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세미나
저번 주에 첫 번째 글을 쓰고 이제 세미나 내용에 대해서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매주 한편씩 올릴 예정입니다. 웹 세미나는 현재 2주에 1회씩 하는 걸로 계획을 잡아둔 상태라 1주에 하나씩 수정해서 올린다면 곧 따라잡지 싶네요. 다만 우리 세미나의 특징은 영화를 정신분석적으로 보고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잘 없습니다.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내용을 어느 정도 참조하는 정도이고 그것이 우리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등장하며 어떤 임상으로 경험하게 되는지가 더 중요하니까요.
사실 정신분석가로서 바라보는 영화나 문학은 일반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똑같이 보입니다. 다만 정신질환을 묘사함에 있어서만 조금 다릅니다. 그리고 신경증 위주로 살펴보게 됩니다. 프로이트 역시도 그러한 비판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영화 내용에 대해서 딱히 스크린 숏 같은 것은 첨부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영화는 현재 유튜브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총 3회의 세미나로 진행한 내용으로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그럼 시작해 보도록 하죠.
고 이청준 작가가 1980년에 발표한 조만득 씨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쓴 논문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그렇게 유명하진 않습니다. 현빈과 이보영이라는 스타를 내세워서 촬영했지만 대중의 관심에 그렇게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할 때 현빈 씨가 정신병자 역할을 한다고 방송에서 소개되기도 했었습니다.
저의 관점에서는 이 영화가 상당히 가치로웠습니다. 정신질환의 두 가지 측면을 검토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학작가의 섬세함이 정신질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흥밋거리로 읽히는 소설에서 그리는 정신질환의 모습보다 문학 속에서 그려지는 모습이 더 와닿습니다. 영화는 그 문학을 옮겨놓았기 때문에도 좋았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 ‘나는 행복합니다’만 보면 참 행복한 상황을 그릴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삶은 비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제목이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각각의 주인공의 시점에서 말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달라집니다. 흔히 사람들은 정신질환이 발생할 때, 원인을 찾는 것을 무척 힘들어합니다. 정신의학적으로는 ‘뇌’ 문제라고 하고 심리상담사들은 주변 환경을 지목할 때도 있고요. 혹은 유전이나 가족력등 여러 가지 이유를 지목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이유들이 모두 다 통합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의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졌다고 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저런 주장이 등장하는 겁니다. 진단체계(DSM)가 날이 갈수록 두꺼워지는 것도 보다 섬세하게 진단하기 위한 의학계의 노력이죠.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처해져있는 상황만 해도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이 납득될 만한 상태일 겁니다.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거든요. 일반적으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 성향이 발달해서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것은 무관합니다. 네가 평소에 사람도 잘 안 만나고 내향적이라서 우울증에 걸린 거다. 이런 건 아니라는 거죠.
자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 봅시다. 조만수 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그는 대뜸 의사에게 수표를 써주면서 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밑도 끝도 없는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신 이 행동이 '망상'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말고는 더 할 말이 없죠.
만수는 어느 날 상태가 좀 이상해집니다. 그걸 알아본 마을 이장이 그런 만수를 병원에 입원시킨 겁니다. 그리고 이장은 만수의 과거에 대해서 의사에게 상세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곧바로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하나뿐인 형은 도박에 빠져서 돈만 요구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게다가 경제적 고통도 심각했습니다. 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만수는 어떻게 감당해야 했을까요?
이 경우는 정신의학에서도 발병모델을 하나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흔히 알려져 있기로 ‘취약성-스트레스’ 모델입니다. 특정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에 질환이 발병했다는 겁니다. 상황에 어울리니까 납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을 감당해야 하니까 병에 들었다는 거죠. 혹은 가족들이 전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중이니까 유전으로 설명하는 것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이러한 관점에 찬성할까요?
프로이트는 정신질환을 유전과 연관 짓지 않았습니다. 의사로서의 프로이트는 인간이라는 종 전체에 적용되는 것과 개체에서 발달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 지었습니다. 그중에서 성격이나 신경증의 부분은 개체에서 발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전이 아니라는 거죠.
