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집착녀
새로운 환자가 왔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옷도 점퍼 하나 걸치고 들어왔지만 귀티가 났다. 웃으면서 들어오는 모습이 참 예뻤다. 나는 인사를 하고 절차에 따라 위험물품이 없는지 소지품을 검사했다. 그런 물품은 전혀 없었고 필요한 것만 챙겨서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20대 시절부터 병원에서 입퇴원을 반복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환의 갈아입으시고 병동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사물함은 곧 가져다 드릴게요”
그런데 그분이 정색을 하고 나를 쳐다보고서는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에 들어갔다. 그동안 나는 거울을 봤는데 내 얼굴에 뭔가 묻었나 싶었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쳐다보게 되기도 하지만 신기하게 생겨도 쳐다볼 수는 있다.
그런데 혜연 씨는 끝까지 나를 쳐다보았다. 간호사실에서 나가면서도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아서 민망했다. 잠시 후 나는 병실로 혜연 시의 사물함을 가져다주었다. 원래 입원해있던 환자들과 익숙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어느 20대 환자는 무척 반가워하면서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니! 못 본 사이에 많이 삭았네. 예전엔 더 예뻤는데...”
“어머? 그래?”
두 사람은 띠동갑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당시 혜연 씨가 30대 후반이었다. 그런데 좀 더 어려 보였다. 그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여자 환자들은 약물을 복용하면서 살이 찌는 경우가 많다. 운동해도 잘 빠지지도 않아서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혜연 씨에게 말을 걸었던 여자 환자도 그랬다. 살이 잘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혜연 씨는 약을 복용하고 있음에도 살이 찌지 않았다.
병동 규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서 굳이 설명해줄 것은 없었다. 그런데 혜연 씨에 대해서는 기존 직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워낙에 사고를 많이 쳤다는 것이다. 같이 일하는 선임 보호사는 혜연 씨를 보고 “그런 여자 한 트럭으로 갖다 줘도 싫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다른 보호사들도 혀를 내둘렀다. 무슨 문제를 일으킨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다. 같이 지내보면 알 거라고 한다.
혜연 씨의 진단명은 조현병이었다. 20대 시절 사이비 종교에 빠졌고 곧 이어서 발병했다고 한다. 내 경험에서도 지인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면서 발병한 케이스가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세계관의 형성이 문제가 된다. 신경증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분석을 진행하다 보면 특정하게 형성된 세계관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형성된 세계관은 현실과 부딪혀서 또 다른 좌절 상황을 만들어내고 신경증 발병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혜연 씨가 입원한 지 며칠이 지나서 내 입장이 좀 곤란해졌다. 내 근무시간이 되면 혜연 씨는 간호사실 앞에서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처음에야 간단한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다.
“혜연 님. 거기 계속 서있지 말고 병실에 들어가세요”
처음에는 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다시 나와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계속되니까 간호사들의 불만이 심해졌다. 나는 뜻하지 않게 타박을 받아야만 했다. 이 무슨 난감한 상황인가? 예전 보호사 하나도 혜연 씨의 그런 행동으로 굉장히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다. 사회에서 만났다면 누구라도 좋아했을 것이다. 나중에는 방에 돌려보내려 타이르기도 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그 행동이 심해지면서 보호실에도 여러 번 들어가야 했다.
그 당시 보호실은 간호사실 안에 있었다. 밤에 환자들이 아프거나 하면 간호사실에서 바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문에는 아크릴판으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는데 거기서도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그 모습이 굉장히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신문지로 창문을 막아버렸다. 보호실 내부는 CCTV로 볼 수 있었으니 창문을 막는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간호사들이 이야기하길 내가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면 병실에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출근하면 그때부터 복도에 나왔다. 주변에서 보던 간호사들은 주의를 주어도 별 소용이 없으니 소리라도 질러서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는 조언까지 했다. 그게 통했을까? 그게 됐다면 내가 고생할 이유가 없다. 성적 관심일 때나 그게 통하는 것이니까. 그게 아니니까 포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소리도 질러보고 나서 느낀 사실이다.
“대체 뭐가 좋다고 저렇게 쫓아다니는 거야?”
간호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투정 섞인 말을 했다. 짜증이 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내가 아주 핸섬한 그런 모습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적이 있다. 나를 고집스럽게 따라다녔던 사람이 있었던 적이 있는데 후에 그녀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 사람이 따라다녔던 걸 피해 다닌 게 미안해서 후에는 길에서 만나면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같은 지역에 살았으니까.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같은 버스를 탄 적이 있다. 차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때 그녀를 보고 나는 무서움을 느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만약 신경증에 시달리는 남자나 여자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을 ‘성적 관심’으로 설명한다면 상황을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증상 행위라면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행동조차도 고도로 가공되어 있는 것이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혜연 씨가 어떤 것을 느끼기에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드러나는 행동만을 검토해야 했다. 혜연 씨와 말이라도 하는 경우에는 간호사들이 적극적으로 제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연 씨는 나에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단서들을 얻어내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는 찾아왔다.
나이트 근무시간. 병동 취침시간에 수면제를 달라고 혜연 씨가 간호사실로 나왔다. 간호사가 약을 짓는 사이에 예쁘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보호사님. 혹시 태을천상원군님 아니세요?”
“그게 누군데요?”
“상제님 보다 높은 신이요”
“신을 보면 죽어요”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흥미로웠던 것은 혜연 씨가 나를 일종의 ‘신’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추론할 수 있는 단서가 잡혔다고 생각했다. 감정 중에서 다른 관념과 어떤 연결성도 없는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혜연 씨는 병동에서 나를 보는 순간부터 그랬으니까.
‘경탄’으로 불리는 감정은 다른 감정과 연결되는 지점이 없다. 게다가 무엇인가를 보고 개별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예술계에서 종종 이야기하는 스탕달 증후군과도 무관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런 감정이 불러일으켜진다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의 신체변화가 따라올 수 있고 성적으로 끌린다는 착각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믿음처럼 기능하는데 최면 효과와 같은 것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의사에게 이러한 감정을 드러내 보인다면 유익한 긍정 전이로서의 기능을 할 것이다. 의사 말을 듣게 해 주기 때문에 정신치료에 무척 유익하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환자가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를 존경한다면 그 치료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자신의 치료를 담당한 사람에게 그런 것을 느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치료를 담당한 입장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