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신경증을 일으키는 요소

by 박진우

좌절이란 무엇일까요? 프로이트는 [신경증 발병의 유형들]에서 신경증 촉발 요인 중 좌절을 첫 번째로 꼽습니다. 좌절하게 되면 현실에 투자하던 나의 에너지가 다시 되돌아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했는데 거절당하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많은 에너지를 투자했지만 그것이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선회해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에너지를 혼자서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투자한 대상 리비도를 스스로 처리하기 위해서 술에 취해 비틀거릴 때도 있을 것이고 조금 비겁한 방법으로 정신과 약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물질들은 현실에 투자한 관심들을 강제로 철회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죠. 부부관계에 트러블이 있을 때, 약물을 복용하고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관심이 강제로 철회되는 효과 덕분에 트러블로 일어날 이유가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산후 우울에 시달리는 엄마들이 우울증 약 먹고 옆에서 아기가 울어도 나 몰라라 하고 멍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죠.


살면서 무엇인가를 하다가 큰 좌절을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연인들의 경우에는 이별하고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죠. 그렇게 굉장한 괴로움을 감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별은 사랑한 만큼의 상처를 남깁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괴로울 이유도 없죠.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 것을 정신 장치의 움직임과 연결해서 생각합니다.

실연은 나르시시즘에 영원한 상처를 남긴다

실연도 반복적으로 경험할수록 무디어집니다. 현실에 투자하는 에너지들이 조율이 된다는 말이죠. 그렇지만 사랑함이 클수록, 신뢰를 가지고 있을수록 좌절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화류계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막을 수가 없죠. 비록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판다고 하더라도 사랑과 신뢰는 별개의 문제로 작용합니다.


좌절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운명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운명이 그렇게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게라도 합리화하려 합니다. 그렇게 현실을 합리화해도 그 사람이 나를 떠난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배워가면서 상처를 입어가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당연하게 경험하는 것들이기도 하죠.


크고 아름다운 진주가 있습니다. 그 진주란 결국 진주조개 스스로가 상처를 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조개가 상처를 아물게 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상처 없는 진주조개로 부터 진주는 나오지 않습니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인생의 보물을 가슴에 안고 있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좌절이란 그 당시에는 굉장히 괴롭지만 나중에는 삶에 있어서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진 보물 같은 경험은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해 주니까요.


그 보물은 우리의 삶에서 반복되는 것들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운명을 바꾸고 싶은가요? 사무엘 베케트는 실패하고 다음에는 더 나은 실패를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좌절은 더 나은 실패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우리의 삶이 반복하는 것을 끊어버릴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 좌절이기도 하죠. 다만 그것을 잊은 채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그것들은 현실의 철퇴가 됩니다. 그 반복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현실의 보물이 됩니다. 그런데 신경증에서는 그런 반복을 하고 싶지 않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반복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신경증적 반복 강제'를 그렇게 부르지요. 정신에서 어떤 알 수 없는 강제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좌절 상황에서 긍정적 사고가 그것을 진정시켜줄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점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입니다. 좌절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의 결과 중 하나는 스스로에 대한 비판 까대기입니다. 신경증 문제를 삶에서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주체들은 스스로를 비판하는 힘을 길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방어하고 현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좌절을 견딘다는 것이 성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좌절 속에서 보물을 발견할 때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정신분석을 할 때 분석가는 주체 스스로 자신을 탐구할 수 있도록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단서들을 통해서 스스로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죠. 신경증의 특징은 낫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낫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좌절도 마찬가집니다. 스스로 이겨낼 마음이 없다면 좌절은 그대로 남아서 흔적으로 남습니다.


분석시간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집니다. 제일 먼저 주체의 탐구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반대 상황이 있습니다. 분석 주체가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석가의 자리를 지우기 위한 강박적인 전략입니다. 라캉은 이런 경우에 특이한 전략을 취했습니다. 전화받고 커피 가지러 가면서 말을 한마디 합니다.


분석 계속하세요

한국에서는 그렇게 통용이 되지 않을 법한 내용일 겁니다. 아직 한국에 라캉 기법을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테니까요. 물론 이것은 정신에서 분석가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저도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정신분석 연구하시는 분과 잠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가변적 분석시간과 같은 분석기법을 도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 스승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이것이 도입되는 것이 시기상조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분석비를 냈는데 분석가가 돈은 받고 그냥 되돌려 보내는 상황이 생긴다고 해봅시다. 그럼 당연히 그만둘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가변적 분석시간이 분석시간을 줄이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시간을 굉장히 늘리기도 하죠. 미국의 어느 정신과 의사는 이 것을 참조해서 10시간 동안 분석을 쉬지 않고 진행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 경우에는 몸에 문제가 생깁니다. 저도 딱 한번 가변적 분석시간을 적용해서 서너 시간씩 진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몸이 견디질 못해서 병원신세를 질 뻔했습니다. 한의원 다니면서 침 맞으면서 버텼죠. 정신노동이라는 게 에너지 소모가 상당합니다. 몸이 약한 분석가의 경우에는 분석이 많이 잡혀 있을 때 어지럽거나 구토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견디지 못하고 잠들어버리죠. 제 기법이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분석이라서 예외일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닙니다. 저도 초기에는 분석 후에 체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면서 쓰러지듯 잠들곤 했었습니다. 현실적인 육체노동이 아니라 '정신노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앉아서 말을 하는(제 경우에는 채팅하는) 상담에서 그런 체력 소모가 일어난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공부할 때 잘 먹어야 된다고 합니다. 공부라는 정신노동을 통해서 체력소모가 꽤 많이 일어나거든요. 혹은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을 때도 정신노동이 일어나고, 작가들이 글을 쓸 때도 정신노동이 발생합니다.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개발하시는 분들도 체력적인 부담을 꽤 많이 느낍니다. 정신분석 또한 마찬가집니다. 분석 주체의 증상을 듣고 단서를 발견해가면서 하나하나 연구를 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신경증이라는 게 일반화된 어떤 방법으로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완화가 되는데 치료가 된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분석가가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지 않을 때, 좌절감을 느끼거나 혹은 불만족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스스로 뚫고 올라가야 할 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분석을 받던 경험에서 그런 적이 있습니다. 조금 더 뚫고 올라가야 하면 답변을 잘 안 해주십니다. 그런데 연상이 막히거나 하면 말을 던져서 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이 그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문명화되면서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타인과의 비교가 심해지면 좌절은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시기심 역시도 그렇게 등장한 것 같습니다. 또한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정신건강 문제 역시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좌절감의 문제를 암시하는 것만 같습니다.


정신건강의 기본적인 조건은 일을 하고 사랑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현대는 일 하고 사랑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성별 간 갈등 문제와 일자리 문제는 정신건강의 조건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번에 닥쳐온 코로나 19의 문제는 더욱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좌절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 덕분에 신경증 발병의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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