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입원
나이트 근무 중 강제입원 환자가 있으니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덩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보호사 세 명이 병원 현관에서 대기했다. 만에 하나 저항이 심하면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응급입원이라서 앰뷸런스가 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검은색 세단이 왔다. 입원 환자는 검은색 벙거지 모자를 쓴 키 큰 여성이었다. 차에서 내리려 하지 않아서 힘으로 잡아당겼다.
"어머머... 왜 이래요. 이러지 마세요. 제가 갈게요"
혹시나 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협조적이었고 그렇게 보호실로 안내했다. 처음 입원하게 되면 우선적으로 사지 강박을 실시한다. 매뉴얼이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그래서 간호사는 의사에게 전화해서 사지 강박 후 주사가 아니라 진정제 복용으로 처방을 바꾸었다.
“내가 왜 이걸 먹어야 되는데요?”
의사 처방이라고 이야기해주었지만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계속 먹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전에는 약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묶어서 주사를 놓는 수밖에는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간호사의 설명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 환자는 흥분한 상태도 아니었는데 진정제를 쓸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계속 설명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엉뚱한 내용이 떠올랐다. 그래도 내 경험에서 떠올려보면 편집증자에게 상황과 전혀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에 상황이 환기되는 경우가 있었다. 비슷하게는 완강하게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던 범인이 갑자기 웃으면서 자신의 범행을 시인하는 그런 스릴러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정신분석을 하면서 몇 번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고대 철학자 중 데모크리토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정신도 원자라는 주장을 했어요.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해도 정신 원자를 재배열할 수 있다면 원래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약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말하고 나니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그런데 내 설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무척 유쾌하게 웃으면서 순순히 약도 복용했다. 그날 밤의 상황은 그렇게 끝이 났고 다음날 바로 병실에 입실했다. 알고 보니 이 환자분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태도에 있어서 여자 교수님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병동 생활에서도 불편이 없었고 의료진에게 협조도 잘했다. 간식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공부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학습지도도 해주었다. 행동상에 별 문제가 없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생각해본다면 사회생활이 가능한 정신병이 있는지에 대해서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과의 관계는 끊어지겠지만 말이다. 프로이트가 분석한 슈레버 사례를 떠올려볼 수 있다. 편집증에서는 지적능력의 손상도 없고 대인관계도 문제가 없다. 법관 출신이었던 그는 유산 문제와 같은 법적 문제가 생기면 가족들에게 법적 지식을 조언하기도 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했고 파티 같은 곳에서 재치 있는 이야기도 잘했다. 심지어 주변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슈레버는 나중에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게 해달라고 소송까지 걸어서 법적으로까지 인정도 받았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환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망상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은 알 수가 없다.
편집증의 발병에서 가장 심각해 보이는 시기는 편집 망상체가 자리를 잡기 이전까지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망상체가 자리를 잡고 안정화된다면 사회생활과 자기 관리가 더 잘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아마 입원 당시의 다인씨의 상태를 보았을 때, 이미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가능했다. 내 경험에 편집 망상체가 자리 잡히기 전의 편집증자의 분석을 맡은 경험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 관리가 거의 되지 않았다. 씻는 것도 하기 어려워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입원하게 된 계기는 어디에 있을까? 나중에 듣게 되었는데 이상한 남자들이 자신을 살해하려 한다고 경찰에 자꾸 신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망상이나 환각은 주관적이다. 그리고 경험 이후에는 객관화 과정을 거친다. 실제 위협으로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고집을 부려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비슷한 예는 우리 주변에서 조직 스토킹에 시달린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관찰될 수 있다. 그런 일이 없다고 해도 자신들은 반드시 그 일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설득될 수 없는 성격이다. 따라서 다인 씨는 망상을 통해 실제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인 씨는 늘 법문을 읽었다. 책이 해질 정도로. 그래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주변이 시끄럽게 되면 보호실에서 법문을 읽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집착하듯이 읽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수용해주었지만 나중에는 들어주기 곤란했다. 잠도 안 자고 법문만 읽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이 문제로 여겨졌지만 정신분석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그것은 자기 망상에 대해 논리적 저항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융은 <정신분열증>이란 논문에서 자기 환자에게 불교를 공부해볼 것을 적극 권장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망상과는 다르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편집증의 경우에 형성되어 있는 망상의 내용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망상에서 이야기하는 '신'은 더 이상의 논리적 전개가 불가능한 지점에 있지만 불교에서는 그러한 '신'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문을 계속 읽는 것은 자신의 증상에 저항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겠지만 그것이 지나칠 때 병리적인 결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법문을 읽기 위해 휴식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신체의 문제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