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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May 27. 2022

미움받을 용기?

철학자는 프로이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안녕하십니까

프로이튜브 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해요


기존 리뷰를 좀 살펴봤어요

그런데 대부분 다 이 책에 대한 칭찬이고

 비판은 그렇게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책도 비판은 좀 할 필요가 있겠죠

나온 지 이미 오래됐는데


이 책은 제가 제 돈 주고 샀으니까

비판할 권리도 있겠죠?


제가 프로이트 전문이지만

프로이트도 비판을 받아야 돼요

라깡도 프로이트를 비판하기도 했고요


다른 학자들도 프로이트 비판에 대해서 시도를 하는데

그런데 프로이트를 모르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단 말이에요


특히나 성욕 문제라든가

아니면 발달단계 문제

이런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프로이트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비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도

제가 그런 점들을 좀 많이 관찰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처음 사고

한번 읽고 그냥 던져놨던 책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가 보여주는 프로이트 이해가

"과연 어떤 이해냐?" 하는 걸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하는 겁니다


시작하는 부분을 읽어 보면요

토론처럼 논리 전개를 시작을 해요

한 청년이 철학자한테 논리적인 도전을 하는 거죠

저도 처음 읽었을 때는

이런 장면이 참 재미있어 보였어요

그런데 좀 나이 들면서

다시 한번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거에 북한 주체사상에 빠져든 사람들이 있었어요

청년들이요

그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빠져들었다고 얘기를 들었거든요

"북한의 주체사상이 말이 되냐?" 하면서

내가 논박하겠다고 덤볐다가

거기에 확 깨져가지고

주체사상에 홀려버리는 그런 상태가 됐다 하더라고요


일종의 이데올로기 주입이나 그런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시각이나 프레임 자체가 바뀌어버린다

이게 좀 문제가 될 거예요


저는 이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이런 점에 있어서 이 자기 개발서로 보고 있거든요

다른 분들은 이 책이

"그냥 자기 개발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실 수는 있어요


근데 여기서요

자기 개발서가 왜 비판받아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죠

자기 개발서의 내용 자체는 우리가 그렇게 비판할 게 없어요

내용은 다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자기 개발서 같은 게요

정신분석학자들도 그런 이야기하는데

이 책이 약간의 최면 효과를 일으키는 게 있어요


이 최면 효과를 일으키다 보니까

프레임에 제한이 발생하게 돼요

현재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충분히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바꿔버린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또 중요한 것은요

제가 임상현장에서 신경증을 다루고 있잖아요

그때도 이런 문제가 등장해요

어떤 자기 개발서에서 나오는 방법을 하다가

그 방법이 안 되니까 좌절하게 되고

그 결과로 신경증 발병으로

이어지는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시각이 제한되면서

현실하고 충돌이 일어났을 때

자기 계발이 아니라

그 반대 작용도 일어난다는 거죠

병을 일으킬 수도 있고요


자기 개발서의 저자들은

대부분 자기 방식을 제안하는 겁니다

세상을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이런 거 하면 잘할 수 있다

이렇게요


그 쉬운 설명이 재밌으면 받아들이고

"그게 옳다"라는 인식이 생겨요

그렇게 이제 자기 생각이 분명하다고 믿게 되면요

감정적 에너지 투자가 생깁니다


이 감정적 에너지 투자가 생기고 나면

내가 옳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이유 불문하고

좀 안 좋은 감정이 생길 수도 있어요


일단 넘어가서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프로이트는요

대부분 부정입니다


기시미 이치로라는 철학자가 아들러를 했잖아요

이 아들러는 어떤 사람이냐?

정신분석 배운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걸 나중에 자기 나름대로

가공을 해서 개인 심리학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들러가 프로이트를 비판하는 게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아들러가 사실 그렇게까지 정신분석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프로이트는 융은 자주 언급을 해요

프로이트의 논문 같은 걸 봐도요

융의 주장에 대한 반박도 있고요

오토 랑크 같은 경우에도


오토 랑크가 탄생 불안을 이야기했단 말이에요

거기에 대한 반박도 이제 논문을 써요

그런데 아들러는... 거의 안 나와요

아들러가 언제 나오냐면

지금 제 기억에 있는 거는

아들러는 거기서 나옵니다

[나르시시즘 서론] 쓸 때요


이 용어를 결정할 때

융하고 아들러한테서 프로이트가 의견을 좀 받았나 봐요

그때 아들러가 '남성 항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정도만 나와있습니다

그 이외에는 아들러가

그렇게 나오지 않아요


아들러도 프로이트 비판했다고는 하는데요

아마도 그 프로이트 비판은

그 당시에는 가장 적절한 마케팅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프로이트가 세계적인 인물이 됐잖아요



