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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혜 Mar 14. 2021

분노가 나를 덮쳐올 때

나는 쓴다.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대학원을 다녔던 나에게 글쓰기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이 곧 성공하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들어왔으니까. 학술지 논문, 학회 발표, policy brief 등 스펙의 핵심은 결국엔 글쓰기였다. 교수직이든 연구직이든 학문적 글로써 내 능력과 연구를 보여줘야 했고 그게 정말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강의나 발표 능력이 뛰어난지 않더라도 훌륭한 논문만 쓸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우 중요했고 그걸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고 멋있어 보이고 동시에 나는 소질이 없다는 생각에 답답하고 힘들어했다. 좀 더 광범위하게 생각했을 때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그저 멋있어 보이지만 내가 잘하는 일은 아니고 지겹고 힘든 일이라 생각해서 나도 모르게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의무적인 일기, 학교 과제, 논문을 제외하고 자발적으로 글을 써보기 시작했던 것은 몇 년 전부터 가끔 마음이 너무 답답하거나 억울하거나 우울할 때 메모장을 열어서 내 마음과 감정들을 적기 시작한 때였다. 진짜 털어놓을 곳도 없고 털어놓기가 창피하거나 껄끄럽거나한 이유로 마음이 너무나 힘들 때 메모장을 켜게 되었다. 쓰고 나서 파일을 저장할 때 혹여나 누가 볼까 클릭할 생각이 안 드는 파일명으로 저장하곤 했다. 완전한 해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던 거 같다. 너무 힘들어서 뭐라도 해야겠는데 붙잡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썼던 거 같다. 그러다 천천히 글 쓰는 빈도가 늘어나고 점점 분노와 화를 분출하고 해소하는 수단이 되었는데 약 3-4년 정도에 걸쳐 진행된 것 같다. 과거에 억울했던 너무나 서러웠던 기억들이 아주 빽빽하고 무겁게 내 마음에 분노로 싸여왔던 걸 그 쯤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더 어렸을 때는 화가 마음속에 쌓이고 풀어줄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었다. 분노 해소용 글쓰기는 글을 갈긴다는 표현이 더 맞지 싶다. 문법과 논리에서 완전히 자유롭고 속어와 욕들이 매우 많고 철저히 내 입장이 어땠는지 내가 얼마나 열이 받았었는지 억울했는지와 더불어 상대에 대한 원색적이고도 논리적이기도 한 비난을 쏟아부었다. 대학원에서 글쓰기와 토론으로 논리적 주장이 훈련이 되어있어서 감정적일 때도 내가 논리적으로 비난 비판하는 것을 알아차리곤 한다. 눈물이 나온 적이 많았고 쓰다가 멈추고 휴지가 한 움큼 가져와서 엉엉 울기도 하고 그러면 또 무언가 해소된 기분이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괴롭고 서러웠는데 이젠 그 기억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게 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혼자서 나의 감정 특히 화 분노 억울함을 풀어내고 해소하는 방법들을 익혀왔던 것 같다. 종종 유튜브에서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분들도 보게 되고 내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애용할 방법이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다. 분노 일기, 욕받이 노트, 감정의 쓰레기통. 이 세 가지 명칭을 보면 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불쑥 찾아와서 나를 죽도록 괴롭히거나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내가 발견한 방법이고 그 외에도 다른 분노 해소 방법들이 있을 수 있고 어디까지나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경험들과 규칙들을 적어본다.


Photo by Thought Catalog on Unsplash


1. 분노 해소를 위한 글 쓰는 공간에서 도덕적 잣대나 기준은 필요하지 않다.

초반에 몇 달간의 간격을 두고 썼던 글들을 읽어보면 감정표현은 했지만 도덕과 양심 때문에 막 휘갈기지 못하고 나름 감정을 절제하면서 눌러 담은 글들이다. 익명으로 라면 사실 누가 읽어도 크게 상관없는 수준인 절제도 있고 논리와 양심도 있는 그런 글. 그러다 조금씩 더 과감하고 솔직하게.. 일단 다 쏟아내 보자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점차 글의 성격이 변해왔다. 특정 대상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 욕설, 원망을 키보드로 빠르게 토해냈다. 노트북 키보드를 막 두드리다가 눈물이 울컥울컥 올라와서 멈추고 휴지를 많이 가져와서 엉엉 울었다. 미웠고 원망스러웠고 내가 불쌍하고 또 외로웠다. 정말 오롯이 분노와 상처 해소 용도로 변해오면서 글을 쓰던 도중 울었던 적이 울지 않았던 경우보다 훨씬 많다. 막 화나고 억울해서 쓰다 보면 이렇게 심한 말을 써도 되나 하는 생각들도 툭툭 올라오지만 나는 그냥 그 작고 힘이 약한 생각들을 지나쳐서 계속해서 훨씬 힘이 센 이미 중심에 자리 잡은 분노들을 글로 뱉어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만 써지게 되고 대부분 혹은 최소 절반 이상의 그 묵혀진 감정들이 해소가 된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분노 해소 글쓰기 순간만큼은 그 공간에서는 도덕 양심 품위 예의들을 모두 선 바깥으로 밀어버리고 어디까지 얼마나 내가 분노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쌓여있나 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 쓴다. 찰나로 양심의 가책과 같은 유사한 감정들이 여전히 올라오지만 whatever 하고 글을 다 쓴 뒤엔 지워버리거나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바로 없애고 싶은 마음 그리고 누구도 그 글을 읽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오롯이 내가 느끼는 분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속에서 꺼내는 데에 이 규칙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  


