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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Oct 04. 2024

바닐라 스카이 (2)

초자아


데이빗에게는 고소공포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았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지만 고소공포증만큼은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데이빗이 감옥에 들어오기 전 이야기를 한번 봅시다. 줄리라는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정식 여자친구라기보다는 단순 파트너 정도였었죠. 어느 날, 데이빗은 줄리를 초청하지 않고 파티를 엽니다. 그런데 줄리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 파티에 몰래 참석합니다. 그리고 데이빗과 유희를 즐기고 싶어하죠.

데이빗의 절친이었던 브라이언은 파티에 소피아라는 친구를 데리고 옵니다. 데이빗은 첫눈에 소피아에게 관심을 가지고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을 위해 줄리는 좋은 핑계였죠. 데이빗은 소피아에게 자신에게 스토커가 붙었으니 도와달라면서 소피아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갑니다.


데이빗의 아버지는 왜 고소공포증을 설명해주지 않았을까요? 단순하게 "원래" 그렇다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고소공포증을 아주 흔하게 접하고 또 경험합니다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불안으로 인해서 심리상담을 하는데 '원래' 불안했다는 말을 해버리는겁니다. 불안한 그 상태가 마치 '노멀함'을 이야기하는 것 처럼요. 그런 내용에 저는 찬성하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고소공포증에 어떤 의미가 작용하기에 높은 곳에 올라가기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모두 동일한 의미가 작동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런 예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높은 지위로 연결이 되는 겁니다. 이어서 높은 지위는 무거운 책임의 의미로 변형됩니다. 따라서 높은 지위가 무거운 책임을 포함한다면 고소공포증은 무거운 책임을 회피하고 싶다는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소공포증이라는 것은 무거운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변장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 차원을 고려하지 않고 의식 차원의 내용들만을 다룬다면 진짜 의미는 찾아지지가 않습니다. 신경증 문제가 등장했을 때 상담이 무력해지는 경우가 이런 이유로  발생합니다.


 그럼 줄리라는 데이빗의 여자친구를 봅시다. 줄리는 데이빗을 진지하게 생각하지만 데이빗은 진지하지 않습니다. 줄리만 그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소피아가 데이빗의 관심을 독차지했을 때 줄리는 심한 질투심에 시달리게 됩니다. 질투라는 것은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졌을 때' 느끼는 겁니다. 비슷한 말로는 시기심이 있습니다. 시기심이라는 것은 '내가 가질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가지는 감정입니다. 질투든 시기든 어떤 식으로든 공격성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흔히 인터넷에서 보이는 악플러들이 시기심에 가득차 있기도 하죠.





데이빗과 소피아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는 줄리를 따돌립니다. 그리고 둘은 조용한 방에서 바닐라 스카이라는 작품을 감상하죠. 이 작품은 아르장퇴유의 센 강이라는 모네의 그림입니다. 그럼 왜 바닐라 스카이라고 불렀을까? 바닐라 스카이는 보기 드물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 풍경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네는 빛의 변화를 뛰어나게 표현한 인상주의 화가였습니다. 그는 온종일 빛을 보면서 그림을 그렸죠. 덕분에 모네의 말년에 시력이 크게 손상되어서 고생을 좀 했다고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 역시도 빛의 반사로 인해서 보이는 겁니다. 그 빛이 반사되지 않는다면 바닐라 스카이 즉 찬란한 하늘은 존재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한 '빛'이 우리의 정신기관에도 있습니다. 


