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의 초기를 살펴봅시다
이 내용은 초기 정신의학에서의 치료 문제를 검토하는 세미나였습니다. 초기 정신의학은 치료에 있어서는 실패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병원에서는 인권이라는 개념보다 약을 주고 관리하자는 개념으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의학의 초기 역사는 생각보다 암울합니다. 영화에서 그런 내용들을 묘사해주고 있지만 현실은 훨씬 끔찍했을 겁니다. 그럼 시작해 봅시다.
초기 정신의학의 태도는 어땠을까요? 프로이트는 히스테리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라캉은 프로이트가 히스테리에 빚을 지고 있다고 까지 표현을 했죠. 제1차 산업혁명이 지나고 나서 히스테리가 부인들 사이에서 대유행을 하는데 정말 다루기 어려운 질환이었습니다.
의사들도 손쓰기 어려웠었습니다. 의학이나 정신병리에 대해서 공부를 하신 분들이라면 크레펠린이나 블로이어 같은 유명한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겁니다. 그들은 환자의 생활을 탐구하고 정신병적 특징들을 분류해 낸 의사죠. 그래서 크레펠린은 조발성 치매를 이야기했고 블로일러는 정신분열(조현병)을 이야기했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조발성 치매를 편집증으로 정신분열은 그대로 씁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열을 두고 이상 정신이라는 다른 진단명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프로이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임상을 들여다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논리를 지닌 상태에서 몸만 아픈 ‘히스테리’ 문제에는 유독 취약했습니다. 특히 지금도 신경과나 정신과에서 정신적 문제로 통증이 일어나는 신체화문제는 잘 다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경우에는 생물학적 질환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강직성 척추염과 같은 질환도 생물학적인 내용이라고 말합니다만 분석치료를 진행하다가 낫게 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신체의 통증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그것도 분석을 통해 다루어질 수 있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생물학적 원인이 없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신경성 질환에서 나타나는 통증에는 그런 속성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인 내용이라고 해도 해부학적 차원에서 검토해야 하는 정신의학의 운명에서는 이 지점을 다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로 약물로 치료해야 한다는 입장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히든 아이덴티티라는 영화는 그런 정신의학 초기의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이 원작입니다. 역사적으로 히스테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주죠. 요즘도 좀 그렇지만 히스테리를 단순히 '신경질' 수준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히스테리 부린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죠. 그런데 실제를 알고 보면 그런 것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솔트 박사는 대학에서 히스테리를 강연합니다. 그리고 치료 중인 35세의 여성 히스테리 환자를 수강생들에게 소개합니다. 그리고 히스테리 발작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합니다. 그 여성은 극도로 폭력적이라서 헤로인을 투여하여 몽롱한 상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항을 할 수 없게 만든 겁니다.
이때 당시에는 히스테리에 대해서도 처방할 수 있는 약이 그렇게 없었습니다. 헤로인이나 아편 혹은 아편 팅크 같은 것을 처방을 했었습니다. 행동을 억제하는 것 정도를 치료로 생각했던 겁니다. 정신의학의 초기 수용소 치료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되겠죠. 그래서 자아를 마취하는 것이 치료로 착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솔트박사는 그녀의 히스테리 발작을 고의적으로 일으키고자 합니다. 그 방식은 성감대를 억지로 자극하는 것입니다. 쉽게 성추행하러 다가오고 있는 겁니다. 당연히 폭력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죠. 난동도 부려야 할 거고요. 싫으니까요. 이 것은 당연한 반응인데 증상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치료 중인 35세의 여성 일라이저 그레이브스 부인은 학생들에게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부르짖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죠. 솔트 박사는 그녀의 부르짖음에 대해서 범죄자의 무죄 주장과 같다고 설명하면서 의사는 보이는 것과 들리는 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강의합니다.
이게 영화의 첫 시작 부분입니다. 그 당시 정신질환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 볼 수가 있죠. 실제로 중세부터 정신질환자들을 관리하는 수용소는 있었습니다. 시골과 다르게 도시에서는 광인들을 관리할 시설이 필요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복지에서 배우는 영국의 구빈원 역시도 이와 같은 수용시설이었습니다. 구빈원 자체는 빈곤의 구호를 위해 설치된 시설이었지만 그 내부에는 빈곤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취약계층이 모여있었는데 그중에서는 정신질환자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죠.
