렸다. 예전처럼 오랜 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렇지만 말이다. 여전히 길은 찾지 못했지만 그때는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던 실패가 지금은 진심으로 아무렇지 않았다. 봄이 오는 길에 하루종일 걸으며 물이 흘러가는 것도, 예상치못한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는 것을 본 것 만으로 충분했다. 

만약, 언젠가 내가 정말로 물이 시작하는 지점을 보고 싶어진다면, 그 때에 다시 길을 걸으면 되는 것이다. 그 것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호빵씨입니다.

드디어, 여행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독자 배려라고는 1도 없이, 엄청 길고 재미없는 여행기를 읽어주신 143명의 브런치 구독자분들과, 23명의 매거진 구독자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아마 중간에 읽다 그만두신 분들도, 중간부터 시작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관심을 가져 주셨다는 것에 감사드려요. 관심을 보여주신 분들이 없었더라면 끝까지 쓰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모르시겠지만 이 여행기는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계속 수, 금요일에 업데이트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지난주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성실하게 날짜는 지켰습니다. 개인적으론 그게 가장 만족스럽네요ㅎㅎㅎ

저는 곧, 다른 여행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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