우리 정신기관에도 찬란하게 빛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초자아입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초자아는 찬란하게 빛난다고도 하죠. 바닐라 스카이의 의미와 조금 비슷합니다. 제목 자체가 초자아의 상징성을 품고 있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초자아는 우리가 잠들어 있어도 완전히 잠들지 않고 자아를 감시하고 있는 기관입니다. 우리 자아에서 퇴출되어 무의식에 저장된 내용들이 다시 의식에 들어올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초자아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꿈을 꾸고 난 뒤에 꿈 기억이 지워지는 이유도 초자아가 청소를 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영화 내용으로 돌아가 봅시다. 줄리는 질투심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데이빗과 동반 자살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욕망의 이기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것이 이런 태도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에게서 흔하게 등장합니다.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누구도 가질 수 없게 파괴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욕망은 포기될 수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성의 욕망은 남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부숴버리겠다는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는 남성보다 교양 있는 방식을 선택하려 합니다. 남에게 빼앗기기보다는 흔적을 남기겠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합니다. 줄리는 데이빗을 태우고 다리 밑으로 곤두박질쳐서 같이 죽으려 합니다. 줄리는 사망하지만 데이빗은 살아남습니다. 대신 그는 오랜 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잘생긴 그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졌습니다. 덕분에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유지하게 되었죠.


외적 매력의 척도로 첫 번째로 꼽는 것이 얼굴입니다. 외모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죠. 외모는 자아의 이미지와 관련성이 깊습니다. 그래서 외모평가는 마음에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소피아와 재회하고 싶어 하지만 불안정한 심리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모두 의심합니다. 그 모습에 소피아는 실망하게 되죠.


여성의 입장에서 실망이란 남성과 관계를 끊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실망으로 인해서 헤어지는 연인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생각해봅시다. 남자들은 과연 어떤 연인을 원하는 걸까요? 변함없이 자신의 곁에 늘 있어주는 이상적인 숙녀를 바라는 것일까요? 그 조건이라면 줄리 역시도 이상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데이빗은 줄리를 스토커로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겠죠.


남녀의 사랑을 묘사하는 이야기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을 겁니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기억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을 뒤집으면서 정신분석이 주장하는 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여자의 진정한 사랑은 첫사랑이고 남자는 최후의 여자를 찾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남녀의 사랑에서 환상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정신분석에서 남녀 관계는 비대칭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 '이물질'이라고 그럽니다. 서로 알래야 알 수가 없다는 거죠. 이 점은 높아지는 이혼률에 적용해도 될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죠. 남편이 프라모델 같은 것을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아내가 그것을 마음대로 처분해버리면 그 남편은 곧 지쳐버리게 되고 더 이상 아내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요.


영화로 되돌아가 봅시다. 어느 날, 데이빗은 새벽에 잠에서 깹니다. 그리고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봅니다. 수술로 제거했던 얼굴의 흉터가 그대로 남아있는 겁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런데 잠이 들 때는 어렵게 재회한 소피아가 옆에 잠들었었는데 깨어나니 죽은 줄 알았던 줄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빗은 혼란에 빠져버립니다.



우리는 꿈 속의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꽤 흥미로운 내용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꿈은 무의식 자료를 환상작용을 통해서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꿈에서 다시 꿈을 꾼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 경우에는 '현실'을 꾼다고 합니다. 꿈에서 대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대했다는 겁니다.


실제 분석 현장에서도 꿈속의 꿈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분석 작업을 진행해보면 현실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현실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어떤 사람이 잠에 들어서 꿈을 꾼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꿈에서 잠을 자고 꿈을 꿉니다. 그런데 그 꿈 내용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등장하는 꿈 속의 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런 경우에는 힘든 현실을 바라보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토대로 해서 데이빗의 꿈을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데이빗의 현실이 어떻게 위장이 되어서 꿈으로 등장한 것인지 검토해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죽은 줄리가 살아돌아올 것만 같은 공포감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말이 되겠죠.


프로이트는 현실을 외부 현실과 정신 현실의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외부현실이라고 할 때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그 현실을 외부 현실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정신에서 펼쳐지는 현실을 두고 정신 현실이라고 부르고 있죠. 꿈은 정신 현실에서 펼쳐집니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현실은 외부현실과 정신현실이 온통 뒤섞여 있습니다.


데이빗 얼굴의 상처는 그 현실 지표의 구분을 나타내 준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영화 '인셉션'에 등장했던 토템의 역할과도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지표로 작동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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