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우 Sep 20. 2024

바닐라 스카이 1

꿈은 소원 성취다


2001년에 나온 이 영화는 원래 open your eyes(1997)라는 영화의 리메이크작입니다. 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특히 꿈의 속성들이 잘 반영되어 있는 만큼 흥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럼 영화 내용을 들여다봅시다.


데이빗은 아버지로부터 거대한 출판업체를 상속받았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그는 얼굴에 라텍스 가면을 쓰고 죄수복을 입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와 면담을 하고 있죠. 데이빗은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사연으로 죄수복을 입게 되었을까요?


그는 회사의 상속자로서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다만 회사 임원들의 견제만큼은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들에게 일곱 난쟁이라는 별명까지 붙였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생전에 고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었죠. 정신과 의사는 일곱 난쟁이의 꿈을 꾸는지 질문합니다. 데이빗은 늘 악몽을 꾼다고 답합니다.

여기서 데이빗의 꿈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그는 왜 악몽을 꾸는 것일까요?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꿈은 소원성취"라고 말했습니다. 현실에서 성취하지 못한 소망을 꿈에서 만족한다는 겁니다. 라캉도 비슷하게 이야기합니다. 꿈을 욕망의 실현이라고 하죠.


그렇다면 악몽을 꾼다는 것이 소망이고 욕망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꿈에 등장하는 무의식은 그 모습이 원래의 모습이 아닙니다. 자아에서 퇴출된 무의식의 똘마니들이 변장해서 우리가 잠에 들 때 잠깐 등장하는 겁니다. 초자아는 결코 잠드는 법이 없지만 잠잘 때만큼은 조금 느슨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무의식 단서가 잠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시 여러분이 꿈을 기억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꿈 기억이 잊혀진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고 그 기억이 안 나면 당황해하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꿈 기억의 성질 자체가 원래 그렇습니다. 우리가 깨어있을 때는 무의식 단서가 들어오질 못합니다. 초자아가 무의식 내용을 차단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잠에 들었을 때 그것이 슬며시 들어왔다가 꿈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마찬가지로 초자아가 그것을 청소해버립니다. 따라서 꿈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프로이트가 꿈은 소원성취라고 이야기했는데 그에 반박한 프로이트의 내담자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꿈 분석 사례는 소원성취가 얼마나 교묘하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례를 잠시 살펴보죠.


그 부인은 시어머니와 고부 갈등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휴가를 가는 꿈을 꾼 겁니다. 현실에서 프로이트도 분석하면서 시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심하게 받으니까 같이 휴가 가는 것을 반대했었죠. 그런데 왜 시어머니와 같이 휴가를 가는 꿈을 꾼 것일까요?


부인은 히스테리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프로이트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죠. 그리고 어느 날 분석을 진행하다가 프로이트는 그 부인에게 꿈은 소원성취라는 것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곧바로 이 꿈을 꾼 겁니다. 휴가만이라도 시어머니와 좀 떨어지고자 했는데 꿈에서 정반대로 나타난 거죠. 그럼 이 꿈이 왜 등장했느냐?


그 부인은 한때 남편을 증오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 기억이 의식이 되지 않았죠. 분석을 통해서 발견한 것이고요. 그런데 그 부인의 의식에서는 자신을 남편을 사랑하기만 한 좋은 아내이길 소망한 겁니다. 곧 프로이트가 틀렸기를 바라는 것이었죠. 그 소망은 꿈에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악몽이란 현실에서 경험하게 될 불안 사건을 사전 경험해서 현실을 준비하게 하는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악몽을 꾸고 시간이 좀 지나게 되면 기분이 좀 괜찮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기도 하죠. 순기능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또 우리의 정신작용이 더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영화 내용으로 봅시다. 데이빗은 회사의 상속자지만 그 회사를 지키기 위해서 늘 긴장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악몽은 그 현실의 불안을 견디려는 방법으로 선택이 된 겁니다. 자아의 필요에 의해서 꾸게 된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다소 불편해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바로 가위눌림입니다. 우리 초자아는 결코 잠드는 법이 없어서 잠을 잘 때도 슬며시 자아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꿈에서 드러나는 욕망을 검열하기 위해섭니다. 그리고 그 드러나는 욕망이 너무 강렬할 때 초자아는 즉각적으로 자아를 처벌해버립니다. 수면 마비가 그래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갑자기 쓰러져서 잠이 드는 기면증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탈력발작과 같은 내용들이 등장하죠. 이것이 가위눌림과 같은 방식으로 등장할 수 있습니다. 의식 상태에서 공상에 빠져있을 때 드러나는 무의식 욕망을 초자아가 즉각적으로 처벌해 버리는 겁니다. 수면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이러한 정신작용이 멈춰질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꿈속에서 드러나는 욕망의 문제를 의식적인 지식으로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이 꿈을 받아들이는 태도 중 하나는 자신의 미래와 연결짓는 것이 있습니다. 예지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일반 꿈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는 훨씬 교묘한 방식으로 꿈이 위장되어 있다고 그럽니다. 덩달아서 내담자의 자아 역시도 확장이 되어 있다는 것이고요.


정신분석은 예지몽이나 조금 특별하게 여겨지는 개인의 정신적 경험들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분석이 신비주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경험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