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퇴사 이후
병원을 그만두고 2년쯤 지났을 때였다. 꾸준히 임상을 연구해왔고 그에 따르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덕택에 나의 연구도 어느덧 자리가 잡혔다. 다양한 증상에 대한 분석 경험도 갖춰졌다. 게다가 장기로 분석하게 되는 경험도 가지게 되었다. 임상 사례집도 만들어냈고 그것을 계기로 초청 강의의 기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길을 걷다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병원에서 같이 근무했던 계장님이었다. 오래간만이라 반가웠다. 그러던 중 계장님은 지금 보호사를 구하고 있으니 다시 와서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계장님에게 아직 혜연 씨와 같은 예전 환자들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직도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좀 궁금한 사람들이 있었다. 심 여사라든지 혜연 씨라든지 성재 씨의 예후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이전 기억을 떠올린다면 퇴사하기 전에 환자분들에게 인사를 했다. 심 여사는 눈을 뜨고 있었다. 증상은 한번 변화하면 다시 예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잘 없다. 과학적 법칙처럼 치료가 더 들어가고 덜 들어감에 따라서 증상 변화를 유추할 수 없다.
혜연 씨도 생각이 났다. 내 앞에서는 언제나 생글생글 웃었는데, 내가 퇴사한다는 소리에 태도가 냉랭해졌다. 인사를 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저 무섭게 노려보았었다. 원망하는 것일까?
당시 병원 측에서는 사람이 급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인원이 빠져서 그럴 것이다. 급여든 복지든 그렇게 좋은 조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들어가서 근무하는 것에 아쉬움이 없진 않으나 이전에 근무하던 것처럼 내 능력을 숨기면서 일하고 싶지 않았고 동시에 집안 어르신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자리를 비우기도 곤란했다. 결국은 그 일을 하지 않았다.
병동 생활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프로이트는 정신건강의 조건을 일하고 사랑하는 것을 꼽았다. 일과 사랑은 증상으로 처리될 에너지를 활동으로 재투자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치료에는 훨씬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 말고도 병동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내용들을 검토하자면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들도 이야기해야만 할 것이다. 환자들의 망상을 다시 재번역하는 과정은 꽤 지루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