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
파울로 코엘료의 유명한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작품에서 극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말을 할 수 없던 에드워드가 베로니카를 만나기 위해서 말을 하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소설의 극적 장치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상황은 조금 달라도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우선 정신분석은 언어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정신분석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 물론 나도 정신분석이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발음이 이상해서 대화가 잘 안 되는 사람과 분석하는 것보다 리비도를 엉뚱하게 위치시킨 사람이 더 분석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말은 언제나 임상에 유효한 지점들을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만약 상담이 필요한 사람에게 언어장애가 발생한다면 상담이 포기될 수도 있다. 물론 나 역시도 비슷한 말더듬의 분석 경험은 가지고 있기에 조금은 이해를 한다.
성재 씨는 10여 년 동안 정신병원에서만 생활한 사람이었다. 깡마른 몸에 발음도 되지 않았다. 엑스레이 촬영하러 갈 시간이라고 전달하는 경우에 답변으로
"하흐 하흐 후아 아아..."
목에는 늘 가래가 끼어있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상담이 의미 없다고도 여겨졌다. 그런데 입원 동기인 환자들에게 듣기로는 원래는 말을 잘했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발음이 되지 않으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의 언어를 앗아가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발음만 못할 뿐, 다른 사람의 말은 잘 알아들었고 타인과 마찰도 일으키지 않았다. 의사소통에도 불편함은 없었다. 그가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식사시간만 되면 기침을 했다. 평소에는 기침하지 않았다. 과자를 먹을 때도 기침을 안 했는데 밥을 입에 넣으면 기침을 시작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겸상하는데 불편해했다.
게다가 기침으로 인해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 영양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주치의가 병동에 올라와서 식사를 독려했음에도 기침은 멈춰지지 않았다. 수간호사는 성재 씨에게 불편한 것을 물어보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본인도 특별한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다. 기침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평소 성재 씨는 혼자서 자기 관리를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불안했다.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날려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고 혼자서 잘 걸었다.
나는 당시 퇴사를 계획 중이었다. 분석을 더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의 경험들로 스승께서 최초로 인증서도 만들어주셨다. 정신분석가를 양성하는 전문가에게 인증을 받았으니 정말 기뻤다. 독자적인 내 기법을 살려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었다.
그런데 즉각 퇴사가 곤란했다. 인수인계할 후임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 일정이 밀리고 있었다. 덕분에 원래 사직하기로 한 날보다 15일을 더 근무해야 했다. 너무 길어지니 나는 퇴사일에 못을 박았다. 임상을 정리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때 임상 하나를 정리해서 전자책을 만들었는데 그 덕에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세계 최초!'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미 국제 정신분석학회에서 [DISTANCE ANALYSIS]라는 기법이 발표된 것을 보고 조금은 아쉬웠다.
병동 보호사로서 마지막 휴일에 나는 집에서 그동안 공부한 자료들을 검토했다. 그동안 노트며 논문 교정이며 하나하나 정리를 하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프린트 물에 필기한 것들이 번져 있는 게 보였다. 공부한 세월이 실감이 났다. 무작정 공부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다. 예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그렇게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눈에 띄는 자료가 있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2010년. 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갔다. 서울 시청 역에서 약속을 잡고 지하철 역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어느 아저씨를 보았다. 그 아저씨의 모습은 아직도 생각나는데 커다란 검은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전단지를 보고 버렸다. 나도 그 전단지를 받아서 읽어 보았다.
[미국의 음모]
전단지의 내용은 자신이 국가적인 음모에 휘말려 있다는 내용으로 과대망상으로 가공된 것이었다. 당시에 정신분석 공부에 심취해 있던 때였고 특히 슈레버에게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망상 내용을 접했으니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것을 나누어주던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을 여러 가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나의 질문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자 그분은 불쾌해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실제로 나는 시장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팻말 들고 국정원에게 감시당한다는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해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곳에서 혼잣말하시는 분을 보고 담배 한 대 건네면서 세상 이치와 정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곤 했었다. 물론 그냥 듣기로는 무척 쓸모없는 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들의 말은 정신분석에서는 보물 같은 것이었다. 아파트에 뇌가 있고 생각이 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아름답고 아파트의 뇌가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하는 내용이다. 어떤 아저씨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결혼시켜준다는 이야기까지 꺼냈다. 딸들을 많이 다운받아놨다고... 거절했다....
