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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준 Sep 08. 2019

조직문화는 성과와 관련이 없는 걸까


어느 날, 한 스타트업 대표는 신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조직문화는 성과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많은 미디어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회사가 즐겁고 신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업무 시간에 탁구나 다트 게임도 하고, 해먹에서 잠도 자고, 시원한 맥주도 마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구성원들이 몰입하고, 그러면 조직 성과가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과가 좋기 때문에 회사가 쓸 돈이 많아 그런 좋은 여건을 제공해줄 수 있는 겁니다. 회사가 돈을못 벌면 그럴 여유도 없어요. 좋은 조직문화를 만든다고 해서 성과가 높아지는 게 아니라,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조직문화를 좋게 만들 수 있는 거지요. 인과관계가 틀렸습니다."
'좋은 조직문화'는 과연 이런 모습일까


이렇게 말씀하시는 일부 대표님들의 심정을 저도 너무 이해합니다. 절박감에 나온 말씀이지요. 하지만 조직문화 - 성과는 좀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조직문화성과와 아무런 관련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무엇에 좋은 조직문화인지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좋은 조직문화가 무조건 즐겁고 신나고 자유로운 분위기라 생각합니다. 인간다운 ‘삶’ 측면의 좋은 문화만을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조직문화가 성과의 원천이 아니라, 성과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좋은 조직문화'는 도대체 무엇에 좋다는 의미입니까? '좋은' 이란 형용사 앞에 생략된 단어는 무엇일까요. 


원래 조직문화는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생각을 명쾌하게 전개하도록, 초창기 조직을 들여다봅시다. 대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홍길동은 창업을 고민합니다. 아내가 수기로 매일 가계부를 작성하는 모습을 보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고민하다 어느 날 작정하고 아내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지만, 이렇게 살다 간 마흔 넘어 치킨집 사장을 하기도 어려울 거라는 말에 겨우 아내를 설득하였습니다. 홍길동은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상품을 기획하고 애플리케이션을 편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일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획자와 UX/UI 디자이너를 물색했습니다. ‘모바일 가계부를 만드는 게 목표다, 각 사용자의 수입 및 지출 빅데이터로 여러 분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금융 상품을 연계할 수 있다, 같이 하자’고 설득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기획자, 디자이너를 설득하고, 그렇게 해서 3명이 공동으로 ABC사를 창업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일할까요? 목표부터 세우겠지요. 그들은 5개월 안에 초기 버전을 만들어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공개하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들은 어떻게 작업할까요? 정해진 기간 안에 애플리케이션을 구현하려 최선을 다합니다. 처음에는 서로 스타일을 탐색합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장단점, 싫어하는 태도와 행동을 파악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자 일하는 합을 맞추어 갑니다.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었던 방식은 지속합니다. 삐걱거리게 만드는 방식은 버립니다. 이렇게 최초의 조직문화가 생깁니다.  그런데 몇 주 일 하다가 서로 불협화음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저녁에 맥주를 마시면서 의식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수정하려 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지만, 서로 잘 맞지 않으니 앞으론 이렇게 해보자”라고요. 


그들 나름으로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형성한 공동 규약이 조직문화입니다. 마치 시스템을 움직이는 운영 체제 같은 느낌도 들지요? 그래서 연구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Geert Hofstede)는 문화를 ‘멘탈 프로그램’, ‘정신 소프트웨어’라고 불렀습니다. 


ABC사의  정신 소프트웨어가 목표 달성에 효율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면, 그들 목표를 신속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 즉 조직문화가 비효율적이라면 - 목표 달성은커녕, 뒷걸음만 칠 터입니다.




둘째, 목표 달성과 실질 성과를 혼동합니다.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기업은 조직문화가 성과와 관련이 있겠죠. 조직문화가 핵심역량이라 하니까. 그러나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직문화가 최악이어도 투자를 엄청나게 잘 받는 회사도 있고, 문화가 좋아도 투자받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XYZ사를 보세요, 그렇게 조직문화가 안좋다고 암암리에 소문이 났는데도 잘 나가잖아요!”


앞서 홍길동이 만든 조직을 생각해 보시지요. 서로 협업하는 효율적인 방식 덕분에, 초기 목표를 1개월이나 앞당겨 불과 4개월 만에 가계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습니다. 조직문화가 목표 달성에 크게 기여한 셈입니다. 


