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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May 15. 2024

나는 행복합니다(2)

수경의 이야기

 저번 세미나에 이은 내용입니다.  세미나의 핵심 내용은 아래 내용입니다. 다만 세미나 진행하면서 다른 이야기들이 조금 오고 가긴 했었습니다. 그 당시의 병원상황 같은 것들도 이야기하게 되었고요. 특히 정신병원의 인권상태는 2000년도 이전에는 끔찍했었습니다. 해외에서 정신병원과 관련한 영화들이 공포물이 많은 이유도 거기에서 조금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 당시의 치료 역시도 지금처럼 발달되어 있지 않았었습니다. 거기에 더불어서 처방되는 약도 보험이 되지 않는 약이 많아서 무척 고가의 약이 많았던 땝니다. 그 당시 돈으로 '한 알'에 5만 원씩 하던 약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럼 그 약을 하루 두번 먹는다 치고 다른 약값들을 포함하면 약값이 엄청났었습니다. 그런데 효과는 미비했었고요. 


그 당시 돈의 가치를 현재로 환산한다면 얼마나 될까요? 치료를 실시한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겁니다.  가정에서 감당하기가 어려운 상태가 되는 거 였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주요 내용은 흔히 이야기하는 '번아웃'입니다. 근무태도가 안 좋아지고 몸이 상해가는데 표면적으로는 그냥 조금 피곤해 보이는 정돕니다. 왜 이런 상태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요즘 생각하는 것처럼 '뇌'로만 검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번아웃 증후군을 다른 말로 '두뇌 피로증'으로 쓰는 경우도 있네요. 


그럼 시작해 보도록 하죠. 





 수경은 근무 태도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출퇴근 시간도 그렇고 업무에도 효율이 현저히 떨어져 버립니다. 수간호사로서 경력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근무태도가 너무 안 좋습니다. 근무를 그렇게 해왔다면 수간호사까지 할 수도 없었을 텐데요. 대체 무엇이 수경을 이지경까지 내몰게 만든 것일까요? 


 수경은 불면증으로 인해서 병원진료까지 받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우울증을 조심하라고 조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면’이라는 데 포인트를 좀 줘봅시다. 정신분석에서 불면이란 자아의 휴식거부를 의미합니다. 자신에게 발생하는 갈등이 휴식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 자신이 무엇을 갈등하고 있는지 잘 인지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경의 불면을 불러일으킨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점을 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임상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불면이 무척 많이 관찰이 됩니다. 그런데 단순히 수면제로만 견디는 것은 일시적으로 잠만 자게 해 준다는 겁니다. 이 상태로는 약에 의존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도 하는 것이고요. 수경의 생활을 한번 들여다봅시다.


 수경의 아버지는 암 투병 중입니다. 그녀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곧바로 아버지의 병 수발을 들어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치료비까지 부담하고 있으니 경제적인 열악함을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실제 수간호사 급여가 그렇게 적지 않을 것인데 대출을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급에 차압이 들어왔다는 것을 보면 열악한 상황인 것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고통은 상당한 압박감을 줍니다. 지갑에 여유가 있어야 마음에도 여유가 남습니다. 그런데 수경에게는 자신의 지갑사정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생존입니다. 따라서 수경은 자연히 무리를 해야 했습니다. 의사의 조언도 그녀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우울증은 요즘 말로 바꾸면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과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어떤 결과가 등장하게 될까요? 행동효율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일하는데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꽤 오래 지속되어 왔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것이죠. 이 경우는 말도 잘 안 들립니다. 멍도 자주 때리고요.


 이런 경우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신경쇠약’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개념은 요즘의 정신의학에서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분석 진영의 여러 의사들도 이 개념의 애매모호함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도 거기에 동의를 했었죠. 그렇다고 해서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하나의 증상군으로 엮는 것이 ‘신경쇠약’이라는 표현보다 더 좋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때 등장할 수 있는 현상이 생산성이 줄어들고 무기력함도 동반이 됩니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도 관련성이 깊습니다. 만약 과로도 하지 않는데 이런 상황에 빠져들었다면 다른 곳에서 에너지의 낭비가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종종 어떤 학자들은 무기력함에 대해서 정신분석이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는 주장을 합니다만 프로이트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거나 혹은 프로이트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사실 수험서만 공부했다거나 하면 알 수가 없죠.

 

 영화 장면으로 돌아가 봅시다. 수경이 아버지의 암치료에만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과거에 의사랑 연인 관계였다가 깨졌으니까 그 부분도 신경이 쓰였을 겁니다. 그런 것들이 축적되면서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도 싫었을 겁니다. 차라리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투병입니다. 그렇다면 수경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고통 이외의 다른 내용은 죄다 감당해야 합니다. 수경이 번아웃 상태를 끝까지 감당하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이 다가오자 수경은 지난 시간들을 되새겨봅니다. 차라리 병원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퇴원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보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입니다. 침대에서 고통만 견디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만족스러웠을 테니까요. 그리고 수경의 아버지는 돌아가십니다. 그런데 그 이후 수경입장에서 의미 있는 것들이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병원도 며칠씩 무단결근을 하고 그냥 퇴사해 버립니다. 


 수간호사라는 직책에 어울리는 태도도 아닙니다. 그 모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모든 것이 사소해진 겁니다. 아버지의 생존이 수경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이었습니다. 여성에게는 희망이 무척 중요합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희망을 붙들고 있을 수 있다면 여성은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희망이 되어주던 존재인 아버지가 사라지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사표 내러 마지막으로 병원에 들른 수경은 만수와 마주치게 됩니다. 만수가 병원에 방문한 건 수경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는데 둘은 가볍게 목례만 하고 헤어집니다. 


 수경의 퇴사는 현실의 압박에서 한걸음 물러서는 겁니다. 지독한 희망고문에서 벗어나 회복할 때를 맞은 겁니다. 이런 장면에는 이런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해방의 기쁨이 너무나 강력하게 슬픔과 뒤섞인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빠져나온 감옥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죠. 비슷하지만 임상에서도 그런 경우가 등장합니다. 강박증의 분석을 진행하다 보면 분석 효과가 나타나는 순간에 조금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분명 효과가 등장했고 행동 변화가 나타났는데 본인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겁니다. 대체 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겁니다. 증상의 기능이 있는데 그 기능이 갑자기 작동하지 않으니까 혼란스러워진 겁니다. 그래서 다시 증상이 작동하지 않는지 마구 의심하기도 합니다. 치료를 부정하는 경우들도 생기죠. 일반적으로 우리가 갑자기 상태가 이상해지면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증상의 발달이 꽤 진행되어 있다면 치료가 된다 쳐도 '좀 있음 다시 증상이 올라올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조금 독특한 현상입니다. 


 수경은 아버지를 잃고 번아웃에서 회복할 때가 되었지만 그만큼 또 아버지를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희망고문한 만큼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수경의 번아웃자체는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에 희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한 만큼 아픔을 견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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