우리나라도 그랬습니다. 70~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네 바보 형’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들은 동네에서 하나둘씩 발자취를 감추게 되기도 했죠. 정신질환이라는 개념이 알려지면서 공동체의 일원이었던 사람들이 따로 수용되어 관리되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요즘도 그렇죠. adhd는 원래 자신의 의도와 다른 행동이나 컨디션이 나타날 때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병명입니다.
솔트박사의 병에 대한 주장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미치지 않았다는 환자의 주장이 범죄자의 무죄 주장과 같다고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요. 물론 정신분석에서도 ‘부긍’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입니다. 유독 특정 사례에 대해서 강하게 부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기꾼들이 법적 처벌을 받겠다고 인터뷰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표현들이 그렇습니다. 좀 강한 표현들을 가지고 옵니다. 말 자체는 조근조근한테 은근히 등장하는 부분들이 있는 겁니다. 전청조가 대표적으로 이런 부긍현상을 보여주었고 그리고 증거 없이 '카더라'만 가지고 이상한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들도 그런 특징을 나타냅니다. 좀 심하면 증거도 서슴없이 조작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데 부당하게 당하는 상황에서 그레이브스 부인이 소리 지르는 것은 부긍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상황자체에 합당한 반응이죠. 성추행 당하는 걸 즐기는 여성은 없을 테니까요. 특히 이때 히스테리 발작이라 부르는 것이 성적 반응입니다. 직업 배우가 아닌 이상에야 자신의 성적 반응을 보이고 싶어 하는 여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동의 없이 보이는 것은 상당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거죠. 우리나라 정신병원도 인권의식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2000년도 이전의 정신과는 상당히 암울했다고 하고요.
게다가 정상과 비정상간의 ‘구분’이 문제가 됩니다. 정신병원에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환자들 말 믿지 마라’, ‘환자는 환자다’ 그런 말을 합니다. 치료보다 관리가 우선인 것처럼 들리는 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봅시다. 예를 들어서 자해문제를 일으켰다거나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먹어서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설명은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요? 자해행위를 선택하게 되는 어떤 메커니즘을 고려하기보다는 좀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환자’라서 그렇다는 거죠. 그럼 또 그게 수용이 됩니다. 이런 식의 설명은 범죄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죠.
영화에서 솔트 박사가 증상으로 인한 호소를 범죄자의 무죄주장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지 당장의 상황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일종의 패치를 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간편한 방식은 낙인을 부여하는 겁니다. 낙인을 부여하면 인격에 대한 복잡한 설명이 없이도 상황을 수용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진단명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가 쉽습니다. 정신과적 진단이 그렇습니다. 낙인을 부여하면 더 이상의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이해를하면 되니까요. 이런 내용은 전문적인 연구에서도 간혹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읽던 책에서 어떤 임상을 탐구해야하는데 진단명에 일치하는 현상이 등장하자 그것으로 기뻐하는 연구자들이 나오는 겁니다. 증상 자체는 앞으로 한걸음 나간것도 없는데요. 연구가 막힌다는 겁니다.
이런 낙인 효과는 상담 현장에서도 등장합니다. 불안도가 심한 내담자에게 ‘태어날 때부터 심했던 불안’이라는 말로 그 문제 자체를 수용하게 만드는 겁니다. 불안에 대해 구체적인 이론들도 있다고 해도 ‘원래 심했던 불안’이라고 해석해 준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일반화한다면 쉬워집니다. 하지만 결론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죠. 치료할 방법을 모르겠다는 말을 태생이 그렇다는 말로 바꿔준거니까요.
인간 정신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피상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흑백만을 구분 지으려는 것과 흡사합니다. 하지만 의학은 기본 전제를 생물학에 두고 있습니다. 히스테리의 경우에는 생물학적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수용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의학의 한계죠.
프로이트도 정신분석을 의학의 영역에서 이야기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해부학적 원인을 따져야 하는 의학의 영역에서 심인성 질환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심리학의 영역에서 정신분석을 이야기한 겁니다. 그 말은 원래 심리학 이론이 아니라는 거죠. 사실 분석을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하다 보면 정신적인 변화들이 신체의 어떤 상태변화와 관계되는 내용들도 등장하곤 합니다.
