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것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정훈아. 아버지 돌아가셨단다. 지금 빨리 출발해라. 외출 허가받아놨다"
수간호사는 소식을 듣자마자 외출 허가를 받았다. 정훈도 뜻밖의 소식에 당황했다. 어제까지 아버지와 통화를 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장례 마치고 바로 들어올게요..."
병원에 있어서 임종도 지키지 못했으니 그 상실감이 오죽했을까? 그런데 장례식을 마치고 들어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가족에게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병동에서는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었다. 정훈의 보호자와도 연락이 되지 않아서 곤란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정훈이 복귀하지 않은지 일주일째. 나이트 근무를 서던 날이었다. 업무 인수를 받고 근무를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병동에 정훈이 왔다.
"다녀왔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니?"
나는 정훈의 사물 중에서 위험물품이 없는지 검사하면서 물어보았다.
"장례 마치자마자 갑자기 배가 아팠어요. 그래서 구역질하고... 그러다가 근처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왔어요. 배가 너무 심하게 아팠어요. 주사를 맞아도 아팠어요.... 밤새도록 구역질하고... 그래서 늦게 왔어요. 죄송합니다"
장례를 마치고 입원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통증에 시달렸고 진통제도 소용이 없었다는 말에 뭔가 느낌이 왔다. 의사의 오진으로 약이 듣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른 약도 써보았을 것이고 검사에서도 별 이상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런 고통을 불러일으켰을까?
히스테리 발작에서는 약이 거의 듣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은 정신의학에서도 규정되어 있다. 의학용어로는 소마틱(Somatic Symton)이다. 내가 입사했을 때, 숙지하라고 받은 의학 용어 파일에도 적혀있던 내용이다. 비슷하게 진통제가 듣지 않는 질환이 있다.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는 CRPS(복합 통증 증후군) 같은 질환이다. 히스테리에서 약을 써도 왜 통증이 멈추지 않을까?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에서 느끼는 통증의 성질에 대해서 '통증 환각'이라고 이야기했다. 신체에는 이상이 없지만 등장하는 고통이 환각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적 원인을 탐구해야 하는 의학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을 검토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정훈이의 말 대로라면 오늘 밤에도 그런 발작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가 진통제는 의미가 없다. 이런 내용이 의사 입장에서 불쾌할 수 있지만 검사로 밝혀낼 수 없는 질환이라면 신경성이라는 말을 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부학적 관점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의사가 해줄 수 있는 일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통증 발작 자체는 특정 시간대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대가 지나간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질 것이다.
비슷한 것은 우리 일상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어디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를 만나고 아픈 것이 사라지게 되어서 당황하는 경우다. 프로이트의 분석 사례에서도 채실리 부인이 그랬다. 분석 중에 이가 너무 아파서 의사를 부르면 통증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튼 어느 순간 정훈의 히스테리 발작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언제 나타나느냐였다. 병동 취침시간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취침 시간이 되어 병실 소등을 하고 병동 라운딩을 돌았다. 11시 조금 넘어서 환자 한분이 간호사실로 급하게 나왔다.
"병실에 좀 빨리 와보세요. 애 상태가 이상해요!"
라운딩 시간에 정훈이의 상태를 확인한 지 20분이 채 되지 않았었다. 나와 간호사는 즉각 병실에 가서 정훈을 보았다. 심한 복통에 구토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환자들이 다 일어나서 정훈의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정신 좀 차려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정훈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나는 정훈을 즉각 보호실에 옮기고 간호사는 주치의에게 전화해서 주사 처방을 받았다. 정훈이 아프다고 하니까 주무시던 분들이 일어나서 보호실로 나왔다.
의사 처방대로 주사가 들어갔지만 구역질은 멈추지 않았다. 심한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동안 이런 고통에 계속 시달렸던 것이다. 현장에서 히스테리 발작이 일어나는 것을 접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심하게 나타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토하고 싶다고 해서 봉투를 가져다주었지만 침만 뱉었다.
