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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지 Sep 14. 2023

보이는 대로 그리는 글 쓰기

제가 쓰는 한 편의 글은 하나의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현재 작업 중인 책은 ‘어른들은 위한 우화집’인데요.(저의 첫 책이기도 합니다) 죽음과 삶이 주제입니다. 삶과 죽음이 아닌 죽음과 삶이요. 어쨌든 이 책이 우화집인 만큼 이야기가 상징적이고 동화적 상상력이 깃들어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이야기를 짓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게 글쓰기는 그림을 그리는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 있던 그림을 찾고 그걸 이야기로 따라 그리는 느낌이랄까요?

 

이번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까, 고민할 때면 눈을 감고 장면이 떠오르길 기다립니다. 눈꺼풀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일렁이는 어둠을 가만히 지켜보죠. 그럼 희끄무레하게 무언가 보여요.


지금 작업 중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처음 노트에 “시뻘건 계곡물이 콸콸 쏟아져 내려왔다”라는 문장을 썼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이 문장을 첫 문장으로 쓰려고요. 이때 저는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해 이런저런 구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열기에 수분이 다 달라가 딱딱하게 굳은 열심(熱心)이 생각났고, 열심 열심 열심이란 글자를 의미 없이 끄적입니다.


‘자 이제 어떤 이야기를 쓰지?’ 고민하면서 장면을 찾기 시작합니다. 커피든 음악이든 바람이든 무언가에 의지해 살짝 취한 상태를 만들며 저 세상과 접속을 합니다. 물론 술에도 취하고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술 마실 땐 머리 자체를 굴리면 안 됩니다. 다시 돌아와서, 살짝 취한 상태에서 어둠 속에서 어둡고 거대한 석산이 보였습니다. 울퉁불퉁하고 검붉은 석산이 말이죠. 그리고 쏟아지는 비에 열심들이 녹아 시뻘건 계곡물이 콸콸 쏟아져 내려오는 장면과 연결이 됐습니다.


이젠 이 석산의 정체가 뭐고, 어쩌다 열심들이 여기에 무더기로 버려져 산을 이루게 되었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현재까진 인간들의 열심을 연료로 사용하는 어떤 사회를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딱 막혀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글이 막히면 답답하긴 하지만 그렇게 스트레스 받진 않습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장면들 재생될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말 써지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영 아닌 이야기였 거라고 나름의 합리화를 합니다. 합리화가 아니라 진짜 그럴 수도 있죠.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을까, 왜 무언갈 이야길 하고 싶은 걸까, 생각하면 답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창작을 하는 데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어떤 메시지를 확고히 전달하려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장면들이 있고 그 장면들을 발견하고 때론 손톱 밑을 시커멓게 만들면서 발굴해 가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미 있는 것을 보이는 대로 따라 그리는 거죠.


도무지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듯,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쓰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보이는 대로 따라 그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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