우선은 이 아들러가 트라우마를 부정했다고 하잖아요

이것을 좀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들이요

트라우마에 대해서 알고 썼는지는

좀 의문이에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용기가 없어서 못 떠올린다

그래서 용기가 있으면 트라우마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아들러가 트라우마에 대해서 모르고

이런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정신분석에서 트라우마는

어떻게 생각을 할까요?


프로이트는 모든 인간에게

정신의 자극 보호대를 설정을 해요

그리고 트라우마라는 건

이 자극 보호대를 뚫고 들어온 사건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이전에요

트라우마가 발생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어요

우리는 다들 이 불안함을 느끼잖아요

이 불안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뭔가가 다가오거나 접근할 때

미리 대비를 할 수가 있단 말이에요

불안 신호가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 신호가 있는데

어느 정도 깜짝 놀라는 사건이 있어도

스스로가 방어를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 불안을 느끼기도 전에

방어를 취하기도 전에

확 덮쳐오는 거란 말이에요


이때 정신이 자극 보호대가 깨져서 들어오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외상(外傷)으로 번역을 해요

그리고 이 당시에는

2차 세계대전 지나고 나면서도

전쟁 신경증 같은 문제가 있었죠


다른 학자들이 트라우마를 이야기해서라기보다

트라우마의 전제 조건들이 있는데

그런 건 지금 싹 다 빠졌다는 겁니다

막연하게 트라우마라는 한 단어 가지고

옥신각신할 필요가 없고

트라우마가 일어나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그것 자체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 게

아들러의 이 말이라는 거예요


이런 비유를 해도 될 거예요

우리가 어디 넘어져서는 무릎 까지고 하면 피나잖아요

이걸 두고 우리는 외상이라 그러죠

마치 이렇게 상처를 입은 것처럼

외부 사건의 충격이 정신의 자극 보호대를 뚫고 들어와서

상처를 남긴 것입니다

이걸 두고 단순히 용기가 없다고 설명하는 건

다리가 부러졌는데

빨간약 바르면 "다 나았다!" 이거 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러면 실제 외상 상황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시다

그 유명한 세월호 사건이 있죠

그 사건은 정말 예측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했던

그런 사건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그 사건에서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유명하신 분 있죠

파란 바지 의인이신가?

그분이 좀 여기에 시달리신 것 같은데

애들 구하다가 미처 다 못 구해가지고

그게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거예요

왜냐하면 그 상황을 떠올리면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


그 상황을 떠올려서 내가 죽을 것 같은데

그때 이 책이 철학자 같은 사람이 나와서

너 용기가 없어

트라우마를 얘기할 용기가 없어

이래 버린 거예요



근데 그분이요

트라우마를 떠올릴 용기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법정에 가서 그 얘기 다 했어요

(청문회네요...)

그 얘기 다 했고

그리고 법정에서도 그 얘기하다가 자해해 가지고

문제가 되고 했어요


따라서 트라우마를 부정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억지스러운 거죠


왜냐?

이 사람(철학자)은 지금 책만 본 거예요

실제 경험이 전무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 상상력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아들러 임상도 제가 접해보지 못했거든요


정신분석 공부한 지 오래됐는데

아들러 임상도 어떤 수준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 책에서 철학자가

프로이트의 이론을 설명하는데서

좀 많이 불쾌했습니다

어떻게 불쾌했냐?


