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2 우리 안의 어둠

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by 스튜던트 비

흑표범의 요가가 너무도 혹독했는지, 그날 요가 수련에 참여했던 동물들은 이틀이 넘도록 숙소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평소 체력이 뛰어난 사자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통에 찌든 몸을 간신히 일으킨 그는, 이틀 만에 겨우 어그적거리며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밤이 되자, 사자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야외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걷던 그는, 며칠 전 너구리와 고양이의 싸움이 문득 떠올랐는지 혼잣말을 흘렸다.


"이상한 걸로 싸우긴. 어이가 없네…" 1)


그렇게 어둠 속에서 혼자 산책을 하던 사자는, 산 너머에서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다소 언성이 높아진 듯한 그 목소리에 사자의 귀가 쫑긋 섰다.


"제가 말했잖아요. 심지어 제대로 공부를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저렇게 싸우는 것 보세요."


"이제 막 시작했잖아, 흑표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잖아."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접근하던 사자는 그 대화의 주인공이 기린과 흑표범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GPT가 있어도, 아무리 순한 동물들을 모아도, 공부를 시킨다는 건 쉽지 않아요. 우리 선조들이 대대로 실패한 데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흑표범이 말을 마친 그때, 그 둘 사이에 조용히 접근해 있던 사자는 더 이상 궁금증 참지 못하고 둘 사이에 불쑥 나타났다.


"계속 실패하는데 이유가 있다고요? 그 이유가 뭐죠?"


갑작스레 튀어나온 사자에 두 동물은 당황했다. 평소라면 주변의 작은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는 기린조차도, 이번만큼은 대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사자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짧은 정적 뒤, 흑표범이 기린에게 조용히 말했다.


"기린, 이제 말해 줘요. 사자도 언젠가는 알아야 하니까요."


기린은 천천히 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사자, 전에 동물들을 공부시키려던 프로젝트가 여러 번 실패했다고 했었죠? 그 이유는... 동물들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사나워졌기 때문이에요."


예상치 못한 설명에 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양이와 너구리의 싸움이 떠오른 사자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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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공부만 하면 사나워진다고요? 설마 고양이 그리고 너구리도...”


“가능성 있어요. 고양이하고 너구리 다투기 전에 책을 두 시간 이상 봤다고 했죠? 그게 원인일 수 있어요…”


"아니, 그 친구들은 평소에도 공부하던 동물들이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저들이 아무리 야생에서 공부를 해봤자, 하루에 기껏해야 10분에서 30분 정도가 고작이었을 거예요."


사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기린을 바라보았다. 그 때 기린은 흑표범과 눈을 맞춘 뒤, 사자에게 앞발짓을 해 보이며 말했다.


"따라오세요."


사자는 느닷없이 자신을 부르는 기린을 따라갔다. 그들은 동물 본부의 정문을 지나 비밀스러운 통로로 들어섰다. 좁고 어두운 길을 지나자 작은 방 하나가 나타났고, 그 안에는 도서관처럼 책들이 가득한 서가가 있었다.


기린은 서가에서 오래된 한 권의 책을 꺼내더니 사자에게 건넸다.


"저희 오라클들은 오랜 기간 동물들에게 공부를 시켜보면서, 동물들이 사나워지는 이유가 ‘공부하는 자세’와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며칠 전 제가 ‘공부의 네 가지 조건’을 말했었죠? 사실은 다섯 가지예요. 마지막 조건이 바로 ‘자세’입니다."


"자세요?"


"동물들이 책을 보려면 네발로 엎드린 자세로 볼 수 밖에 없죠. 하지만 그 자세는 금세 피로를 불러요. 그 자세로 집중하면서 본격적으로 인간 지식을 머리에 담게 피로가 정신적인 피로로 연결되면서 점점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어 있어요."


"그럼 결국, 애초에 동물들에게는 공부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잖아요?"


"네. 그래서 우리는 동물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자세를 찾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해왔죠."


기린이 사자가 들고 있는 책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 책을 찬찬히 읽어보세요. 동물들이 특정 주제를 공부를 할 때 사나워지지 않기 위해 취해야 하는 자세들이 나와있어요."


기린이 건넨 책에는 요가 자세가 삽화와 함께 빼곡히 정리돼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던 사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자세를 발견했다. 바로 흑표범이 시켰던 그 혹독한 자세였다.


"공부 주제마다 맞는 자세가 있어요. 수학 공부를 할 때는 두루미 자세, 과학 공부를 할 때는 코브라 자세를 하면 마음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어요. 이 자세들은 예방뿐만 아니라, 이미 흥분한 상태를 진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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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마다 자세가 다르고, 얼핏 봐도 자세가 30개는 넘는데... 이렇게 많은 걸 다 알아야 한다고요? 이건 그냥 억지 해결책 같잖아요."


사자는 책을 훑어보다가, 더 심란해졌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애초부터 맞지 않는 해결책을 만들어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기린은 사자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하지만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요. 이 자세들 말고도, 어떠한 상황에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궁극의 자세'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이미 '존재하는게' 아니라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고요?"


사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지금 기린의 말은 아직 동물들을 완벽히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흑표범이 끼어들어 말했다.


"사자, 제대로 짚었어요. 그게 바로 제가 동물들이 공부하는 것이 어렵다고 자꾸 기린에게 말하는 이유..."


그러나 흑표범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기린이 앞발로 흑표범을 입을 막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 자세는 반드시 존재해요. 다만 그 자세를 우리가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에요. 사자, 예전에 했던 말 기억하죠? 다 함께 노력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던 그 말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꼭 해낼 수 있어요. 해내야만 해요."


사자는 한동안 말없이 기린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기린, 저...제가 생각이 바뀌었는데..."


"뭐죠?"


"그냥 없던 걸로 하고, 동물들 공부 안 시키면 안 될까요?"


마치 지쳐버린 듯한 목소리에 기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몰랐나요? 세상을 바꾸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거?"


"그땐 이런 문제가 있는 줄 몰랐죠. 알았으면 그렇게 말 안 했을…"


기린은 나약한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단호하게 앞발을 들어 사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2) 그리고 그 순간 사자는 처음으로 기린을 만날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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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물들은 야생에서 먹이를 놓고 다투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자존심 문제로 그리고 더군다나 상대를 무시하는 말을 써가며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기 너구리와 고양이의 말다툼은 사자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2) 이야기 중에는 앞발을 입에 대서 상대가 말을 못 하게 하 무례한 동작이 몇 번 나온다. 이 동작에 대해서는 <부록: 동물들의 제스처>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3) 기린이 사자에게 준 요가책과 관련해서는 <부록 : 요가책에 기록된 핵심 자세들>에 자세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