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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지 Jul 26. 2023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어 작업을 한다

고등학생 때 작가로 활동하셨던 미술 선생님에게 ‘왜 작업을 하시느냐’ 물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죠.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작업을 한다.”

덧붙여 작업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어 작업을 한다고 하셨지요.


당시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저도 조소를 전공했고 작가를 꿈꿨지만, 제게 작업은 하고 싶은 일이지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무엇인 것은 아니었거든요.

선생님의 대답을 들었을 때 마음 한편으로 ‘아, 나는 그 정도로 작업을 하고 싶은 건 아닌데, 그럼 나는 작가가 될 자격은 안 되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작업은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곧바로 돈이란 보상을 주지도 않습니다. 봐주는 이가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과정은 너무나 고되지요. 그래서 작가가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후 작업을 하지 않는 시절을 보내면서 저는 제 자신이 조금씩 죽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늘 머리가 노란빛에 매캐한 냄새가 나는 안개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습니다. 물속에 잠겨 있는 듯 잘 움직일 수도 잘 생각해낼 수도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느덧 당시 선생님의 나이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이젠 작업을 하지 않고 살 수 없는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죽지 않기 위해, 이대로 죽어가지 않기 위해 작업이란 것을 합니다. 어떤 형식으로든 말이죠.




2년 전 구상을 하고 1년 전부터 브런치에 연재한 <빈칸을 채우세요. 장례 희망:  >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연재를 하면서도 혼란스러운 구성, 매끄럽지 못한 전개에 부끄러운 마음이 컸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렵게 어렵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고, 50프로 정도 완성된 원고를 3개월에 걸쳐 오십여 군데에 투고를 했습니다. 요즘엔 독립출판이나 펀딩 등으로 결과물을 낼 수 있지만 제겐 출판사와 편집자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최근 한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고 계약을 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연재의 형식이 아닌 우화집으로 내게 될 것 같습니다. 편집장님의 우화집 제안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삭제된 이야기들은 책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작업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벌, 아니 벌어야 할 시간에
오히려 돈을 들여서
아무도 보지 않을 수 있는, 그래서 그저 쓰레기가 될 수 있는
아주 추상적인 가치 혹은 개념을 만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운 일이죠. 한없이 회피하고 싶은 일이지요.


앞으로 여기 브런치에는 ‘그럼에도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할 수밖에 없는 이 애증 어린 글쓰기 작업‘에 대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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