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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Mar 15. 2017

#81터키-집으로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나는 아타튀르크 공항의 한 편에서 멍한 상태로 캐리어를 비닐로 감고있는 아저씨를 삼십분째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전 검색했던 ‘아타튀르크 공항’의 정보에서 터키공항에서 볼 수 있는 명물인 서비스라고 했던 것이었다. 아저씨는 돌아가는 판 위에 가방을 얹어놓고 빙글빙글 돌리며 거대한 두루마리에 감긴 비닐을 빠른 속도로 풀어 가방을 돌돌 말아 누에고치처럼 만들어 붙이고는 구멍을 내 그 사이에서 손잡이를 끄집어 내줬다. 일이분 남짓이면 가방 하나를 말 수 있었고, 가방을 들고 사라지면 그 뒤에 줄을 선 사람이 또 새로운 가방을 판에 얹었다.  

신기한 광경이었지만 나는 셔터를 누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인간의 모든 의욕이 다 사라진 상태로 벤치에 구겨앉아 회전판이 돌아가며 만들어지는 누에고치와 거대한 두루마리를 순식간에 다 쓰고 새 것으로 가는 모습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나는 왜 말 그대로 멘붕상태로 회전판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 원인을 찾자면 삼개월도 훨씬 더 전으로 가야했다. 기나긴 투쟁이 끝나고 이스탄불-인천의 편도 비행기표를 사던 그 시점으로. 여행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 부모님과, 어떻게든 떠나겠다는 나 사이의 길고 긴 투쟁 끝에 비행기표를 살 때였다. 누군가의 조언으로 한국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구글 캘린더에 여행스케줄표를 입력해 두고 필요한 사람들 계정에 공유시켜뒀었다. 이 때쯤이면 어딘가에 있을 거고, 또 시간이 지나면 어느 나라로 이동한다는 것을 미리 안내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입력하면서조차 지키겠다는 생각자체도 없었을뿐더러 실제로 지키지도 않았던 스케줄표. 

하지만 여행하며 가끔 폰을 꺼내 그 스케줄표를 확인하곤 했다. 주로 누가 언제 한국에 돌아가냐고 하면 마지막 날짜로 입력된 날짜와 시간을 보고 대답해주는 용도로.  


그러나 나는 정말이지 몰랐다. 

처음 스케줄을 입력할 때, 이스탄불-인천의 비행기 스케줄을 실수로 하루 앞당겨 적었다는 걸 말이었다. 



비행기에서 자려면 아주 피곤한 상태로 가야 한다며 일부러 전 날 잠을 적게 자고 출발한 나는 짊어지고 온 배낭을 공항 입구에 설치한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풀고, 전자기기를 꺼내고, 겉옷과 신발을 벗고 다시 챙기고 하며 여권과 그 안에 챙겨둔 이티켓 인쇄물을 몇 번 꺼냈다 넣었다 했지만 한 번도 그 인쇄된 종이를 읽지 않았다.

그 결과 체크인을 하러 가 여권을 내밀자 여권번호를 입력한 직원이 말하길 명단에 내가 없단다. 

그럴 리가 없다며 다시 보라며 인쇄된 이티켓을 건네주자 직원, 

이건 다음날인데요

라고 말했다. 

그럴리 없다고 다시 확인해 달라니 다시 한 번 컴퓨터로 검색해보고는 바보보듯 쳐다보며 말한다. 역시나 다음날 자리로 검색해 보니 내 자리는 그곳에 있다고. 

헐.   

혹시 돈을 더 내고라도 예약을 바꿀 수 없냐고 물었더니 이미 오버부킹이 여덟명 되어있다며 안 된다고 했다. 


몇 번 되지않는 공항노숙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편한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24시간 밝은 조명 아래서 긴 시간을 버텨야겠지. 보통 공항노숙은 길어도 열시간을 넘지 않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비행날짜를 정확하게 하루 착각하고 온 터라 게다가 이번에 노숙을 하게 되면 스물네시간을 꼬박 공항에서 버텨야 하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하루를 꼬박 있는 건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일단 내 뒤에 사람들이 잔뜩 늘어서 있어 자리를 피해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 공항호텔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시설에 비해 비싸겠지만, 150불 정도까지는 부담할 의향이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와 다시 검색대를 통과하여(왜 대체 호텔 들어가는데 검색대가 있는 거냐) 호텔에 가 호기롭게 가격을 물었더니 제일 싼 방이 148유로. 

젠장.   

이십만원이 넘는 돈을 내며 하루를 잘 순 없었다. 



아타튀르크 공항엔 앞서 얘기했듯이 가방 포장해 주는 사람과 같은 특이한 서비스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것이었다. 

보통 공항에서는 공항에 들어가 항공사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고, 보딩패스를 받은 후에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 면세점을 거쳐 비행기를 타는 구조라고 한다면, 터키공항은 이 순서가 조금 달랐다. 

보안검색대가 공항청사 문에 배치되어 여행객이든, 방문객이든 모조리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다.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고, 몇시간 전에 가야하고, 기내반입물품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류해야하고, 공항에 가야하는 일은 귀찮은 일의 연속이었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이 검색대였다. 

줄을 서서 코트를 벗고, 가끔 신발을 벗기도 하고, 가방 안의 휴대폰과 태블릿을 분류해 따로 담고, 엑스레이에 가방을 넣고, 나는 금속탐지기를 지나치는 그 것. 

이미 그 절차를 공항에 들어올 때 한 번, 공항호텔에 들어갈 때 한 번 겼었는데 다시 한 번 공항으로 들어오며 검색대를 지나치니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다시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이 근처의 ‘저렴한’숙소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이 말하길 ‘저렴한’숙소는 구시가지, 그러니까 내가 아침에 나와 사십분 넘게 트램타고, 지하철타고 온 그 곳에 있다고 했다.

내가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배경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그 날씨를 뚫고 다시 구시가지로 돌아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무엇보다 밖에 한 번이라도 나가면 이 공항의 검색대를 다시 통과해야 한다는게 싫었다. 

하지만 나는 148유로를 부담할 수는 없었다. 잠시 비행기표를 연장하고 여기서 다른 나라에 다녀오는 것도 생각했지만 결국엔 공항노숙당첨. 

그리고 이렇게 돌아가는 회전판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하루를 이렇게 보낼수는 없다며 하루동안 무제한 데이터로밍을 신청하고 나자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와 그 옆에 늘어선 소파를 발견했고, 데이터 로밍을 한다해도 열 몇시간을 놀기엔 할 일도 없고, 배터리도 없고, 이놈의 공항은 콘센트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고, 일부러 잠을 적게 자고 나와 잠은 솔솔 오면서 계속 이 바보같은 상황에 헛웃음만 날 뿐이었다. 


예상대로였다면 비행기에서 하늘을 내려다보며 맥주나 마시고 있었어야 할 나인데 환전한 돈도 다 써야한다며 거의 다 쓰고 와 수중엔 9리라(약 4,800원정도) 정도만 남아있었다. 공항의 높은 물가로는 한끼를 먹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이 자리 저자리를 돌아다니며 콘센트를 찾고 선물로 주려고 사온 과자를 하나하나 뜯어먹으며 시간은 흘러갔다. 

밤이 깊어지자 나처럼 노숙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였다. 좀 더 경계하다자야지 했지만 노곤한 몸에는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끝까지 찐하고 웃겼던 여행의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하룻밤이 더 시나면 삼개월만의 한국에, 우리 동네, 내 방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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