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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캄브리아기

by 스튜던트 비


선캄브리아 시대


고대 생물들 가운데 특별히 똑똑했던 동물이 있었다. 바로 삼엽충의 조상 스피리기나이다. 스피리기나는 인간들에게 바다 지네처럼 징그러운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들은 매우 지적이었고, 도구를 만들어 쓸 만큼 영리한 존재였다. 1)


그러나 스피리기나는 겸손하지는 않았다. 스피리기나는 자신 주변의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이나 다세포 동물들을 무시했고, 자기만 옳고 잘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급기야는 자신의 대화 상대는 신 뿐이라며 신을 만나기 위해 하늘을 향해 높은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과 아주 가까운 자리에 놓인 구름에까지 다다랐을 때 신의 목소리가 스피리기나의 귀에 들려왔다.


“네가 어렵게 나를 보러 여기까지 왔으니, 선물을 하나 주겠다. ‘진화’라는 이름의 선물인데 이것을 받겠느냐? 선택은 네가 하려무나.”



똑똑했던 스피리기나는 ‘진화’라는 말의 뜻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기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산에서 내려온 그는 곧장 주변의 단세포와 다세포 동물들을 모아놓고 으스대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봐, 내가 뭐랬어? 신이 나한테 잘 보이려고 선물까지 줬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스피리기나는 그 자리에서 선물의 포장을 풀었고, 상자의 뚜껑을 열자 상자 속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순식간에 주변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렇게 스피리기나 주변에 모여 있던 모든 생물들은 연기에 휩싸여 기침을 터뜨리며 콜록거렸다.


갑작스러운 연기에 놀란 스피리기나는 순간 숨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겉보기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곧 그는 뭔가 달라졌음을 눈치챘다. 그들의 눈빛이, 전과는 전혀 다른 빛으로 스피리기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1) 스피리기나(Spirigina)는 고생대 이전인 선캄브리아기에 살았던 생물이다. 당시 바다에는 해파리 젤리 같은 모습의 단순한 생물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들에 비하면 스피리기나는 제대로 된 몸의 구조를 갖춘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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