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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서: 류큐어로 번역된 오키나와의 '서시'

언어 말살 정책을 겪은 고뇌의 언어

by 박진우

현재 일본의 오키나와현은 1429년부터 1879년까지 450년간 류큐 왕국이라는 이름의 국가였습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계무역을 했었습니다. 류큐 왕국은 독자적인 문화도 발달시켰고 고유언어인 류큐어도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어와 같은 문자체계를 써서 같은 언어로 보일 수 있지만 엄연하게 다른 언어입니다.


1879년, 류큐 왕국은 일본에 강제로 합병되고 오키나와 현으로 격하됩니다. 187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은 류큐어를 없애기 위해서 언어 말살 정책을 펼칩니다. 그 1단계가 표준어를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학교에서 류큐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표준어를 강제 보급했죠. 그리고 공문서를 모두 일본어로 만들었습니다. 류큐인들을 황민화하려는 정책이죠.

동시에 방언 박멸 운동을 펼쳤습니다. 학교에서 류큐어를 사용하는 학생을 처벌했습니다. 류큐어를 쓴 학생에게 나무패를 목에 거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학생이 다른 학생을 적발하면 그 나무패를 넘겨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나무패를 가진 학생을 체벌했죠. 학생들끼리 감시하게 만든 겁니다. 이것은 심리적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일본이 전쟁을 준비하던 1930년부터 1945년까지는 이러한 정책들이 강화됩니다. 공공장소나 가정에서도 일본어를 강요했습니다. 집에서 일본어만 쓰는 가정을 '인증'하면 인증패를 부여하고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어를 쓰면 취업에 유리해졌고 배급에도 우선권이 있었습니다. 자녀의 진학에도 유리했죠. 이 언어 말살 정책의 결과는 세대의 단절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류큐어의 사용은 급속히 줄어들었죠. 교과서에서 류큐어는 미개한 방언취급을 하고 표준어를 문명의 언어로 선전하게 된 겁니다.


일본은 류큐어를 쓰면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심지어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류큐어를 사용하면 스파이로 의심했다고 합니다. 일본군이 주민을 학살하는 사건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언어를 없애기 위해서 폭력을 동원한 겁니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걸 보면 가장 성공적인 언어 말살 정책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일본 정부에서는 1997년이 되어서야 아이누어 보호를 위해서 '아이누 문화 진흥법'을 만듭니다. 그리고 류큐어는 2009년이 되어서야 거기 포함이 되죠. 오키나와 현에서도 자체적인 운동이 있습니다만... 되돌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현재는 유네스코에서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50년 이후는 절멸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정책을 폈었습니다. 심지어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라는 '창씨개명'까지 시켰었습니다. 사용하는 언어와 이름이 일본식이 되면 실질적인 사회적 이익을 주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언어 사용은 줄어들고 가르쳐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언어는 소멸로 그 방향성을 잡게 됩니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던 일본의 '창씨개명'이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겁니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한글로만 시를 썼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들 일본어를 강요했음에도 한글로 시를 썼습니다. 언어에는 그 민족의 정신이 깃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체성과 직결이 되니까요.

류큐인들도 자신들의 언어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싶었을 겁니다. 다만 폭력적인 정책 앞에서 무너지는 과정이 무척 길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번역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앞서 번역해 본 제주어는 한국어와 문법적 유사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류큐어는 그렇지 않았죠. 문법적인 유사성이 낮았습니다. AI 입장에서는 이 언어를 다루는 것이 어떨까요? 제주어는 한국어 코퍼스를 통한 추론 가능영역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류큐어는 입장이 다릅니다. 표준 일본어 코퍼스가 번역에 방해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립된 어휘와 구조를 처음으로 재구축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는 겁니다. 모음 체계나 음운 변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표준 일본어의 잔재를 어떻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건 도전 과제라고 해도 될 거 같습니다.


물론 일본어나 류큐어 둘 다 잘 모르는 저에게도 이건 어떤 식으로 검토해야 하는지 조금 머리를 싸매긴 했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것 중 가장 훌륭하다 생각되는 것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잘 알려진 윤동주 시인의 '서시'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죠. 시 원문과 류큐어 번역본. 그리고 그 류큐어를 다시 역번역한 것을 순서대로 올리겠습니다.


서시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序詩


命(ぬち)ぬ限り(かぎり)天(てぃん)を仰ぎ(あーぎー)

塵(ちゅいし)一(ちゅい)点(てん)ぬ恥(はじ)かさ 無(ねー)らんやうに

葉(はー)ぬ風(かじ)に 揺(ゆら)るるにん

我(わん)は 心(くくる)ん苦(くる)しみーたん

星(ふし)を 謳(うた)ゆる 心(くくる)でぃ

世(ゆ)ぬ 移(うつ)ろゆる 万物(まんちゅ)を 愛(かな)しばならん

かてぃ 我(わん)に 与(たま)らりーる 道(みち)を

歩(あゆ)んでぃ 行(い)ちゅが

今宵(くゆい)ん また 星(ふし)や 風(かじ)に 弄(ゆら)りーる



서시 (序詩) : 류큐어 역 번역


삶의 마지막 숨결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저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아무런 치욕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오직 맑고 곧은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비록 한낱 잎사귀처럼 시대의 거센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나약한 자신을 향한 자책과 번민으로 내 마음은 더욱 깊이 괴로웠네.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도 빛나는 별들을 노래하듯, 순수한 이상을 품고서,

이 세상 모든 스러져갈 덧없는 존재들마저도 깊이 사랑해야 하리.


