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 환각
나이트 근무시간이었다.
"수면제 드릴까요? "
"아니요... 에어컨에서 비상 냄새가 나요... 에어컨 위에 신문지를 덮어놓은 것 있잖아요... 그건 비상 냄새를 흡수하기 위해 덮어놓은 거예요..."
새벽에 간호사실에 나온 혜연 씨는 나를 보고 일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국민(초등) 학생 때요... 비소 실험을 하다가 냄새를 바로 맡아서 코피가 났어요..."
무엇인가를 두려워했다.
"그런 냄새 맡았으면 몸에 이상이 있을 겁니다. 내일 의사 선생님 오거든 이야기해보세요.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서 주무세요"
혜연 씨는 순순히 방에 들어가서 다시 잠이 들었고 간호사에게 비소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주었다. 동시에 묘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대체 왜 비소 이야기를 한 걸까? 필자가 어릴 적 초등학교 때 과학 실험시간에 선생님이 암모니아 냄새를 맡을 때 코피 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혜연 씨 입장에서는 ‘비소’로 표현이 되었는데 현실에서는 ‘암모니아’였을 것이다. 그럼 왜 비소가 선택이 되었을까?
비소는 고대 중국에서 미용목적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 멜라닌 색소의 생성을 억제하고 혈액순환을 방해해서 하얗게 보이게 해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독성도 있어서 한번 먹으면 끊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처음 이야기한 <비상>은 비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황과 철 등 여러 성분이 혼합되어 치명적인 독성을 지니는 물질이다. 사극에서 임금이 내리는 사약의 이름이 <비상>이었다. 여기서 언어 연상을 활용한다면 어떻게 검토할 수 있었을까? 비상을 긴급상황이나 비상구의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냄새를 연구하는 것은 정신분석에서 꽤 곤란한 축에 속한다. 임상사례로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루시’ 양이 느낀 <탄 푸딩 냄새> 정도만 언급한다. 그 외에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나 역시 정신분석 연구를 계속하는 입장이니 여러 자료를 검토했다. 분명 이 지점을 연구할 수 있다면 분석에 있어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냄새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를 보다가 중국 고전인 서유기에서 의외의 단서를 발견했다. 인간의 감각기관을 의미하는 여섯 도적의 이름이었다.
안간희, 이청노, 설상사, 의견욕, 신본우, 비후애의 여섯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감각기관과 감정 간의 관계를 연결한 것이다. 냄새는 비후애라는 도적 이름을 지목할 수 있다. 냄새가 사랑과 연결이 된다면 재미있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사랑을 하면 대상을 탐구하게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인간 지성이 작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탐구해야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상대를 탐색하고 그렇게 변화에 맞추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내용은 나의 임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각각의 신체기관에 따르는 충동 작용이 각각 있다. 프로이트는 심리성적 발달단계를 통해서 입, 항문, 남근에 의미를 더했고 라캉은 시관 충동과 호원 충동을 추가했다. 그리고 말년에 코에도 그러한 충동 작용이 있음을 검토하고 발견하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라캉뿐만이 아니다. 디디에 앙지외 같은 정신분석가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실패했다. 그들의 임상에서는 그런 내용들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부분을 나의 임상 사례로 연구해 둔 것이 있다.
그날 밤 이후, 더 이상 비소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하는 것보다 호소력 짙은 것은 행동이다. 환각으로 등장했던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일까? 갑자기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식사 시간에도 식판을 앞에 두고 멍하니 있다가 방에 들어가서 약과 물만 먹었다. 식사를 하지 않으니 난리가 났다. 약만 먹는다고 해서 건강관리가 될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니 사람이 수척해졌다. 화학적인 중독성이라면 비소와 정신과 약물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신과 약물이 '비소'의 대체물이라면 이는 비소 환각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해도 괜찮을 법한 내용이었다.
내가 혜연 씨의 접근 자체를 차단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혜연 씨는 뭔가 대단히 억울해했다. 한 번은 나를 보고 울먹이면서
"이힝... 힝... 나... 예쁘지 않아요?"
병동에서 울면서 안기려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피했고 다시 타일러서 방에 돌려보냈다. 자기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데 약이 들어가면서 주변에 대한 관심이 철회가 되지만 대상이 있을 때는 그것을 이겨내려는 힘이 배로 강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집착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관련되는 정신 기관들의 작동이 있기 때문이다.
비소 환상 역시도 이런 맥락에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이 느끼기에 고통스러운 방식이라고 해도 증상과 투쟁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그렇게 증상에 투자될 에너지를 활용할 대상을 찾는 자가 치유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자가 치유적 활동이 '증상'으로 보인다. 이것은 약으로 진정될 수 없는 성격이다.
혜연 씨의 식사 거부가 길어지자 간호사들도 고민이 깊었다. 건강을 위해서 병원에 입원을 시킨 것인데 쇠약해진다면 뭐라 할 말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총이 좀 따갑긴 했지만 나는 식사시간에 혜연 씨에게 직접 밥을 먹이는 것을 선택했다. 적어도 내가 주는 밥은 먹었다. 간호사들 입장에서도 보기 좋진 않았지만 식사가 우선이니 처음에는 허용했다. 그렇게 혜연 씨는 다시 자기 손으로 식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