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중독에 대하여

일 중독은 정말 부정적으로만 작용할 끼?

by 박진우

완벽주의로 인해 흔히 말하는 우울증이 더 심해질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힘든 일이나 상황에 처할수록 공부에 파묻히거나 일을 더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아프면 쉬어야 하는데 공부한다고 혹은 일을 억지로 너무 하는 것이 문제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로 즐기는 것 없이 공부와 일만 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입니다. 그러다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의 심리 역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일을 하려는 데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의미가 있다는 것은 정신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을 만나게 되었을 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무작정 쉰다고 해서 더 좋아지는 것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의 심리 처방이란 내가 가장 잘하는 혹은 좋아하는 공부나 몸에 익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우울증에 시달리고 마음이 힘들어서 쉬어야 하는데 오히려 일과 공부를 권장하다니요.


스피노자는 에티카라는 어려운 책을 썼습니다. 당대의 지식인들도 에티카에 쩔쩔맸다고 합니다. 스피노자의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선생님. 너무 어렵습니다. 정말 이 공부를 꼭 해야 하나요?

공부를 왜 하는지 그 목적에 대해서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스피노자가 대답한 것이 명답이었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라는 식의 답변을 하지 않았죠.


힘들어도 매일 조금씩 해나가면 어느 순간 그것으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네, 결국 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 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문가들은 힘들고 괴로울 때면 자기 전문 분야를 파고들어서 연구하곤 합니다. 저 역시도 힘들고 괴로울 때는 프로이트를 펼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마음 정리가 많이 되거든요. 이런 현상은 정신분석뿐 아니라 구조주의 학풍에서 전반적으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던지 아니면 달리기나 춤 등의 몸의 기초적인 움직임을 통해서도 정리를 해나갈 수가 있죠.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무조건 쉬는 것이 능사가 되지는 않습니다.



일에 중독된 워커홀릭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두고 행복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수치심과 자존심 등의 원인으로 착각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불행한 삶을 살아가려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외롭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 보다는 일이 그 사람의 정신에 유익한 역할을 해준다는 것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을 통해서 자기 마음의 평정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보아야겠죠. 퇴근하고 나면 괜히 사람 관계에 시달리거나 혹은 할 일이 없어서 마음만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일은 이 사람에게 마음을 정리하게 도와주고 그 자체로 편안함을 느끼게도 해줄 수 있습니다. 몸이 힘든 것보다 정신이 복잡한 게 더 문제가 될 테니까요.


일 중독 현상이 너무 과할 때는 분명 병리적입니다. 일이 정신작용에 긍정적인 기능을 해주고 있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추구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음의 보호장치로서의 일이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마치 알코올 중독에서도 술이 일으키는 정신작용에 의존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내 마음을, 정신을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것이 병리적 현상을 불러일으킬 때, 진정한 의미에서 '증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신경증이 발병에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립니다. 자기 보호가 너무 과도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신경증 발병의 원인을 갈등에서 찾았습니다. 갈등에서 자기를 보호하는 장치가 신경증이기도 하죠. 따라서 낫고 싶지 않으면 죽어도 안 낫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신분석이 바라보는 신경증 발병은, 에너지 결핍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에너지 과잉을 이야기합니다. 앞서 글 '좌절'에서 이야기했지만 투자한 리비도가 주체에게 되돌아오죠? 그렇게 '과잉'이 된 리비도를 처리하기 위해서 발생한 것이 신경증이 됩니다. 영미 쪽의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에너지 결핍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서 그만큼을 채워주고자 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일 중독이라면 그만큼 쉬게 해 주고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면 그만큼 더 사랑받게 해 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결핍의 관점으로 들어가면 끝이 없습니다. 영원히 채워줘야 하는 문제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우울하면 과거를 많이 떠올리면서 어떤 원인을 찾고 후회를 합니다. 그렇게 찾아온 우울은 현실을 더 명철하게 바라보게 해 줍니다. 그때 드는 수치심을 부정적인 것으로 느낄 수는 있겠지만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입니다. 너무 명철한 현실 지각이 지레 겁을 먹게 하고 발을 뗄 수 없게도 만듭니다. 이런 태도를 옆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를 못합니다. '우울해서 저러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것도 좀 한계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울하지 않는 경우도 대단히 많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취합한 정보를 통해서 미래에 생길 일들을 예측하는데 그 시간을 모두 쏟아붓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이런 예시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연애를 글로 배운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론은 빠삭한 사람이 되게 많았죠. 문제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서면 말 한마디 못한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애 이론 같은 거 안 따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연애도 잘하고 사랑도 잘 키워갑니다. 글은 경험을 뒷받침해 줄 수는 있지만 경험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즉,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안다고 해도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다면 미래를 알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도 학부생 시절에 상담사들 축어록을 통해서 공부를 조금 했었습니다. 대학원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고 당시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 축어록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앞에서 이야기하는 내담자의 신경증 반응에 대한 반응이 미리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상담사도 상담을 하면서 그에 따르는 정신 과정들이 일어나고 미처 반응할 수 없다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이 말의 의미는 만물이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생명이 가장 격렬한 변화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은 약동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더 좋아질 수도 있지만 나빠지는 상황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현재 상태만을 유지하려고도 합니다. 그래서 좀비처럼 살아가려는 사람들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를 시도하세요. 그대로 머물지 마세요. 완벽주의에 사로잡혀서 현재 상태만 유지하려 하지 마세요. 상태변화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지지고 볶고 싸울 수 있는 커플이 오래 연애를 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건강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공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행복을 포기하고 성과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있죠. 그럴 때는 조금 생각해보세요. 일이 정신적인 평안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지요. 인간의 몸은 한계가 있습니다. 정신적 편안함을 위해서 일에만 몰두하다가 신체적 쇠약이 발생해서 병드는 상황도 생깁니다. 그래서 워라벨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삶에서 사랑이 빠져 있다면 결국 병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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