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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May 13. 2017

플래시 댄스

승화로 향하는 길

 잘 만든 영화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다. 이 영화 플래시 댄스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ost 역시도 일품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멜로디도 자주 들린다.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다가도 들리는 음악이 있다. 1983년 작인 영화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단순하게 좋은 영화라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이 영화의 주제가를 잘 들어보아야 하는데, 가사는 우리의 느낌의 중요성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느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것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에 대한 반대 작용 역시 상정할 수 있다.      

 

알렉스

 주인공 알렉스는 이제 갓 18살의 앳된 아가씨다. 낮에는 용접공으로 밤에는 클럽의 댄서로 춤을 추며 생계를 이어간다. 뭇 남성들이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집적대기도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솔직히 성충동에 시달리는 것을 고해하는 장면도 있다. 신부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그 충동을 해소한다.      

 

 리비도 문제는 우리의 삶을 수시로 괴롭힐 수 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방식이 결정이 된다. 첫 번째는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방식인 <승화>이다. 이 것은 자신의 리비도를 어떤 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권할 만 하지만 시기에 따라 적용 범주가 달라진다. 두 번째는 진정의 용도다. 즉, 리비도 문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자위행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잉될 때, 엉뚱한 방향으로 빠져들 수 있다. 세 번째로는 격하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즉, 리비도 문제가 생기면 아무나 잡고 즉석에서 해결해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신체적 쾌감만 만족시키기에 그만한 정신적 갈증을 동반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볼 때, 승화론자들은 지나친 금욕으로 향하면서 신경증에 빠질 수 있다. 진정만을 요구할 때는 신경쇠약에 시달릴 수 있으며, 프리섹스 주의자들은 정신병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환상의 문제를 현실로 끌고 들어와 버리기 때문이다.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해낸 샤워댄스

 여기서 알렉스는 첫 번째를 선택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정신적 만족감을 담보해 주는 것이 아니다. 이 선택은 심리적인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것 아닐까? 만약 그녀가 두 번째 방식으로 신경쇠약에 빠져버린다면 승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두 번째 선택을 지속적으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쇠약에 빠지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때, 그 사람은 신경쇠약에 대한 자체 방어구조가 있다는 말이다. 정신노동은 신경쇠약의 아주 훌륭한 방어수단이다.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노출 충동의 승화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그녀는 멋진 연애 상대도 발견한다. 다니는 회사의 사장인 닉과 사랑을 키워가게 된다. 그녀에게는 인생의 멘토도 있다. 한나 아줌마다. 발레리나 였던 그녀는 알렉스의 꿈을 언제나 지지해주며,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는 사람이다. 덕분에 알렉스는 희망을 가지고 자기 꿈을 키워갈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조건들에서 반대 작용을 하는 존재가 있다면, 현실에 머물도록 유혹하는 존재의 힘이 강력하다면, 그녀의 삶에서 승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혹의 문제는 언제나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리비도의 방향은 승화 역시 전제할 수 있지만 격하 역시 이루어질 수 있다. 인간욕망의 문제는 행동의 선택을 통해서 그 방향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닉과 알렉스

 현실은 냉정했다. 들어가고 싶은 댄스 스쿨에서는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이 있었다. 교육받은 경력도 없는 가난한 댄서인 알렉스는 그 분위기에 위축되어 버린다.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열정뿐이었다. 이 점이 중요한데,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열정이 가득한데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기회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합법적인 준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의 문제와 맞물려서 돌아가게 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한 상황은 우리의 현실에서 곧잘 일어나지 않는가?      

 

 서류에 적어야 할 내용이 없다는 것은 그녀를 좌절에 빠뜨릴 수 있었다. 클럽에서는 그녀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지만 예술의 위치로 격상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곤란한 유혹이 그녀에게 주어질 수 있다. 옷을 벗는 무용수의 일은 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거절한다. 그런 댄스가 짧은 시간 돈을 벌 수 있게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가치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 열정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에 스스로를 던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니퍼 빌즈

 여기서 우리는 아우라라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 중간중간 나타나는 그녀의 댄스에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환호하게 되는 마력이 있는데, 그것에 따라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치가 단순히 성적 가치로만 치환된다면 승화의 의미는 사라져 버릴 수 있다. 그때, 그 가치의 방향은 한 군데로 밖에 진행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실제 영화의 이야기를 좀 덧붙일 수 있을 것이데, 이 영화로 인해서 알렉스 역할을 맡은 제니퍼 빌즈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댄스 장면이 대역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인기가 급속도로 저하되고 이후의 작품에서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은 아우라의 문제와도 관련이 지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예술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사람들의 몸동작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행동 차원에서 재규정될 수 있다. 동작이란 결과가 없는 움직임에 불과하지만 행동이란 그 결과로 등장하는 현실의 변화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제가의 후렴구 가사의 번역을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엄청난 느낌이에요.
 그런 느낌이 실재한다는 게 믿겨져요.
 그 모든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이제 춤추고 있어요. 삶에 대한 열정으로
 당신의 그 열정을 써 봐요
 그리고 이뤄지게 만들어요
 장면들이 생기를 띠게 되죠
 당신은 춤출 수 있어요. 삶을 제대로 꿰뚫는 춤을      


