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성공의 기회비용
가십퀸.
미국에서 험담과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을 불리는 용어. 성차별적 용어지만 실제로 여자인 경우가 더 많다. 가십킹은 들어본 적이 없다. 어느 조직이건 가십퀸이거나 토커(talker)는 존재한다. 토커는 가십을 포함해 자신의 모든 이야기 생각 비판 등을 사람들을 붙잡고 털어놓은 사람을 의미하고 토커는 남자 여자 둘 다 많다. 두 유형 모두 좀 힘들다. 나는 그들에게 잡히면 처음의 밝았던 표정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변하면서 조금씩 뒤로 몸을 뺀다. 그들이 내 바디랭귀지를 부디 읽어주길 바라면서.
나도 때때로 동료들과 가십을 나누고 웃고 칫챗을 한다. 답답한 게 해소가 되기도 하고 Sassy 한 코멘트들이 너무 웃기기도 한다. 그런 일반적인 정도를 떠나서 항상 누군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 학생으로 지낼 때, 친구들을 사귈 때,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할 때, 직장 생활을 할 때 가끔 또는 종종 그런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가장 신기한 부분은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이야기 하면서 분위기가 싸해지거나 듣는 사람이 무표정이 돼 가는 걸 모르는 게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사회적 동물로써 어떻게 그걸 모르고 그냥 계속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느껴도 멈추기 싫은 걸까? 멈추기 힘든 걸까?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싶다. "주로 남의 비판을 많이 하시나 봐요" 또는 "그런데 혹시 본인만 계속 20분째 이야기하고 있는 거 눈치 못 챘어요? 다른 사람도 이야기하고 싶은데 끼어들 틈을 안 주시는데 몰라서 그러시는 건가요? 항상 궁금했어요."
남의 비판을 즐기는 사람은 실제로 그렇게 질문을 받는 다면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끄럽기 때문에 본인의 자존감이 높지 않기 때문에 당황해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부인하거나 "네가 더 많아요"라는 식의 논리 없는 싸움을 시작할 것 같다.
책임감을 느끼면서 진중하게 시간과 노력을 써서 준비한 프로젝트, 강의, 워크숍 등에 너무나도 쉽게 날카로운 화살을 던지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당황스럽고 화나고 밉고 억울하고 그들이 싫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비판 위주에 의견들을 들을 때는. 그들이 모르는 것 그들의 논리적 결함, 나의 논리 등에 대해 하나하나 반격하고 싶다 정말. 하지만 웬만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을 약간 무시할 때도 있고 갈등을 피하고 싶기도 하고 내가 설명해 봤자 방어적으로 단순히 토론을 이기려고만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토론은 하는 것 자체가 싫다 너무도 스트레스이다. 그냥 그 고통을 겪고 겪어낸다. 성숙하게 비판점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사하다. 정말 도움이 되는 비판 의견은 직장생활에서 동료가 동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고마운 일들 중 하나이다.
남 비판을 많이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무언가를 스스로 창조하고 용기를 내어 도전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 도전이 없기 때문에 딱히 큰 실패도 없다. 물론 성공은 더더욱 없고. 무언가를 비판하는 것은 재미있다 왜냐면 비판한다는 것은 자신은 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들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실이다. 또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공감을 요구해서 같은 편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비판과 비난을 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쉽다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보다도 훨씬 쉽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 또는 약점이라고 사회에서 규정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고 도전하는 일은 비난하는 일에 비해 백 배 이상 어렵다. 머리를 쓰고 공부를 하고 연습 및 훈련을 하고 계획을 하고 시뮬레이션과 시나리오를 돌려보고 오류가 없는지 여러 차례 리뷰하고 그렇게 해도 긴장이 되는 것이 본인의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Brene Brown이 공유했던 미국 전 대통령 루스벨트의 말
중요한 것은 비평가들의 의견 또는 군중 속에 있는 사람들의 비난과 야유가 아니다. 인정과 공은 오직 그 경기장에서 땀 흘리면서 몸에 흙먼지를 묻힌 채로 테니스 채를 휘두르는 그 사람에게 주어진다. 실패하고 실패하여도 결국 경기장에 나타나서 또 도전하는 그 사람. 시도가 있기 때문에 힘든 실패도 경험할 수 있는 사람. 성공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맛보고 실패할 때 가장 뼈아픈 아픔도 느끼는 사람. 하지만 그 사람은 실패의 가능성에 기꺼이 자기 자신을 내보낸다. 모든 인정과 공은 그 사람에게 귀속된다.
이 말은 처음에도 위로가 많이 되었지만 강의와 워크숍을 하면서 좋지 않은 피드백들을 보게 될 때, 날카로운 큰 가시가 나의 몸을 이미 찔러버렸을 때 더더욱 위로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일이 실패였어도 나는 그것을 했고 해냈다. 내가 생각해도 아쉬운 부분도 있고 후회되는 부분도 있지만 나는 했다. 나는 실패와 비난이 싫고 두렵지만 기꺼이 경기장에 또 또 또 나갈 것이다. 최고의 기쁨과 최악의 상처 모두를 경험할 것이다. 내가 비난에 초연한 사람이기를 바라왔고 그렇게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안되고 있다. 일단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경험에 들어있는 기쁨과 아픔을 모두 온전히 느끼는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