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시선
나는 나이트 근무 때, 심 여사의 차트를 조금 더 상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초기에는 남편의 불륜으로 크게 좌절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프로이트가 신경증 발병 유형을 연구할 때, 좌절을 첫 번째로 꼽기도 했다. 내 분석 경험에서도 내담자들이 좌절을 경험한 이후에, 곧바로 발병한 경우도 있었다.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심 여사는 한 동안 폭력적이었다고 한다.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댔고 주변 물건을 부수고 난동을 부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조현병의 근거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정신분석에서는 환각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을 조현병으로 진단하지 않는다. 그런 신경질은 누구나 낼 가능성이 있다.
모든 신경증은 자아의 붕괴를 막기 위한 긴급조치로 등장한다. 정신분석에서 바라보는 신경증의 의미가 그렇다. 증상을 일으켜서 정신적 균형을 잡고자 하기 때문이다. 심 여사의 눈감기에 대해서 리비도 이론을 통해 그 메커니즘을 추론할 수 있었다. 지금 그 설명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분명 흥미가 많이 떨어질 것이라 생략하도록 하겠다.
심 여사가 남편의 불륜을 확인하기 전에는 의심이 일어났을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심은 논리를 갖추고 있다. 좌절하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합리적인 결과로 부정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믿음이 생긴다면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경증의 영향력은 그 사이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지만 심 여사가 정말 미워했을까? 미워하고 싶을 때 미워할 수 있다면 최소한의 신경증 문제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남편이 미웠지만 그만큼 ‘사랑해서’ 그런 반응들이 나타났을 것이다. 애증의 문제이다.
프로이트는 병든 사람의 나르시시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현실에서 관심을 철회하고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신경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신체 통증이 나타날 때도 이러한 것들이 작용하게 된다. 통증이 일어나면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내가 분석을 맡았던 강박증자 한 사람은 이유 없는 복통으로 병든 사람의 나르시시즘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적어도 그것이 등장하면 현실에서의 관심을 철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 이러한 개념들이 등장한 이유는 정신의학처럼 뇌를 신경증의 원인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물로 행동을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눈을 뜨게 할 수 없었다는 점은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었다.
어느 날 나이트 근무 중이었다. 정신과 병동에서는 취침 시간 이후에 거실에 나오는 환자분들은 대부분 수면제를 요청한다. 보호사는 시간 별로 병동 라운딩을 하면서 수면 상태를 계속 체크해야 했다. 나이트 근무하는 간호사가 약을 짓고 차트를 정리하는데 바빴는데 심 여사가 병실 바깥으로 나왔다. 거실로 나와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심여사에게 다가갔다.
“심 여사님. 수면제 필요하세요?”
“그냥 답답해서 잠시 소파에 앉아있고 싶어요...”
원칙대로라면 방에 돌려보내는 것이 맞다. 그래도 조금 배려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눈을 계속 뜨지 못했으니 얼마나 갑갑했을까?
“무슨 생각이 많아서 잠들기 어려우세요?”
“그냥 조금만 더 앉아있을게 예...”
스테이션을 보았다. 간호사가 자리에 없었다. 화장실에 간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심 여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눈을 감으면 뭐가 보이세요?”
무슨 헛소리하냐고 되물어볼 수도 있는 질문이었지만 심 여사는 재밌다는 듯 씩 웃었다.
“뭐가 보일 것 같으세요?”
“귀신이 보일 것 같아예...”
“귀신을 믿으세요?”
“아니예...”
심 여사는 병동에서 실시하는 교회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귀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교회 다닐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안 믿었다. 심 여사는 조금 생각하더니 자러 가겠다고 일어났다. 병실까지 안내해드리려 했지만 혼자서 가고 싶어 했다.
그 모습을 보고선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그날 밤이 지나갔다.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다. 빨리 퇴근해서 좀 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일지를 정리하고 아침 배식을 준비했다.
기상시간이 되어서 밥차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병동이 시끌시끌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심 여사가 눈을 뜨고 식사를 하러 나온 것이다. 어제까지 눈을 뜨지 못해서 고생하던 분이 갑자기 눈을 뜨고 나왔으니 다들 놀라웠던 것 같다. 그 순간 오던 잠도 달아났다. 즐거운 기분도 들었다. 정신병원에 입사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휴일을 맞았다. 보호사들의 휴일은 2일씩 붙여져 있어서 휴일에 수업도 하고 분석도 받았다. 나는 분석 시간에 카우치에 누워서 그 경험에 대해서 분석가에게 이야기하고 나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신경증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잊지 말도록”
그 경험은 내게 신경증에 대한 관점을 조금 넓혀주기도 했다. 책상에서 배우는 것과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는 것은 많이 달랐다. 물론 수업시간에 듣게 되는 임상에 대한 내용들도 신기한 것들이 많았지만 직접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임상이 생겼다는 것은 보다 전문적인 영역에서 느끼는 것이다.
심 여사의 눈 감기는 나에게 파라시오스와 제욱시스의 그림 대결을 떠올리게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실 모사 기법이 굉장히 뛰어났던 두 화가의 이야기이다.
제욱시스는 포도를 그렸는데 어찌나 잘 그렸는지 새들이 날아와서 쪼아 먹으려고 했다. 이를 본 화가 파라시오스는 자기도 그림을 보여주겠다며 제욱시스를 화실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커튼이 쳐진 그림이 있었는데 제욱시스는 어서 커튼을 걷고 그림을 보여달라고 한 일화이다. 그런데 파라시오스는 그것이 실제 커튼이 아니라 커튼을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제욱시스는 새를 속였지만 파라시오스는 자기를 속였으니 패배를 인정한 일화이다.
증상에 대한 질문이 심 여사의 탐구능력을 자극했다고 여겨진다. 심 여사가 생각하던 귀신은 마치 파라시오스의 커튼처럼 심 여사의 지적 능력들을 차단하고 나름대로의 믿음을 형성했을 것이다. 제욱시스가 속은 것처럼 자신의 눈꺼풀에 속아온 것이다. 자신의 믿음으로 자아의 붕괴를 막고자 한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신경증에서는 지성, 즉 탐구능력의 마비가 일어난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신경증에서는 논리적 토대가 문제가 될 수도 있으나 세계관과 같은 믿음이 개입하면서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