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환상

꿈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게 있을까?

by 박진우

프로이트는 꿈을 두고 소원성취라 했습니다.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반박합니다. 악몽 왜 꾸냐고요. 악몽 꾸고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 게 자기 소망이냐고 발발이 심했습니다. 그런 태도에 프로이트는 (억압된) 욕망의 (왜곡된) 성취로 재치 있게 답변을 했죠. 요즘 사람들이 꿈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과거와는 크게 다르지 않은 약간 미신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미래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바라는 것처럼요.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이기도 합니다. 초자아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가공된 무의식 단서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 자료들을 해석할 수 있다면 꿈의 원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무척 소중한 꿈입니다. 압축이란 정신 과정이 원래의 자료를 어떻게 가공하는지도 관찰할 수 있죠. 다만 쉽게 되진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야 간신히 알 수 있는 것들도 존재합니다.


저는 저의 꿈 분석을 합니다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 스승이 계실 때에는 꿈이 어려워도 크게 문제는 없었습니다. 분석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거든요. 꿈도 분석을 계속하다 보면 어려워집니다. 예전의 자료보다 훨씬 교묘해지는 겁니다. 꿈을 자주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증상이 발달하는 것처럼 꿈도 발달합니다. 꿈도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렵지 않고 현실적이며 쉬운 꿈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꿈을 꿀 때도 있죠. 그런데 이때는 더 주의해야 합니다. 욕망이 이전보다 훨씬 교묘하게 위장해있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의미에 접근하는 것이 월등하게 어렵습니다. 옛날 꿈의 의미를 재파악하기 위해서 기록을 해둔다 쳐도 그것에 접근하는데 몇 년씩이나 걸릴 때가 있죠.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자기 꿈을 기록해보세요. 그리고 며칠 지나서 그 꿈을 읽어보세요. 진짜 본인이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는지 의아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 꿈의 기록은 자기 스스로가 한 것이라서 의심도 못하죠. 그것이 '억압'을 혼자서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 겁니다.

실제로 분석을 진행하는 분들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분석한 내용을 나중에 들으면 그걸 잘 모릅니다. 기억이 안나죠. 분석을 사정상 그만두었다가 다시 시작하시는 분들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혹은 분석 중에 한참 전의 이야기를 해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죠.


진짜 제가 그랬어요?

분석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에 기억이 잘 안 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기억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분석 이후에는 따로 내용 정리를 하는 게 좋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경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옛날에 써뒀던 분석 일지 지금 보면 '어 진짜 내가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거든요.


환상이란 헛된 공상 수준으로만 기능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그런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환상으로만 만족하려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활동하기보다는 환상을 즐기는 것 만으로 만족하고 살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덕분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죠.


환상의 진짜 역할은 따로 있습니다. 현실의 거친 에너지를 견디게 만들어주는 역할입니다. 환상이라는 거름망을 통해서 자아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현실 자극을 가공합니다. 그래서 환상의 정도는 현실의 가혹함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지 엉뚱한 상상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상을 즐기고 현실에 돌아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환상을 건강하게 활용하는 방법이 될 수가 있죠. 병리적일 때는 환상을 즐기고 다시 환상 속에 머물려는 태도가 있을 땝니다. 환상 속 세계관을 현실로 바로 가져와 버리는 경우죠. 예를 든다면 어떤 현상에 대해서 프레임을 씌워버리면 사실과 달라도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렇게 피해자들도 속출됩니다. 이것은 삐뚤어진 사상을 지닌 사람들에게서 많이 관찰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죠.


그런 이유로 환상을 '덧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환상의 작용 없이는 현실을 버텨내기 힘듭니다. 그런 환상들이 승화되면서 예술 작품이나 기능성 물건들도 만들어집니다. 환상이 승화되어 현실화되면 우리의 삶이 풍족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자동차에 있는 팔걸이 있죠? 그게 원래 차에는 설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걸 개발하자 9시 뉴스에서도 보도될 정도로 큰 화제였습니다. 당시로는 '파워 슬라이드'라고 불렀죠. 조금 편리하고 싶다는 환상이 승화되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죠.

일만 하면서 생활하는 삶에서 환상을 조금이나마 즐길 수 있는 생활로 가자는 것을 '워라벨'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워라벨'은 거친 현실을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게 여유를 달라는 의미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네요. 에둘러 표현한 말이 되겠지요?