 아무것도 아닌 장면들이 살아 움직이게 된다는 노래의 메시지가 노리는 것은 이것이다. 행동하게 만들어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열정을 대변해주지 않을까? 만약 우리의 움직임이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동작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즉, 강박행동과도 같은 방식이 된다. 영화는 그런 좀비스러운 움직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무엇이 살아있는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것이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만드는 승화의 방향성을 지시하는 내용 아닐까?     


 우리는 승화의 공식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는데, 오디션을 보러 가기 전 알렉스는 순수하게 자기 능력으로 오디션을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척 기뻐한다. 그러나 닉의 말실수는 기회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렉스가 알아차리게끔 만들었다. 자존심이 상한 알렉스는 오디션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며 크게 싸운다. 그때, 닉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그녀에게 던진다.     


 꿈을 버리면 죽는다는 걸 왜 모르니?     

 여기서 꿈이란 무엇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목표로 한 것을 준비하며 시간을 투자해온 것을 두고 우리는 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알렉스는 현대무용의 가능성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18년의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이 가장 가치로운 <꿈>의 의미가 될 것이다. 그것이 춤이다. 그것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자살과도 같은 선택이라는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즉, 조금 더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강박증자들이 자주 되뇌이는 내용과 비슷하다.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처음>으로 자꾸만 되돌아 가려는 움직임이지 않은가?


 우리가 사랑에 빠지게 되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사건이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대상에게 투자하는 리비도가 많기 때문에 승화를 이끌 겨를이 없다. 그만큼 강렬한 사랑이 담보하는 에너지가 많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잠시의 헤어짐은 의외의 성과를 이끌어내게끔 만드는데 대상에게 투자하던 에너지가 다시 자기 자신에게 투자되는 것이다. 이때, 리비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과제에 놓이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승화와, 진정, 격하의 세 가지 움직임을 선택할 수 있다. 보통 일시적인 안정을 위해서 진정이나 격하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격하를 선택할 때는 상대의 가치를 저하시켜야 할 때일 것이다.


 이별과 동시에 알렉스는 자신의 정신적 멘토였던 한나의 사망 소식을 늦게 듣게 된다. 이 사건은 알렉스에게는 커다란 슬픔이었다. 그러나 한나의 말을 실현시키기 위한 명분을 얻게 된다. 그 것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어 주었다. 궁극적으로 한나의 사망소식은 알렉스의 리비도의 방향을 승화로 이끌게 만든다.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를 잡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다.     


 알렉스는 오디션에서 환상적이고 창조적인 댄스를 보여준다. 곡 제목이 What a feeling이라는 것은 운명과도 같은 제목 아닌가? 그녀는 순간에 에너지를 모두 승화시킨다. 우리는 이 것을 손쉽게 용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머물러 있던 노출 충동이  승화되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녀는 자기 춤의 격을 높이는 것이다. 노출 충동 자체는 행동에 종속되지 않는다. 다만 동작의 차원에서 주체를 이끌 수 있다.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이 승화될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는 영화의 앞부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닉과 헤어지고 실의에 빠진 알렉스가 클럽 댄서를 그만두고자 할 때, 나이 많은 댄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에는 춤이 좋았고 여러 무대를 위해 준비한 화려한 의상에 만족했다. 그녀는 여기서 만족했다. 그녀의 노출 충동은 그 수준의 승화에서 멈춘 것이다. 격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회를 찾아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가로막히게 되면 기회는 쉽게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준비한 만큼 주어지는 것이 기회이기 때문이다.      

오디션 장면. 여기서 What a feeling에 맞춰서 댄스를 선보인다.

 만약 알렉스가 클럽에서 자기 춤을 출 기회조차 없었다면 춤을 승격시킬 기회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생계문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회의 문제는 꽤 중요하다. 쉽게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잡고 못 잡고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자기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놓아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지 않는가? 이 것을 죽음 충동과 어설프게 연결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격>을 문제 삼을 것이다. 자신이 그럴 자격이 없기 때문에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면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것을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오해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녀의 리비도 승화 문제를 단순히 남자를 잘 만나서 기회를 얻어서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 실력을 쌓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진실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더욱 우세하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에 대한 악플의 문제가 이런 오해와 맞닿아 있는 것 아닌가? 심지어 정치인들의 자녀가 부당한 혜택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도 이러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연예인들의 활동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출 충동이 승화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이 승격되는 과정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그녀의 욕망이 어떻게 승격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시간과 기회의 문제를 새롭게 재조명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 합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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