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폭력

감정이 신체를 고양시킬 때

by 박진우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그렇게 발생한 분노는 매우 큰 힘을 불러일으킵니다. 분노하면 없던 힘도 나옵니다. 평소보다 더 힘을 쓰고 폭력적이 되고 충동에 몸을 맡깁니다. 대상을 파괴하려는 충동도 일죠. 따라서 분노에 의해서 신체는 고양됩니다. 심장도 급격하게 뛰고 체온도 상승하죠.


화를 낼만한 이유가 있는 상황에서 내는 화라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시비가 걸리거나 혹은 폭력을 휘두를 때, 분노해서 같이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자신의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청소년들도 그런 경우에는 일반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습니다. 폭력과 관련된 문제를 일으킨 전적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따로 대안학교로 빠지는 경우가 많죠. 조금만 거슬려도 주변의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통제를 할 수 있으면 되는데 요즘은 교권이 낮아져서 그렇지도 않습니다. 규율을 바로 잡지 못한 청소년에게는 폭력이 질서의 역할을 담당해버립니다. 그런데 교육자는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 것이 법입니다. 그렇게 사회적 질서를 어기고 폭력으로 주변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조금 심각하면 법적 처벌도 그들을 막지 못합니다.


분노라는 감정을 감상적으로 받아들이면 어린 시절 엄마 아빠한테 사랑을 못 받아서 그렇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랑받고 싶어서 저렇게 화내고 분노한다고요. 실제로 그럴까요? 고양된 신체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노는 질서에서 벗어나게도 만들고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는 책임의식이 결여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처벌받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처벌받지 않으려 합니다. 책임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죠.



분노는 몸의 병과도 관계됩니다. 지나치게 분노하면 혈압이 올라가고 맥박이 빨라집니다. 그리고 대상을 향한 미움의 감정이 올라오고 충동과 결합하면서 대상을 파괴하고자 합니다. 이것들이 자주 반복되는 경우에는 신체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옵니다.

드라마 같은데 보면 화가 난 아버지들이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장면을 묘사하곤 합니다. 분노 감정이 올라오면서 발생하는 충동을 몸이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그것을 두고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고도 이야기합니다. 화낼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노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는 사실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 풀라'는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샌드백을 치거나 아니면 달리기를 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런데 그 분노 자체로 인해서 판단력도 흐릿해지고 인지하는 것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단순히 '스트레스 풀라'는 소리를 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없고 처방도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의 기초를 반복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복싱으로 따진다면 잽 연습을 하는 것도 좋고 검도를 한다면 검도의 기초를 연습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혹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면 그 전문적 일의 가장 기초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마음 정리에 도움이 되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럴 때 프로이트를 읽습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기초가 되어주는 일은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유익한 효과를 일으킵니다. 제가 이것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이랍시고 알려진 것들 중에서 이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명상해라, 스트레스 풀어라 이런 류의 조언은 그렇게 유익하지 않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분노하게 되면 엉뚱한데 화를 풀 수도 있습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대상을 바꿔서 분풀이하는 방식입니다. 정신분석은 이런 방식에 대해서는 반대하죠. 화가 난다면 그 사람과 풀어야지 엉뚱한 데 가서 화풀이하라고 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대상 이동으로 풀려고 하는 것은 신경증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이죠.


분노로 인해서 타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무의식적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 이런 내용을 무의식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몰아붙이는 것은 남 탓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입니다. 자기 문제에 대한 책임의 회피죠. 상대가 밉더라도 나의 생산성과 관련된 일이나 프로젝트는 제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말 짜증 나게 굴고 괴롭힌다면 신고해도 됩니다. 그런 것은 자신의 권리를 실천하는 것이니까요. 책임 없는 권리를 남용하려는 사람에게 법적 처벌은 책임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예전에 수동공격성이라는 말이 가끔 회자되었습니다. 정식 진단명으로 채택된 것은 아닌데 성격장애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죠. 예를 들면 어떤 사람 앞에서 눈물 흘리면서 쇼를 하는 거죠. 일은 진작에 다 망쳤는데 그 앞에서 죄송합니다만 연발하면서 그 사람을 공격합니다. 이미 피해는 입혔고 상황을 얼버무리려는 식입니다. 종종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자기는 세상에서 제일 쓰레기 같은 사람이라고 자기 비하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의 중요한 점은 책임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을 책임질 수 없게 만드는 것이죠. 그럴 때는 죄송하다는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임관계를 따지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이런 내용을 열거한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아마 신조어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네요.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등장하고 얼마 안 되어서 간헐적 폭발 장애라는 말이 생긴 것을 보면,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진단명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새로운 진단명을 만들어서 상황을 패치한다고 한들 변하는 것은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adhd 때문에 행동 조절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자기가 알고 보니 간헐성 폭발 장애였기 때문에 그랬다고 합리화할 구실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 어떤 행동이든 내재적인 병의 성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처해진 상황에 대한 연관성으로 인해서 결정이 됩니다.