약이 소용없었으니 난리였다. 계속 아프니까 다시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지켜보자는 말이 나왔다. 약을 연속으로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정훈의 아버지와 비슷한 질환이 유전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약이 듣지 않으니 더 중한 병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잘 시간이니 나는 우선 병동 환자들을 병실로 돌려보냈다. 주무셔야 하니까. 내가 옆을 지키겠다고 하고 간호사도 나이트 업무를 하러 갔다. 정훈을 보고 있으니 정신을 차라지 못하고 연신 침만 뱉고 있었다.
‘..... 내가 해도 될까...’
치료는 의사의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등장하는 히스테리는 의사도 어떻게 손을 쓰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신경성’으로 등장하는 것이니까. 나는 이런 통증이 완화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다. 만약 이 상태로 오늘 밤이 지나간다면 약이 조금 바뀌는 것 외에는 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 밤 통증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내 나이트 근무는 좀 더 피곤해질 것이다. 내 욕심에 더 피곤하게 근무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한동안 지켜보다가 보호실로 들어갔다.
"정훈아. 괜찮니?"
"보호사님.. 우웩.... 죽을 거 같아.. 욱.. 살려 주... 우욱..."
토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침을 계속 뱉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질 것이다. 정훈이 지친 듯 멍하게 보호실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흡사 최면 상태에 빠진 것 같아 보였다. 히스테리 발작이 일어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이런 식의 유사 최면 상태에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거기서 질문을 던졌다.
"장례식장에서 무슨 일 있었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친척들이 슬퍼하기보다... 아버지를 욕했어요..."
"그 모습이 역겨웠니?"
"네..."
"그래... 이제 자라..."
정훈은 맥이 풀린 듯 침대에 기대 누웠다. 그리고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었다. 나는 다른 것들을 정리하고 보호실의 불을 꺼주었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정훈이 진정되어서 잠들었다고 하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라운딩을 돌고 흡연실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 장례식장에서 욕을 한 친척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라고, 그 사정을 알아도 정훈이 듣고 있기 힘들었었을 거라고 말이다.
정훈이 그런 히스테리 발작을 보인 이유는 다른 것보다 아버지에 대한 강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안나 O가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히스테리 발작이 심해진 것에 비유해도 될 것 같다. 내가 정훈이의 가정사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훈이 경험한 증상은 말할 수 없었던 역겨움이 등장한 것이다. 말하지 못한 것은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를 괴롭히는 통증에는 장례식 때의 상황이 압축되어 있는 것이나 같았다. 그 통증이 지니는 메시지는 번역이 되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치 시지프스가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올리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아침이 되었다. 정훈은 개운하게 자고 일어났고 아침 식사도 잘했다. 컨디션도 매우 좋았다. 수간호사는 정훈이 아프다가 진정되었다는 말에 무척 좋아했다.
"너 진짜 우리 병원이랑 뭐가 있는 모양이네?"
나는 그저 지켜보았다. 아마도 첫날이라서 그렇게 주변 요소들을 따지진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내 행동을 이야기할 이유도 없었다. 보호사 업무 외의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경우를 의료인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연구에서 에미 부인이나 엘리자베스 부인, 채실리 부인의 히스테리성 통증을 의학적으로 어떻게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의사를 만난다고 해도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프로이트 시절의 히스테리는 그래서 거의 불치병처럼 여겨졌다. 아픈데 낫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히스테리를 잘 고친다고 소문난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라캉도 후대에 프로이트를 두고 히스테리에 빚을 졌다고 까지 이야기했을까?
퇴근 시간이 되었다. 밤을 새워 피곤했지만 퇴근 전에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내가 배운 대로라면 어젯밤의 기억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정훈아.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니?"
"아니요~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어요"
"그래. 괜찮아 보여서 좋네"
그리고 나는 퇴근길에 올랐다. 분명 보호사 업무 외의 일이긴 하지만 이런 경험은 어지간해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내용일 것이다.
며칠 후, 정훈은 다시 통증을 호소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밤이 아니라 낮에 잠시 통증이 일어났다. 그것도 잠시 상태가 나빠졌다 곧 괜찮아졌다. 시간대를 바꿔서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증세가 약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경증이란 결국 주체가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갈등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로 번역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