철학자는 과거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말을 하죠

그리고 결정론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오해가 좀 심한데요


이 철학자라는 사람이

말의 뜻을 모르는 거예요


프로이트도 이런 결정론에 대해서 얘기를 하죠

[정신 결정론] 이라고요

아들러도 그런 내용을 알았을 겁니다


정신 결정론이라는 건요

정신은 자연보다 더 엄격하게

그 원인을 따진다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잘 안 나왔는데

요즘에는 상담사 시험 문제집을 봐도

이 내용이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두고 과거가 현재를 결정한다고

하는 식으로 이해하는 건요

프로이트에 대해서 조잡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거예요


정신에 원인이 있다

이거 하고

과거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예요


우리가 과거에서는요

우리 정신구조가 형성되고 갈등처리 방식들이 만들어져요

나름의 그 구조를 가지고 현실을 경험하면서

그 내용들이 계속 변합니다


그런데 과거가 현재를 결정한다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았기 때문에 현재가 어떻게 된다

이렇게는 보지 않아요

이런 걸 두고요


[조잡한 정신분석] 그렇게 말을 해요

메를로 퐁티 같은 현상학자들은요

정신분석을 단순하게 가공한 것들을 보고요

영미식의 정신분석이 좀 그래요

퇴폐적이라고 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것 다 잘라놓고

사람들 관심 가지는 것만 모아가지고

아 이게 정신분석이라고 짠~보여주거든요


그런데 핵심이론 같은 거 다 빠져 있고 이러니까

임상에서 제대로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특히나 나르시시즘 같은 경우에도

좀 이상하게 알려져 있어요

제가 저기 2018년에 서울 철학아카데미 가 가지고

나르시시즘에 대해서 이제 초청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거기 교수님들 많이 오셨거든요

나르시시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정신 장치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좀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고요

프로이트의 정신 장치 개념에 대해서

이게 정신분석의 맥락이 삭제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과거가 어떻게 되어서 현재가 결정된다" 이 말은요

프로이트가 아니라 존 듀이 같은 사람들한테 해야 되는 말이에요

듀이는 그런 이야기 했죠


나한테 애 하나 주면

그 애를 도둑으로 만들 수 있고

법관으로도 만들 수 있다

이런 얘기까지 했잖아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만 따져도요

이 철학자는

프로이트는 몰라요

혹은 정신분석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흔히 알려져 있는 뉘앙스에 따라서

그걸 베이스로 해서 지금 답변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긴 일본에서도 프로이트 독해는

그렇게 안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들고요


이 책이 드러내 보이는 태도 중에

불쾌한 내용도 하나가 있어요

바로 '적면 공포증' 얼굴 빨개지는 것

그거를 이제 고쳐줄 수 있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 거예요


상담가의 능력으로 너희 정신질환을 고쳐주겠다

이 태도는요

환상에 기반하고 있어요

의사 환상이라는 게 있거든요

병이 있으면 가서 의사처럼 고치겠다 이런 거죠


이런 태도가 그렇게 좋진 않아요

당장의 진정이 모든 치료를 대변하는 것 같은

그런 태도를 가지게 되거든요

정신분석 치료도 이런 식도 아니고

아들러 같은 상담 치료에서도

그런 것은 요구하지 않을 거예요

차라리 그냥 최면 걸어서

고통 잊게 해주는

이게 더 치료에 가깝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는 좀 반대를 하거든요

증상이라는 게요

굉장히 단순해 보여요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단순해 보여서

그냥 "저 행동 안 하면 안 돼?"

그냥 "화 안내면 안돼?"

그냥 "입 닫고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이렇게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굉장히 복잡한 메커니즘이 있어요


특히 우리가 요새 층간소음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소리에 예민해요

근데 층간 소음이 심해요

그러면 항의를 하죠

조금만 소리가 들려도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럼 이때 진짜 원인은 뭐냐?

층간소음이냐?

아니에요


층간소음 자체는 일시적으로 들리는 건데

그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소리로 인해서

축적된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겁니다


또 소리로 인해서 뭔가 축적됐다

이때는 초자아 문제가 들어가요

그러면 이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생활 전반에 다 들여다봐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복잡한 내용이 있는데

이걸 너무 지금 단순히 보고 있는 거예요

이게 의사 환상의 문제거든요


그리고 이런 내용들을요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겼다

그래서 이제 신경증이 발병했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

어떤 상황 때문에 신경증이

발병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너 때문에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

뭐 이런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신경증의 발생은요

"뭐 때문에 걸렸다"

이런 게 아니라요

"어떻게 발생했는가?"가 더 중요해요


정신분석은 누구나 다 갈등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근데 그 해결 방식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대해서 주목을 하는 거죠