뭐 조금 일상적인 사례를 생각한다면 남자의 행동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여자가 이별을 고했는데 그제야 남자가 잘못했다고 빌면서 '나 사실 우울증이라서 그랬어'라고 말하는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이별을 불러일으킨 행동은 병의 성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잘못한 것이 쌓였다는 말일 겁니다.


화가 난다면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세요. 엉뚱한 데서 화내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병리적으로 나타날 때도 엉뚱한데 화를 푸는 내용이 있습니다. 말을 할 때도 타인을 끌어들이지 말고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말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억지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문제를 더 키울 수 있습니다.


분노란 미움의 감정에 충동이 개입해서 만들어집니다. 이런 감정이 일어나는 것에 과거를 끌어들여서 감상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상처가 많아서 분노가 많은 아이라는 식으로 포장을 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포장이 변화에 유익하진 않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포장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 상담에서 이렇게 포장을 하게 되면 상담사가 끌려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 경우에는 오히려 부정적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아마 청소년 상담사들이 가출 청소년들을 지원하다가 성폭행 등의 범죄를 당하는 경우를 들어보신 분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문제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받아들여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중요한 것은 책임입니다. 정신분석은 이차성징이 지난 청소년의 정신구조도 성인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논리구조는 똑같이 흘러갑니다. 그래서 청소년 때는 더 책임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노하고 그것을 풀고 싶다면 그에 대한 책임문제가 있음을 잊지 마세요. 책임질 수 없는 일은 처벌이 그것을 대신합니다.


생활하면서 분노 감정으로 인해서 폭력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에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에게 어떤 사람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어머니를 폭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모친에게 비난받은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 어느 커뮤니티에 어머니로부터 비난을 받아서 폭행했다는 내용을 올렸습니다. 어느 누가 그 글을 보고 좋은 말을 할까요? 커뮤니티에 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난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그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절 찾아와서 정신분석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주길 바랬습니다. 자기가 어머니를 때릴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설명해줘서 마음을 좀 편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습니다. 자기 책임을 외면하려는 그런 태도는 병들어 살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폭행한 사실에 위로와 공감을 받고 싶어 하는 그 태도에 대한 비판을 보냈고 그는 어이없어하면서 비난받은 마음을 위로해주면 안 되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답을 원했고 그것으로 편해지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를 감상적으로 포장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아무런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그 입장에 힘을 실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병은 그렇게 발달하니까요.



일상에서 어떤 상대가 폭력적으로 자극하면 이쪽에서도 반응이 가는 게 맞을 겁니다.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무시하거나 합의금을 받는 걸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옆에서 툭툭 때려도 쳐다보지 않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옆에서는 때리고 있는데 무시하는 척을 합니다. 같이 있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논리적인 설득으로 교화되진 않을 겁니다.


프로이트는 폭력으로 힘을 과시하는 상대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은 맞서 싸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냥 당하고만 있으면 폭력을 더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제 분석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말더듬이 심한 아이였는데, 학교에서 친구가 돈을 빌리고 또 웃으면서 때렸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당하고만 있었는데 나중에는 무엇인가를 느끼면서 그 가해자를 한 방에 날려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그 주먹 한방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도 날려버렸고 자신의 말 더듬도 날려버렸습니다.



분노의 감정이 밀려 올라오면 책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저지르면 나중에 역풍을 맞을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분노와 폭력의 책임을 미리 인지할 수 있다면 스스로의 억제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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