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관점

프로이트는 정신을 어떻게 관찰했을까?

by 박진우

심리학 서적 등에서 마음의 관찰을 위해서 고안한 개념인 '자아-초자아-이드'는 오늘날 굉장히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마음의 지형학적 이론 혹은 2차 Topic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상호 관계를 가지는 것을 두고 구조 이론이라고 이름을 붙이죠?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셨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지형학적 이론과 구조이론으로 정신을 설명합니다. 이것이 현대 정신분석의 관점이고 주로 의대에서도 이런 식으로 배웁니다. 심지어 범죄심리학에서도 이렇게 설명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임상이 너무 간단해지지 않을까요? 정신작용을 바라보던 프로이트의 관점에 대해서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프로이트는 정신을 세 가지 관점으로 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가 기계적인 구조로 보았습니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이 기계와 같이 정해진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이 기계처럼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메커니즘들이 작동한다는 말입니다. 각각의 장치들마다 에너지를 주고받는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는 역동학 Dynamics입니다. 즉 정신 장치들 간에 세력관계가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어느 세력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검토하고 그것이 현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입니다. 정신분석을 두고 리비도 경제학이라 부릅니다. 한 주체가 어떻게 정신 에너지를 운용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면 증상에 훨씬 더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물론 논리실증주의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리비도'에 대한 실체가 없다면서 비판하긴 합니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리비도를 '양적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증감률은 존재하지만 증감수를 계산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프로이트는 정신작용을 검토할 때 이 세 가지가 같이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자아-초자아-이드가 따로따로 작동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 정신 장치가 따로 작동한다는 것은 에릭 번이 개발한 에고그램의 방식입니다. 정신분석을 공부하신 분들은 여기서 혼란이 생기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하는 말이 지금까지 배워온 것이랑 차이가 꽤 날 테니까요. 정신분석 강의를 하신 분들도 당황스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당황스러움이 생긴 이유는 정신분석을 가르칠 때 '리비도 이론'을 빼먹었기 때문일 겁니다. 프로이트는 분석 현장에서 리비도라는 말을 썼습니다. 저도 분석을 할 때 리비도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신작용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그 말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말을 사용하진 않을 겁니다. 경제학적 관점이 적용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정신분석은 갈등의 심리학으로 불립니다. 그렇게 알려졌지만 좀 더 엄밀하게 따지면 심리학의 영역에서 펼치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의학에서 관찰할 수 없는 것들을 보다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의 영역에서 말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히스테리성 질환은 생물학적 원인은 없는데 통증과 같은 증상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다룰 수는 없으니 심리라는 영역에서 이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일일이 갈등을 처리해가는 것은 버거운 일입니다. 현실에서 갈등 상황이 생기면 우리 정신 기관에서는 리비도의 조율 작용이 일어납니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아가 상황을 다루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초자아의 압박으로 힘을 빼고 어떤 경우에는 나르시시즘이 에너지를 공급해서 힘을 올리기도 합니다. 그것들이 때론 신경증 반응으로도 등장하고 방어기제를 동원해서 자신을 방어하려는 움직임으로도 등장합니다.


정신 분석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과정을 추적해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억이 잘됐느니 잘못됐다느니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리비도 처리과정을 관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됩니다.


정신분석을 두고 잘 듣고 잘 해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쉽습니다. 폴 리쾨르 같은 학자들은 정신분석을 두고 해석학으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임상에서의 정신분석은 해석 작업보다는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프로파일러의 수사 기법에 더 가깝습니다. 증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식으로 삶에 개입하는지를 살피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은 분석 주체 입장에선 때론 짜증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임상에 들어서서 분석가가 증상을 추적하면 그 증상은 도망 다닙니다. 그럼 정신분석가는 그 흔적을 따라서 다시 추적해서 따라갑니다. 증상의 이동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똘마니에 불과합니다. 본체를 추적하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하죠.



정신분석은 꽤 많이 비판받습니다. 그런데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특징이 있습니다. 프로이트 초기 이론에 머물러서 비판합니다. 즉, 성욕 문제라든지 정신병에 정신분석이 소용없다든지 하는 내용만 가지고 옵니다. 그런 비판들은 후대 학자들도 같이 합니다. 게다가 프로이트가 가르친 것을 후대 학자들이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었습니다. 이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미국에 건너간 제자들로부터는 왜곡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나르시시즘이라든지 죽음 충동에 대해서는 프로이트의 제자들도 잘 몰랐었습니다.


미국에 건너간 정신분석가들 중에서 라캉이 프로이트를 배신했다고 라캉이 지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릭 에릭슨이라든지 하인츠 하르트만, 안나 프로이트, 루돌프 뢰벤슈타인 등 여러 명이 있습니다. 주로 자아 심리 학파에 기여한 학자들이죠. 그런데 보면 조금 이상하죠? 안나 프로이트는 프로이트의 딸이고 뢰벤슈타인은 라캉의 분석가였던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프로이트의 배반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임상 구조를 따져보면 자세히 등장합니다. 라캉은 편집증의 전문가였고 프로이트에 따른다면 자아 기능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편집증을 연구해보라고 기록했습니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말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편집증의 전문가로 우뚝 섰으니까요.


그런데 편집증의 경우에는 자아가 강화된다고는 하는데 그 에너지의 출처가 나르시시즘으로부터 과잉 공급되는 에너집니다. 따라서 프로이트 식으로 검토하면 자아 심리 학파에서 주장하는 자아의 강화는 '편집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겁니다. 물론 편집증이라고 해서 생활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그 결과는 별로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온통 싸움만 벌어지는 흑백논리로 가득 찬 사회가 되는 것은 주체의 자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회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다면 라캉 같은 사람이 반대를 했을까요? 정신분석의 정신이 그것에 있는데요.



사람들이 정신분석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신분석은 무조건 '나'를 찾는다거나 정신과에서 실시하는 고급 치료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적용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경과에서 발생하는 히스테리 문제, 류머티즘이라든지 강직성 척추염, 혈관성 두통에는 저도 분석 경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회복하는 효과가 등장했다는 말입니다.


프로이트의 책을 보면 의사의 도움을 받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히스테리 연구에서도 치과의사의 도움을 받고 또 다른 논문에서 안과의사들의 도움도 받고 했었으니까요. 실제 신체질환과 히스테리로 등장한 것은 구분을 해야 하거든요. 물론 현대에 들어서면서 과거처럼 히스테리 현상은 줄어들었다고는 하는데 제가 지금까지 바라본 것으로는 그것이 직접적인 신체질환을 유발하는 쪽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현재 정신분석은 약간의 위기상태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통 프로이트를 하시는 분이 적습니다. 라캉이 워낙 대단해서 정신분석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 라캉 학파입니다. 그런데 저도 뭘 모를 때는 라캉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임상들을 관찰하고 프로이트의 위력을 피부로 느끼다 보니까 라캉에서는 관심이 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라캉이 연구한 임상 문제에는 저도 관심을 가지고 있죠.


또 정신분석을 하는 의사분들 중에서는 라캉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쓸데없이 프로이트 이론을 확장시켰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라캉의 프로이트가 의학에서 이야기하는 프로이트가 많이 다릅니다. 영미 학파로 전해진 프로이트와 후대에 라캉이 프로이트의 맥락을 회복시킨 정신분석의 차이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입니다. 물론 임상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라캉에서 이야기하는 프로이트가 임상에서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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