어떤 사람과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이 사이의 갈등이 있으면

위로를 해줄 수가 있죠

위로는 충분히 가능해요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탐구를 해야 됩니다

하나씩 뭔가 바꿔가야 된다는 거죠


우리 주변에요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분들 중에서는 자기가 뭐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는지

원인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뭐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면요

어떻게 내가 이렇게 됐는지는 무시를 해버려요

원인은 그래서 안 밝혀집니다

이건 제 임상사례에서도 밝혀놓은 거예요

이 책에서 밝혔습니다

임상사례 중에

이게 엄마 때문이니까

엄마한테 내가 바라는 사과를 받을 수 있으면

"나 괜찮아질 거예요" 라고 했는데

엄마한테 바라는 사과를 받았어요

근데 그 순간 공허해진 거예요

진짜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는 거죠


"어떻게"가 중요한데

"뭐"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이거 완전히 속아 넘어가버리는 겁니다


이 책에서 자해 문제 이야기예요

여기서 철학자는 프로이트식의 설명으로

"부모가 잘못 키워서 애가 자해한다"

이렇게 설명을 해요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죠

그리고 아들러 식의 목적론을 이야기하는데

드러내지 않은 복수심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아.....


이 철학자는 프로이트는 아예 몰라요

그리고 임상도 없는 사람이라고 봐야 돼요

이 사람이 철학자지

임상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아들러 해 가지고 치료 능력이 있으면 치료를 하겠죠


자 그럼 애가 자해를 해요

그래서 이 부모가 잘못 키워서 그렇다

그러니까 부모가 책임을 져야 된다

이게 프로이트의 관점일까요?

이게 프로이트의 관점이라면

실제 사례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지금 이 사람이 이론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 말을 좋아할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증상에 대해서


 내 책임은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나는 내가 잘못해서 병에 걸린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되게 좋아할 겁니다


좀 인기를 얻고 싶으면 이런 말 하는 게 좋아요

듣고 싶은 말 해주는 게 인기 끌기엔 더없이 좋죠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자해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합니다

이 말이 어디서 나온지는 모르겠는데

복수심에 불타서 자해를 한다?

그럼 스트레스가 더 쌓일 겁니다


스스로에게 복수를 한다

이런 억지논리는 진짜 그럴듯해 보이는데

이게 맞으면 자해 치료 쉽지

자해 치료 안된다고 사람들이 고민할 이유가 없잖아요

상담사들이고 누구고

현실 하곤 완전히 다른 거예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프레임에 갇히면 이 말이 맞죠


프로이트가 만약에 자해한 아이를 본다

그러면 이런 생각을 먼저 할 겁니다

이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만큼 사랑이 많은데

그 때문에 공격성을 나타낼 수가 없어서

공격성이 뜨면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그런 상황에 갔다고

그렇게 얘기를 할 거예요

그게 자기 처벌이거든요


자해에서 등장하는 자기 처벌 메커니즘이 그래요

이게 프로이트의 관점입니다

프로이트도 자기 처벌이라는 것을

많이 이야기를 했어요

신경증에서 드물지도 않고요


그러면 여기서 철학자는

프로이트를 모른다 수준으로

볼 수도 없어요


제가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실 거예요

저는 이미 제 치료 임상을 공개해 놓았거든요?


이론이 아무리 좋아도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막아요?


자 이 책에서는요

프레임 자체를 제한해 버리는 효과로

신경증 문제도 너무 단순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신경증이 얼마나 지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지

무시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겁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 이런 거예요

강박사고에 시달리는 사람한테

"그거 그냥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하고 같은 겁니다

아들러를 내세워 가지고 용기 마케팅해 가지고

돈은 좀 벌었을지 몰라요


대신에 이 책이 부추긴 건 프로이트에 대한 오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신경증 문제를 너무 단순화시켰어요

치료가 어려운 것도

치료가 쉽다는 식으로

착각하게 만든 거예요


이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 책에서 할 이야기가 더 있어요

외디프스 콤플렉스 같은 것도 오해가 너무 심하고요


하지만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도록 하고요

그럼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과거에 압축해서 쓴 글을 풀었더니 이렇게 나오네요. 말과 글의 차이를 좀 많이 느끼게 됩니다. 영상 촬영한 이후에 다시 정리하기에 시간이 좀 빠듯하네요. 부족한 부분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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