그리고 낙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자신의 증상에 대해서 질문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은 진단명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단명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죠. 그래서 깊이 있게 파고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진단명에 대해서만 집착하고 거기에 자기 행동을 끼워 맞추기도 합니다. 비슷하게는 MBTI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렇게 이해하는 게 재미는 있으니까요. 뭐 MBTI의 최고 장점이 ‘재미’ 아니겠습니까?
병은 병든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경증 문제에서 잘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우울하게 살아갈 것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건 아니죠. 치료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진단명으로 이해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접근은 제한되어 버립니다. 더 이상 뭔가 해줄 것이 없다는 거죠.
이 당시에 등장하는 히스테리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있었습니다. 프로이트와 브로이어의 히스테리 연구는 말할 것도 없죠. 약간 사족을 덧붙인다면 브로이어는 히스테리 연구 써놓고 그리 관심을 가지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그 이론들을 다시 보고 다듬고 했습니다.
히스테리 환자들은 낮과 밤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런 표현도 합니다. 낮에는 환각에 쫓기는 무책임한 환자, 밤에는 아주 명료한 정신을 가진 처녀. 이런 표현입니다. 이런 태도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중인격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일 겁니다. 틱도 등장했고요. 류머티즘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요즘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CRPS와 같은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죠. 피로도도 엄청났던 겁니다. 게다가 삼차 신경통과 같은 현상들도 등장했습니다. 아프긴 아픈데 왜 아픈지 모르는 거죠.
프로이트 당시의 히스테리 이론에서 가장 유력했던 학설은 자네라는 학자가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히스테리가 발병하면 정신의 통합 능력이 저하되면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죠. 쉽게 말해서 머리 나빠서 걸리는 질환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자네의 학설을 에미부인의 분석 사례를 통해서 단번에 뒤집어버립니다. 그리고 히스테리가 정신능력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죠. 혹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히스테리성 통증에 시달려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을 발견한 것도 프로이트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내용을 토대로 해서 그레이브스 부인이 “난 미치지 않았어요!”라고 한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왤까요? 질환에 대한 낙인으로 인해서 말할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권리 박탈은 정신질환의 경우에 매우 자주 일어나던 것입니다. 미쳤으니까 말 안 들어주죠?
과거 형제복지원이라는 부끄러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거기선 말을 듣지 않는 여성들은 모두 ‘정신병동’으로 모아놓고 학대했습니다. 미쳤으니까 말 안 들어주겠다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질환은 권리 박탈의 이미지를 품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그런 이미지를 임상 연구를 통해 뒤집어놓은 사람이니까 좀 더 인간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겠죠.
얼마 후, 스톤허스트 수용소에 약물 임상을 배우기 위해 에드워드 뉴게이트라는 젊은 의사가 방문합니다. 활기 넘치는 병원 분위기에 그는 의아해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당시 약물을 쓰는 것은 대부분 아편이었습니다. 아편을 먹으면 활동성이 저해가 되었죠. 움직이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당시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던 수용소는 음침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합니다. 환자들의 활동을 억제하는 약물을 계속 써야 관리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고 활기 넘치는 병동이라면 관리가 되지 않고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봤을 겁니다. 약을 많이 쓰면 일이 편해진다고요. 맞습니다. 저도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들어본 이야깁니다. 재워놓으면 별 탈이 없죠. 그런데 약을 적게 쓰면 환자들이 잠을 잘 안 자고 취침시간에도 자주 나오고 그럽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반드시 나와서 확인해봐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오는 건데요. 하지만 단체생활의 규칙에서 어긋나는 거니까 병원에서는 자도록 하는 수밖에 없긴 합니다. 현대도 이런 분위긴데 과거에는 더했음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겁니다. 끔찍한 이야기도 많고요.
에드워드라는 의사는 처음 겪어보는 병원 분위기가 새삼 놀랍니다. 그렇게 에드워드는 병원장을 만나고 치료임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약물 임상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다고 하죠. 그 당시에는 약물이 획기적인 치료제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도 1960년대 생물 정신의학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게 된 것도 약물이 정신분열증에 효과가 좋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분열증의 전문가라고 불릴 정도로 그 진단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약을 투여하고 나아지는 것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이런 내용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른 내용들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증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좀 더 세심하게 검토할 수 있으면 약물이 효과가 왜 등장했는지 아니면 왜 등장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