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의 원래 이름

'경악'

by 박진우

공황장애라는 진단명이 유행한 지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방송에서도 공황장애에 대해서 종종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심리적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할 때, 자신이 공황장애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죠. 다른 사람들 앞에 서있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눈길을 끄는 단어가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그리고 그것이 집단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단어는 함축적인 힘을 지니면서 동시에 더 이상의 사유를 막습니다. 원인을 찾을 수 없게 만드는 작용입니다. 여기는 집단 심리의 영향도 어느정도 포함이 됩니다.


정신의학에서 공황 panic은 죽을 것 같은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가슴이 조여 오고 숨이 차고 심장이 급하게 뜁니다. 그래서 급하게 응급실에 가기도 합니다만 가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거기다가 스트레스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고 설명하죠. 개인적으로는 그 상황에 의문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분석 현장에서는 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에서도 공황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집단 심리를 연구하면서 군대에서 공황 Panik이 가장 잘 연구되었다고 합니다.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공황의 특징은 정신의학과는 전혀 별개로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집단 심리'연구에서 출발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상관의 어떤 명령에도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모든 개인이 주변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자기 자신만 염려하는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또한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상호 관계를 무시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대하고 무분별한 공포가 해방된다. - 집단 심리학과 자아 분석 중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에 공황이란 말을 그렇게 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맥두걸이라는 학자는 "직접 감응하는" 것으로 공황을 설명합니다. 해방되는 공포감이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프로이트가 반박은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그리고 프로이트는 같은 논문에서 개인이 공황에 빠지게 되는 상황에 대해 "자기 혼자만 염려하게 되고 감정적 유대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핵심으로 둡니다. 이 말을 단순히 "죽을 것 같은 불안"이라는 의미로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공황의 결과로 사회적 질서를 위반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정신의학에서 이야기하는 공황장애는 신체증상이 동반되는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극도의 공포심과 함께 심장 박동도 심해지고요. 그런데 이것이 등장하는 게 서서히 나타나진 않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덮쳐오죠. 미처 준비되기도 전에 말입니다.


이렇게 등장하는 증상에는 '공황'이라는 말보다 '경악'이라는 말이 훨씬 잘 어울립니다. 경악하게 되면 온몸이 굳어버리기도 하죠. 굉장히 힘들기도 하고요. 어떤 진단명이 유행을 타고 용어가 일반화되기 시작하면 대중은 그 단어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공황장애'라는 말의 용법 자체가 원래의 의미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연예인들도 있습니다. 김구라 씨도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하죠? 진단은 공황장애라고 하지만 증상의 메커니즘을 추적해보면 김구라 씨는 전처와 살면서 너무 많이 참았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겁니다. 그렇게 발생한 정신적 흥분이 과잉상태가 되었다는 말이 될 것이고요. 그 흥분 과잉상태를 견디기 위해서는 주변의 관심을 철회하려는 태도가 필요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분이 너무 강한 책임감을 지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과거 위안부 할머님들께 망언한 것으로 오늘까지 할머니들을 챙기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보통 책임감으로는 그렇게 오랜 기간을 돕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때론 그러한 요소들이 신경증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공황장애는 dsm에서 '불안장애'의 하나로 분류된 것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누차 이야기했지만 불안의 성격은 먼저 신호를 주는 것으로 준비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흔히 알려지는 공황장애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덮쳐오는 발작입니다. 그래서 저는 불안보다 '경악'발작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분석은 상황에 따른 용어의 구분에 조금 민감합니다.


이러한 문제로 대인관계나 업무 관계, 학교 생활에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공황장애에 시달리던 어느 청소년은 학교에서 불안해지면 무단 조퇴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가지 말라고 해도 조퇴를 해버릴 정도였죠. 그런데 이 친구는 신체적 쇠약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쇠약해지다 보니까 불안 문제가 등장하고 학교에서는 경악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죠. 특히 신경증적 특성이 결합되면서 시선을 견디지도 못했었고요.


덕분에 삶의 질은 많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공황장애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고 한탄하기도 했고 죽고 싶어 하기도 했었습니다. 자기는 늘 불안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약만 복용하고 그것만이 자기 정신기능을 강화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정 반대였죠. 정신기능은 약물로 퇴행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견뎌야만 했었습니다. 나중에는 그것들을 감당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공황장애, 불안장애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일 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약만 복용하겠다면 증상은 발달과정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렇게 조현병 진단을 받게 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병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 시나리오를 짜는 것보다 당장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프로이트가 정신건강의 조건으로 내건 '일하고 사랑하는 것'을 아주 단순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후대의 학자들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의미의 멋진 말들을 쏟아냈거든요. 그런데 말이 단순할수록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니기도 합니다. 프로이트의 말이 그런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를 읽을 때는 쉬운 말을 풀어야 하는 난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의 말은 철저한 임상 경험을 통해 다듬어진 말이기 때문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탄생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