2. 어떻게든 써도 된다.

문법, 맞춤법, 문장 완성, 논리, 글의 길이 등 일반적 글쓰기에 요구되는 기준들 모두 무시하고 써되 된다. 내 감정만 표현되면 된다. 휘갈기든 문장 완성이 안되든 슬펐다가 기뻤다고 다시 슬프든 뭐든 상관없다. 노트북으로 써도 되고 스마트폰으로 써도 되고 일기장에 써도 되고 이면지에 써도 된다.


3. 울음이 터져 나오면 엉엉 울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그 감정을 그 순간만이라도 자발적으로 느껴본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조금 익숙해지면 그 괴로운 우는 과정도 그래 나는 지금 해소하고 있는 거야 라고 점차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감정 해소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해가 쉽게 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감정 때문에 너무 힘들어 근데 나는 지금 해소의 과정이야" 이러한 대립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의 양립이 가능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해소의 과정이 즐겁고 신나고 엄청 쉬워지지는 않는다. 고통과 괴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그 순간에 마음을 다해 임해야만 한다. 상반되는 감정들 그리고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느끼는 것 이건 정말 나에게 어마어마한 주제이기에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써볼 예정이다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왜 해야 하는지.


4. 분노 해소 글쓰기를 위해 혼자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쓰고 나면 개운할 수도 매우 피곤할 수도 또는 여전히 괴롭지만 쓰기 전보다는 좀 나아진 기분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그랬다. 그 감정의 강도에 따라 혹은 상처의 크기에 비례해서 피로도나 개운한 정도가 달랐다. 자신의 집이든 방이든 오피스든 호텔이든 혼자서 일정 시간 방해받지 않고 조용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얼마 전 정말 심한 분노가 올라와서 어쩌지 어쩌지 하고 방안을 불안하게 걸어 다니다가 내 침대에 뭉쳐져 있던 이불 더미 위에 털썩하고 누웠다. 노트북을 킬 여유조차 없어서 아주 가끔만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노트 앱을 켜고 미친 듯이 글을 (대부분 욕을) 화면에 두드렸던 적이 있다. 너무너무 화가 났고 한 25줄 정도 썼을 때 화나서 움직이던 두 엄지손가락이 멈춰졌다. 해소됨을 느꼈다 근데 너무너무 지치고 피곤해져서 불도 안 끄고 잠들어버렸다. 아 너무 지친다 좀 뻥 뚫린 기분이긴 한데 뭐가 쑥 빠져나가서 너무 지쳐버린 느낌이었다. 또 다른 경우에는 글을 쓰고 잠시 뒤 다른 일들을 바로 이어서 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적도 있었다. 그 당시 내가 느끼는 감정의 강도에 따라 소모되는 에너지가 달라지는 것 같다.   


5. 분노의 글들을 저장하거나 기록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필요가 없다는 말은 이래도 저래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과 선호는 즉시 없애는 것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상관이 없거나 보관하는 것을 선호할 수 도 있다. 처음에는 그 글들을 지우지 않았었는데 왠지 글을 쓸 때마다 아주 안 좋은 곳으로 가서 글을 쓰는 기분이었다. 분노로만 가득 찬 글들을 지우면 조금은 낫겠다 싶어 지워보니 그 느낌이 더 좋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 나름 차분하게 쓰게 된 들은 지우지 않는다. 바로 글을 없애는 것은 누가 내 글을 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덜어주는 것도 있다. 내 분노 해소 글을 누구도 읽기를 원치 않는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고 나를 위한 행위이다.


6. 말 그대로 해소이다 더 고통스러워지거나 자책하거나 복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내가 분노를 느끼는 상대라고 해서 내가 그 공간 안에서 심한 말을 했다고 해서 특정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 끊어버리거나 그 사람들을 항상 증오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게 그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내 감정, 과거에 풀지 못해 쌓여있던 감정들을 오롯이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표출하는 작업니다. 오직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덜 불안해지고 더 평온해지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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