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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대

by 스튜던트 비


스피리기나가 신에게서 받은 선물을 펼쳐 보인 그날, 친구들의 눈빛이 달라진 순간부터 생명들은 전혀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고생대가 열리자, 단순한 형태의 진화만 반복해 오던 미생물이나 해파리 같은 존재들조차 점차 더 다채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인간들이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라 부르는 이 시기, 지구에는 거의 모든 동물 문(門, phylum)이 한꺼번에 나타나며 생명의 다양성이 확장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생겨난 다양성은 곧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서로 다른 능력이 부딪히고 또 합쳐지면서, 생물들은 문명의 건설과 같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성과를 이루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양성은 위기와 재난이 닥치면 오히려 서로를 겨누는 칼날로 바뀌었다. 서로의 다름으로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결국 다양성을 품었던 세계는 바로 몰락해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몰락과 멸종의 경험은 고생대의 시간 속에서 무려 세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1)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시련을 거듭한 끝에, 생명들은 스피리기나가 신에게서 받았던 그 ‘진화’라는 선물이 축복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저주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



그리고 어떤 동물들은 언젠가 다시 어려운 순간이 닥쳐올 때, 서로의 생김새와 생각, 종의 차이를 넘어 협력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다면 그 종은 마침내 신의 저주를 풀어낸 동물일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1) 초반에는 조개와 닮은 완족류 (오르도비스기, 약 4억 8천5백만 년 전), 중반에는 바다의 어류 (데본기, 약 4억 년 전), 그리고 후반에는 삼엽충을 중심으로 문명이 번성(페름기, 약 2억 5천만 년 전)하다가 몰락을 맞이하는 상황을 되풀이했다.


2) 후대의 어떤 동물 철학자는 이를 신이 “바위를 뾰족한 산 위로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린 것과 같다고 평하기도 한다. 진화한다는 것은 곧 끝없는 경쟁 속에 내던져지는 일 언제 멸종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 그리고 그 목적조차 알 수 없는 극한의 고독을 짊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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