만약 유전이라면 치료보다는 관리해야 하는 질환일 겁니다.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혈우병 치료제가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치료제가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죠. 예전에는 혈우병은 낫지 않는 병으로 유전되는 질환으로 다들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즉. 집안내력처럼 가족에게로 유전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족력도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수에게는 당장 어떤 치료가 들어가야 할까요?. 당장 약물을 써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의사나 혹은 상담사입장에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약물은 행동조절용도로 쓴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 약물 기전의 방식대로 정신작용에 간섭하면서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만수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수간호사인 수경과 보호실에서 만나게 됩니다. 물론 그런 만수는 수경에게 이해되지 않는 돈 이야기를 끄집어냅니다. 그런데 수간호사가 굉장히 피로한 상태로 만수의 입원을 받아줍니다. 그렇지면 주변 상황에 그렇게 신경을 쓰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만수는 꿈을 꿉니다. 수영장에서 잠수한 상태로 수경을 만나고 물속에서 키스합니다. 그리고 수경이 물 위로 올라가지만 어째서인지 만수는 물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질식해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묘사된 꿈의 전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악몽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첫날 무엇을 위해서 이런 악몽을 꾸게 되는 것일까요? 우선 악몽을 꿨다고 다들 무서워하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작용의 움직임은 훨씬 잘 돌아가고 있다 보고 있습니다.
물속에서 질식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문학이론에서 물은 자주 이야기 됩니다. 특히 물의 상징성을 성욕으로 보는 경향이 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학하는 사람들이 ‘물’을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하고자 할 때, 성욕을 자주 끌어들입니다. 그렇다면 수경과 물속에서 만났다는 것은 첫눈에 서로 눈이 맞았다는 식으로 해석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꿈의 분위기가 성적이라도 그렇게 단순하게 보는 것은 조잡한 해석에 불과할 것 같습니다.
꿈을 살펴본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꿈의 해석에 등장하는 몇 가지 작용들을 통해서 해몽서처럼 상징 맞춰보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꿈이 어떻게 위장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들을 풀어내야 하는 등 상당히 복잡한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꾸는 꿈은 짧아서 별 내용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면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그럼 꿈을 봅시다. 수영장은 두 사람의 현실에서 요구되는 리비도의 압박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전체적인 내용도 그렇고요. 수경은 시간이 지나면 현실의 압박에서 좀 벗어날 수 있는데, 만수는 그러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경증의 두 갈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이 발병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좀 쉬니까 회복이 되는데, 어떤 사람은 회복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물론 발병당시에는 굉장히 심했는데 좀 휴식하고 나니까 멀쩡해지는 그런 경우도 해당이 될 수 있겠네요.
몸이 지치거나 무리한 경우에도 정신질환이 발병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그런 일들이 나타나게 되죠. 혹은 특수부대의 혹독한 훈련을 견디면서 환각을 보고 환청을 보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훈련을 마치고 휴식을 하게 되면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상태가 됩니다. 신체에 그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훈련의 예시가 아니라 보다 일상적인 예시를 생각해 봅시다.
회사에서 업무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이나 쉬지 않고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려는 수험생이 좋은 예가 됩니다. 주말에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업무전화를 받아야 하는 경우에도 행동에서 효율 저하가 등장하고 그 덕분에 상당히 괴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죠. 이렇게 발생하는 신경증을 두고 현실 신경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수험생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에, 공부도 거의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멍 때리게 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공부를 한다고 하면 효율이 많이 떨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억지로 공부하는 게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욕망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욕망하는 것으로 갈등하고, 그 문제로 병이 일어난 것이라면 휴식한다고 해서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발생한 신경증을 정신신경증이라고 합니다.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증상으로 인해 자아가 괴로워지기 시작할 때, 그때 사건을 기억해서 ‘원인’이라거나 ‘초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신경증의 초기는 ‘잠복기’입니다.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드러났다고 하면 ‘중기’ 이상 지난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증상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사건을 이미 경험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주의할 것은 어떤 사건 직후에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것이 원인은 아닙니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자신의 정신구조에서 자료들이 첨가되었고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을 거치게 된 것입니다. 즉, 한 가지 사건이 원인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이미 삶에서 천천히 형성이 되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이 영화에서 만수와 수경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현실신경증과 정신신경증의 대조를 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그들은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증상을 통해서 견뎌내고 있습니다. 증상 덕분에 현실을 외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으로 인해서 불행하게 사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경증으로 인한 불행을 일반 불행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많은 것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경증적 불행이란 무엇일까요? 자기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괴로움이 자꾸만 반복된다거나 하는 등의 내용입니다. 어떤 굴레에 갇혀있는 것 같은 내용이 되죠. 그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실패해도 그때는 일반 불행으로서 뭔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신경증적일 때는 얻을 수 있는 내용들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첫 세미나 내용이 이 정도인데 사실 대본이 있어도 즉흥적으로 한 내용이 많았어서 이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더 많이 했습니다. 특히 사유반추가 일어나는 내용들은 번아웃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꽤 많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단초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