나는 그 당시 받았던 전단지를 버리지 않고 공부 파일에 보관하고 있었다. 이렇게 괜찮은 자료를 함부로 버릴 수는 없다. 이후 편집증에 대한 발표수업을 할 때, 직접 자료로 첨부하기까지 했다. 그 속에서 망상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단지를 꺼내 첫 문장을 읽어보았다.
[최근 양파를 사다 놓았더니 주사기로 독극물을 주입한 것 같아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성재 씨가 떠올르며 생각이 이어졌다. 자아의 고유기능은 생존에 있다. 그리고 망상은 자아에 직접 간섭할 수 있다. 망상의 내용이 독극물이라면 자아는 그에 대한 방어를 해야만 한다. 즉, 독극물 망상이 그에게 작동하고 있다면 기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추론할 수 있었다.
성재 씨는 과자는 잘 먹었다. 다만 식사시간에 입에 밥을 넣으면 기침이 심해졌다. 과자에는 독이 없지만 밥에는 독이 있다. 그렇다면 그는 생존하기 위해서 밥에 섞여 있는 독을 뱉어내야 한다. '기침'이라는 방식으로.
망상은 단순히 엉뚱한 생각이 아니라 ‘확신’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음식에 독이 들었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고 그 방어책이 기침이다. 망상으로 촉발된 기침이 생존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죽지 않기 위해서 기침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그의 행동에 간섭한다. 이러한 독극물 망상이 작동함으로 주변에서 식사를 독려해도 기침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었다. 이렇게 검토해보면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내용들이 등장한다. 실제 분석을 진행할 때도, 말하는 것들과 전후관계를 따지면서 맞춰나가는 것들이 있다. 행동 단서들만 가지고 검토한 것이지만 괜찮은 내용이라 생각이 들었다.
음식 망상에 시달리는 내용은 영화에서만 보았던 때다. 그것이 실제로 내 앞에 등장한 것이다. 나는 공부를 계속 이어오면서 배운 것들을 직접 경험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나의 분석력도 점차 발전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내용들은 나의 분석 시간에도 다루어졌던 것이다.
그의 최초 입원 당시를 상상해봤다. 말도 잘했을 것이고 식사도 잘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 면회 오면 대화도 했을 것이다. 얼마 전 가족이 면회 왔을 때의 성재 씨는 가래 끓는 소리로 네. 아니오 정도만을 표현했다. 가족 입장에서는 안타까워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상태를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병동 생활을 계속하면서 증상을 심화시킨 무엇이 있었고 동시에 언어의 문제가 등장했을 것이라고 주변과 소통이 차단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로 스스로를 고립한다. 고립을 통해 주변 상황을 변하지 않게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신경증은 변화에 익숙한 태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중요한 일이 있어도 일의 매듭을 짓지 않으려 한다. 같은 것을 반복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 내용들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시간이 없었다. 내가 추측하는 내용들은 있지만 그것을 지금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기침을 고도로 위장되어 있는 신경증 반응으로 생각했다. 증상의 단서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니까. 증상의 단서는 주로 언어로 등장한다. 언어가 막혔으니 망상에의 접근 가능성도 희박해질 것이다. 치료자가 그 망상의 존재에 대해서 알았다면 어떤 변화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 변화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가공돼 있는 게 증상이다.
음식 망상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기침의 원인이 음식이라면 과자를 먹을 때도 기침하는 것이 옳다. 생물학적이니까. 그렇지 않았다는 건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성재 씨는 죽을 먹으면서도 기침했고 미음으로도 기침했다. 식사 대용으로 나온 영양 주스를 마시면서도 기침했다. 그런데 투약시간에 정수기에서 떠온 물은 잘 마셨다. 이런 행동상의 특징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망상이 개입되어야만 한다.