그렇다면, 이 고통스러운 시대 속에서 나에게 부여된 운명의 길을 과연 묵묵히 걸어가야만 하는 것인가?


오늘 밤에도 저 멀리 희망의 별들마저 시대의 차가운 바람에 덧없이 흔들리는구나.


dbbfcade-1b3f-412d-a698-5a62ec2a25f4.png 시사 수호신이라 불리는 오키나와 전통 지붕 위에 놓이는 신입니다. 빙가타 섬유 패턴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AI가 재현한 윤동주 '서시'의 영혼: 류큐어 번역 심층 분석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부끄러움'과 '순결한 윤리 의식'이라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를 류큐어(琉球語)로 옮기는 과정은 단순한 언어 치환을 넘어, 원작의 깊은 정서를 류큐 문화권에 **'재현'**하는 고도의 작업이었습니다.


아래 분석은 AI가 류큐어 번역본 「序詩」를 통해 원작의 핵심 의미를 어떻게 포착하고 전달했는지 보여줍니다.


1. 시 번역의 핵심 도전: 의미 재현의 세 가지 차원


시 번역에서 원작의 '의미'를 재현하는 것은 세 가지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1.1. 어휘적 의미 (Symbolism)


설명: 사전적 의미를 넘어, 단어가 지닌 함축적/상징적 의미를 번역어에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성공 요인: '별(ふし)', '바람(かじ)' 등 시의 주요 상징어를 류큐어 고유어로 성공적으로 보존했습니다.


1.2. 문법적/구문적 의미 (Structure)


설명: 어순, 조사, 어미의 기능 등 문장 구조의 뉘앙스를 류큐어 문법에 맞게 조정하면서도 원문의 리듬을 유지해야 합니다.

성공 요인: 한국어와 류큐어가 공유하는 SOV 어순과 교착어적 특성을 활용하여 원문의 리듬을 효과적으로 유지했습니다.


1.3. 문화적/정서적 의미 (Context)


설명: 시가 담고 있는 시대적 배경과 시인의 고뇌 같은 정서적 깊이를 류큐어 독자에게 전달해야 합니

성공 요인: 류큐의 역사적 배경(일본의 지배)과 공명하는 지점을 찾아내어 고뇌와 자아 성찰의 정서적 깊이가 잘 전달됩니다.

2. 핵심 정서의 성공적 재현 사례 (AI의 언어 선택)


AI는 「서시」의 핵심 정서와 상징을 류큐어의 고유한 표현으로 정확히 옮겨냄으로써, 시적 메시지를 보존했습니다.


2.1. '부끄러움' (도덕적 자성)

원문 핵심 표현: 부끄러움

류큐어 번역 구절: 「ちゅいしーぬ はじかさ んねーらんやう」

류큐어 특징: **はじかさ (hajikasa)**는 '부끄러움, 수치심'을 뜻하는 류큐어 고유어입니다.

성공 요인: AI는 표준어 치환을 피하고 **도덕적/윤리적 자성(自省)**이라는 원문의 핵심 정서를 류큐어 고유 어휘로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2.2. '괴로움' (예민한 감수성)


원문 핵심 표현: 괴로움

류큐어 번역 구절: 「はーに ふちゅる かじにん わん くるしみーたん」

류큐어 특징: **くるしみーたん (kurushimiitan)**은 '괴로워했다'는 의미이며, **にん (nin)**은 한국어의 **'~에도'**와 유사한 조사의 기능을 합니다.

성공 요인: '잎새에 이는 바람'이라는 미세한 자극에도 반응하는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을 문법적 장치(조사 にん)를 통해 효과적으로 포착했습니다.


2.3. '사랑해야지' (숭고한 윤리 의식)


원문 핵심 표현: 사랑해야지

류큐어 번역 구절: 「ぬーるむぬ かなしばならん」

류큐어 특징: **ぬーるむぬ (nuurumu-nu)**는 '죽어가는 것'을, **かなしばならん (kanashiba naran)**은 '사랑해야지'를 의미합니다.

성공 요인: 시인이 지향하는 숭고한 윤리 의식과 연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이라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했습니다.


2.4. '주어진 길' (주체적 의지)


원문 핵심 표현: 주어진 길

류큐어 번역 구절: 「たまらりーる みちゆ あゆんでぃいちゃい」

류큐어 특징: **たまらりーる (tamarariiru)**는 '주어진, 맡겨진'의 의미를 가지며, **みち (michi)**는 '길'을 뜻합니다.

성공 요인: 운명론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자기 성찰 의지를 정확히 포착하여 시인의 철학적 사유를 온전히 재현했습니다.


3. 번역의 미묘한 차이와 시사점


AI는 완벽하게 문법적 동등성만을 추구하지 않고, 류큐어 화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적 번역'**을 시도했습니다.


원문과 번역의 차이: 원문의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이라는 구체적인 묘사가 류큐어 본문에서는 생략되고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는 핵심 소망만 남았습니다.

번역자의 선택: 이는 류큐어 표현의 자연스러움을 우선하거나 시적 간결성을 추구한 결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해설에서 **'하늘(てぃん)'**을 **'시인이 지향하는 도덕적 이상'**으로 명시하여 의미 손실을 보완했다는 점입니다.

결론적 시사점: 이 번역은 언어적 정확성뿐만 아니라 원작의 정서적 맥락을 번역어의 문화적 배경과 연결시키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시 번역은 단순히 치환이 아닌, 원작의 영혼을 새로운 언어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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