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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12장 | 독서기록#12

발췌와 단상

by 수현

# 발췌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 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 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 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p.264>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 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p.265>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 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p.272>



# 단상


인생의 고통은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처럼 끝난다. 어느 날 갑자기 원래 모든 것이 괜찮았던 것처럼 햇살이 든다. 깊은 심연 중에 있는 줄 알았던 스스로가 햇빛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은 아름답다. 그 가벼운 마음과 시원한 저녁 공기가 지금-여기를 충만함으로 채워준다. 그를 어둠의 터널에서 끄집어 내준 건, 다름 아닌 새로운 사랑이었다. 드리스콜에게 무심결에 뱉은 “별 일 아닙니다.” 의 말에 진짜 모든 것이 별 일이 아닌 게 돼버리는 마법 같은 일. 인간이 다른 인간과 어떤 소통을 주고받느냐는 때때로 그것의 실체를 정해버리기도 한다. 나도 슬프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꼭 만나는 친구가 있다. 그녀를 만나고 나면 모든 것이 가볍게 희석되고 유쾌해지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무겁게 안고 있던 문제들이 단숨에 시트콤 에피소드 같아진다. 캐서린 드리스콜과 스토너는 ’ 문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기에 그가 그녀에게 뱉은 언어는 그에게 더욱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스토너가 42살이 되어서야 사랑의 속성을 배우게 됐다는 점이 사랑스럽다. 남들은 젊었을 때 진작 배운 것을 지금에서야 배우게 되었다 해서 결코 늦은 것은 아니다. 그 깨달음은 누구에게는 10대에 오고 누구에게는 80대에도 올 수 있다. 어쨌든 현재를 살고 있는 스토너가 과거와 미래에 함락당하지 않고 지금을 사랑으로 충만히 살게 된 점이 무척 기쁘다. 도덕적 가치판단 기준으로는 가정을 두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스토너를 옳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윤리라는 것은 인간에게 그리 단순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스토너가 좌절의 시기를 지나 새로운 인생의 막을 열게 된 것에 독자로서 기분이 좋았고, 그의 다음 인생의 장이 무척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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