무의식으로 현실 단서들을 조합해서 욕망을 위장한 것을 꿈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꿈이 아무런 의미 없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 같아도 그 꿈이 아주 체계적으로 위장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나의 관심'을 끄는 내용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꿈을 아주 상징적으로만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꿈 분석을 어떻게 하니까 사람이 낫더라는 말도 하는 경우도 있죠. 융 쪽에서도 등장하는 말이지만 프로이트 쪽에서도 그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요. 현실 단서를 탐구하면서 그 출처들을 따져나가는 과정이 무척 유익합니다. 의미가 굉장히 촘촘하게 압축이 되어 있는 것이죠. 꿈은 한 장면인데 그 압축을 풀어보면 여러수십 페이지의 글이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꿈 분석을 통해서 신경증 증상이 갑자기 완화되는 경우들도 생깁니다. 현실 출처들을 따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융은 조금 다르다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꿈에서 나온 한 장면에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 것으로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그런 식의 이미지로 정신분석의 꿈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가 되긴 합니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 방정식에 그런 내용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죠. 무의식 방정식의 예를 든다면 자신의 라이벌이 꿈에 등장할 때는 같은 색의 옷을 입는다는 식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이와 비슷한 건 해몽서에서도 등장하죠? 그런 해몽서 식의 상징법은 프로이트의 꿈 분석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신분석에서 꿈을 분석하는 과정은 꿈의 내용을 듣고 어떤 생각들과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검토합니다. 신경증을 분석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리고 언어 연상과 체험 연상을 검토합니다. 굉장히 많은 내용 같은데 현장에서는 엄청나게 압축되어서 등장합니다. 분석 주체는 자유 연상을 하되 정신분석가 역시도 그 꿈을 듣고 연상을 활용합니다. - 해외에서 분석 수련을 하신 분들의 경우, 이 부분에서 제한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레지던트 과정에서 경험하는 거라네요 -


예시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죠. 어떤 사람이 꿈에서 축구를 하면서 골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현실에서 축구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축구를 한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꿈에서 축구를 했다면 단편적으로는 '아 내가 축구를 하고 싶은 소망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과거를 살펴보니까 행동도 느리고 굼떠서 다른 사람들이 '축구'라고 놀린 겁니다. 이때의 '축구'는 바보라는 의미죠. 즉. 언어 연상이 적용이 된 겁니다. 따라서 축구를 하면서 골을 넣는 꿈은 '바보'에서 탈출하려는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검토되기도 합니다.


이것을 외국의 사례에 접목해봅시다. 미국에서 soccer를 '바보'로 사용하진 않죠? 어원으로 접근해 들어가면 association football로 연상이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국가별로 언어 연상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확 달라져버립니다.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렇게 되면 분석 주체의 도움을 통해서 진행하는 수밖에 없고요. 여기에 대해서도 교육이 있는 것으로는 압니다만... 저는 그것을 아마 경험해볼 일은 없지 싶습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꿈도 분석을 했습니다. 이는 프로이트 저서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다른 사람의 꿈인 것처럼 해서 자기 꿈의 해석을 집어넣었죠. 괜찮은 사례라면 저도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꿈뿐만 아니라 실수도 분석을 했죠. 프로이트를 주의 깊게 읽으신 분들이라면 <시뇨렐리>라는 사례를 알 겁니다. 정신분석 학자들의 책에 종종 등장하는 이 사례는 프로이트의 이탈리아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미술가의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 것이 이상해서 밤새도록 그 내용을 분석해서 어떤 의미인지 찾아내는 거죠.


그런 류의 모든 꿈, 실수, 신경증 분석 과정을 거친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대한 결론을 내립니다. 자기 무의식에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요. 자유 연상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전의식' 자료 까집니다. 가끔 위대한 치료자들이 자기 스스로를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요. 치료 구조 자체가 전의식 구조를 다루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위대한 치료가라고 해서 바로 무의식에 대해서 알고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정신분석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고 해서 자가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증상에는 증인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자가치료를 한다 치면 그 증인이 없고 또 다른 방식으로 증상은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대신 의식에는 그렇게 드러나진 않겠죠. 보통 그것을 치료로 생각하겠지만요.


인류사에서도 꿈을 통해 위대한 발견을 한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벤젠 고리 구조의 발견이 그렇죠. 연구할 때는 죽도록 안 풀리던 구조식의 단서를 꿈에서 발견한 겁니다. 그래서 그 단서를 구조식에 적용을 해보니까 그동안 애를 먹었던 문제가 스르륵 풀려버린 것이죠. 그래서 꿈이 지니고 있는 유익함도 있습니다. 그것을 해결하려는 자신의 욕망이 작용했기 때문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래도 '악몽'을 꾸시는 분들은 꿈이 매우 불편할 겁니다. 어떤 분들은 잠들면 악몽을 꾼다고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악몽이 너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약을 먹는다 해도 악몽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악몽을 꾸는 이유는 '현실 방어'라는 측면이 가장 강합니다. 현실에서 생길 위험 상황을 꿈을 통해 미리 경험해서 임시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두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불안한 현실을 경악으로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악몽이란 경악스러운 현실을 사전에 방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악몽 역시 상징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대처할 수 없는 경악스러운 현실을 탐구하여 스스로를 방어 시스템을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꿈에서 미리 경험해서 현실의 불안을 완화했으니 직접 탐구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도 악몽은 여전히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악몽을 꾸고 시간이 좀 지나면 기분이 훨씬 좋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어가 갖춰진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꿈이든 신경증이든 실수든,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불필요한 정신 과정은 없습니다. 주체의 필요에 의해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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