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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지 Mar 13. 2024

자식이 엄마를 더 사랑하듯

작품이 작가를 더 사랑한다

아이들의 광기 어린(?) 눈을 보고 있으면 저 애들이 나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대개 자식에 대한 부모의 희생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작은 아이들이 부모를 더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저는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사랑은 필요다‘라고 믿는데요. 자식은 부모에게 생존을, 부모는 자식에게 존속을 맡기고 있으니 부모와 자식은 서로 필요하고 그래서 사랑합니다. 그런데 막연한 유전적 존속보다 당장의 생존이 더 급한 문제이니 자식은 부모를 더욱 간절하게,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작품도 작가를 더 사랑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힘겹게 힘겹게 산도를 뚫고 태어난 작품이 갈망 가득한 눈빛으로 목 빼고 작가만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고는 “나에겐 당신뿐이에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나를 계속해서 바라봐주세요. 제발요.” 하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건 마음 깊숙이 내재한 애정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이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누가 나를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겠습니까. 나에게 생존을 내맡긴 존재만이 나를 순수하면서도 맹렬하게, 온 존재의 힘을 다해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죠.


나는 언젠가 죽습니다. 아니 언제든 죽을 수 있습니다. 죽을 운명의 내가 이 삶의 무의미와 죽음에 대한 무지를 덮기 위해선, 쓰고 그리고 만들고 낳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만이 의미를 알길 없는 삶을 조금 더 살게 하니까요.


물론 자식이든 작품이든 드럽게 말 안 듣고 시도 때도 없이 토라져 저렇게 말도 안되는 떼를 부리곤 합니다. 속에서 열불이 나고 미칠 것만 같지만, 어쩌겠습니까. 으스러질 만큼 안아줄 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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