그런데 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많은 투자를 받거나, 커다란 매출로 이어지는 일은 또 다른 차원입니다. [목표 달성 → 실질 성과] 사이에 수많은 외부 요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초기 버전이 허접했지만 바이럴 마케팅처럼 어느 유명 연예인이 자발적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사용해줘서 다운로드 수가 폭증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애플리케이션 완성도는 좋지만 벤처캐피털리스트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해 투자금을 끌어오기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은 [목표 달성 → 실질 성과] 사이의 외부 변수 마저도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우수한 인재가 몰려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회적으로 맺고 있는 다양한 인맥을(재계, 정계, 관계)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쌓아 올린 브랜드, 사회적 신뢰도 많아서 투자자들의 이목을 쉽게 이끌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목표 달성 → 실질 성과] 사이의 외부 변수를 통제하려는 특성 마저도 조직문화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스타트업도 초기부터 조직문화에 신경 써야 합니다. 앞서 살핀대로, 조직문화는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도록 돕는 운영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운(時運)과 같은 외부 요인보다, 상대적으로 통제 가능한 요인입니다. 외부 요인은 일정 부분 하늘에 맡기더라도, 내부 요인인 조직문화는 제대로 관리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목표를 빠르게 달성해 내고,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공격적으로 피칭을 하든, 바이럴 마케팅으로 일반 대중의 이목을 끌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스타트업 대표님들에게 짧게 얘기하곤 합니다. "CEO가 할 일을 단순하게 두 가지로 나누면 내치(內治)와 외치(外治)입니다. 스타트업 대표로서 투자와 같은 외치가 더 신경 쓰이겠지만, 내치가 올바로 서야 외치에 제대로 집중하실 수 있습니다. 내부에서 세운 수행 목표도 제대로 달성 못하는데, 어떻게 피칭에 전념하고 투자자를 만나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정리해보겠습니다. 조직문화는 애당초 목표를 달성하고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형성된 것입니다. 그 일에 우선적으로 효과적일 때 ‘좋은 조직문화’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인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양식일 때 ‘좋은 조직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다음과 같은 프레임워크로 생각해보겠습니다. 



X축은 목표 및 성과 달성에 좋거나 나쁜 조직문화입니다. Y축은 인간다운 삶에 좋거나 나쁜 조직문화입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발적으로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역시도 인간다운 삶입니다. 어려운 책임을 맡고 있지만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자유로이 표출하고, 그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삶도 인간답습니다. 반면 8시간 근무하고 칼퇴할 수 있지만, 상사가 인격 모독을 일삼고 동료끼리 협잡하는 직장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제 각 유형을 살펴보겠습니다. 



선진 문화

제대로 목표를 달성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조성하는 문화입니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서 익히 접하는 글로벌 기업인 구글, 페이스북이 이 유형에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많은 미디어는 이들의 ‘인간다운 삶’만 조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즐겁고 신나고 자유로운 분위기만 집중적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목표 달성에 최적화된 문화를 복호화(decoding) 하지는 않습니다. 그 기업의 여러 부서에서 직접 일해보거나, 오랜 시간 상주하면서 관찰하고 탐구해야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가 탐사 보도를 하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경쟁우위 원천이라 해당 기업이 꺼릴 터입니다. 그래서 이들 기업의 조직문화를 다루는 기사들은 예기치 않게 일반 대중이 ‘좋은 조직문화’를 오해하게 만듭니다. 좋은 문화는 즐겁고 신나고 자유로운 직장만을 떠올리도록 말입니다. 


착취 문화

우리나라 몇몇 기업이 성과를 위해 구성원을 착취하다가, 외부에 밝혀져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사례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쉬는 시간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강제로 야근하게 하며, 영업 매출을 높이기 위해 영업사원을 무자비하게 압박하는 문화입니다. 이들은 극단적으로 목표 달성과 성과 창출에만 ‘좋은 조직문화’입니다. 앞으로 이들 문화의 강도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량 문화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는 좋지만, 목표 달성과 성과 창출에는 좋지 못한 문화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극히 일부 공무원 조직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듯합니다. 처음에 저는 ‘낭만 문화’라고 명명하였습니다만, 조직문화를 함께 학습하고 연구하는 동료들이 ‘한량 문화’가 더 와 닿는다고 제안해줬습니다. 어떤 분들은 ‘띵까띵까 문화’, ‘베짱이 문화’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노답 문화

동료 연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답이 없다, 그래서 노답이다’라는 의미로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업무적으로도 아무런 보람을 느낄 수 없을뿐더러, 인간다운 삶을 살기도 어렵기 때문에 탈출 러시가 벌어질 문화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조직은 어떤 유형에 가깝습니까?  이 장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만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직문화는 무엇보다도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한 정신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덧 1. 본 글은 [조직문화 통찰] 책을 출간하면서, 최종 원고에서는 제외한 내용입니다. 탈고를 거치는 과정에서 무언가 논리가 미흡하다고 느껴져 삭제를 했습니다.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브런치에 올립니다.


덧 2. 착취 문화, 한량 문화, 노답 문화 등 유형별 이름은 저와 함께 조직문화를 탐구했던 '문실지대'(조직문화에 대한 실무적이고 지적인 대화) 선생님들께서 붙여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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