현상의 진정이 치료에 능사는 아니다. 발작같이 일어나는 그 무엇인가가 있을 때, 치료의 단서들도 발견된다. 성재 씨에게 단서는 '기침'뿐이었다. 이런 내용을 간호사들과 공유해야 할까? 간호사들도 전문가로 일하는 건데 그들의 자존심은 지켜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입사할 때 여기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는 듯 위장해서 들어왔으니까.
그래도 욕심이 좀 생겼다. 심 여사 때도 그랬고 정훈이 때도 그랬다. 결정적인 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알 수 없는 쾌감이 있었다. 기회가 생기든 안 생기든 증상에 대한 탐구를 멈출 이유는 없다. 이것이 나의 광기라면 포기될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재 씨에게 기침은 포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순간’에 일어날 것이지 꾸준한 치료로 호전되는 성격은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의 기침은 심 여사의 눈감기와 비슷한 성격이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지만 성재 씨를 예의 주시하는 것 말고는 나에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도 퇴사 직전이니 시도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여겨졌다. 마지막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니까.
어느덧 출근날, 여느 때처럼 병동의 일상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 문제없는 평화로운 날이었다. 마지막 근무일인 만큼 환자분들도 다들 아쉽다고 이야기하고 덕담도 주고받았다. 그렇게 일과를 보내면서 점심시간이 되었다. 성재 씨는 천천히 미음을 입에 가지고 갔다. 즉시 발작적인 기침이 시작되었다. 주변에서 불편을 호소했다. 겸상하기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관찰할 것과 세워놓은 치료적 가설에 따라 기침을 일으키는 표상에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드러나는 증상에 개입할 수 있다면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단둘이 있을 기회였다. 그런 기회가 과연 주어질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딱 한 순간이 필요했다. 그날따라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느껴졌다.
저녁 식사시간, 몇십 분 후면 퇴근이다. 보호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래도 기대는 가지고 있었다. 성재 씨에게 저녁 식사로 나온 미음을 가져다주었다. 기침은 더 심해졌다. 주변에 피해가 되니까 간호사는 나에게 성재 씨의 식사를 보호실에서 할 수 있게 옮겨달라고 이야기했다.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성재 씨의 식판을 보호실로 옮겼다. 좁은 보호실. 외부와 차단이 되어 있고 성재 씨와 나 단둘뿐이다. 나는 나가지 않고 식사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기침이 시작되었다. 밥알이라고는 없는 미음에 야채를 갈아 만든 영양 주스를 마시면서 심하게 기침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말했다.
"음식에 독 들었죠?"
성재 씨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기침해서 음식에 있는 독 뱉어 내고 있는 거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기만의 비밀을 들킨 것처럼 놀란 눈을 뜨고 있었다. 어떻게 비밀이 알려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이제는 괜찮아요. 독 없어요. 지금까지 안 죽으려고 독 뱉었죠? 덕분에 식사를 못해서 더 안 좋아졌어요. 증상이 발달하면서 이런 상황이 되었을 겁니다. 이제 기침 안 하고 편하게 드셔도 됩니다."
나는 보호실을 나가려고 했다. 이제 곧 인수인계해야 되니까.
"아니다"
굵고 낮은 뚜렷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재 씨는 어느 때보다 근엄한 자세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정상이다"
믿기 어려웠다. 늘 가래가 끼어있고 발음도 못하던 사람이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나와 눈을 마주친 이후 그는 식사를 시작했다. 기침도 하지 않았다. 그는 허겁지겁 미음을 먹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살짝 목례를 하고 보호실을 나왔다.
그런 장면을 보고 나니까 곧 퇴사한다는 게 좀 아쉬웠다. 그의 언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이제 기침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언어가 어떻게 살아나게 될지는 모르겠다. 말하고 싶다면 말을 할 것이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등장하는 에드워드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마지막 인수인계 후에 퇴근길에 올랐다. 간호사들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를 남겼다. 뒤돌아 가는 내 뒤에서 인수인계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성재 씨 말이야. 갑자기 기침도 안 하고 밥을 잘 먹어. 점심때까지만 해도 기침 그렇게 했는데... 왜 이렇게 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
... 씨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