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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대박' 엘살바도르, 후퇴 선언?

비트코인 법정화폐 엘살바도르, IMF 대출 위한 코인 정책 변화

by 토미 M

엘살바도르는 2021년 비트코인을 공식 화폐로 지정했습니다. 정부가 비트코인을 사 모아왔습니다. 그리고 비트코인 가격은 치솟았습니다.


엘살바도르는 얼마나 부자가 됐을까요?


추정이 가능한 ‘나이브 부켈레 포트폴리오 추적기’라는 이름의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나이브 부켈레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만들고 올해 재선에 성공한 엘살바도르 대통령 이름입니다.

Nayib Bukele Portfolio Tracker

엘살바도르는 현재 6,203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것으로 보이고, 액수로는 8천억원이 조금 안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실현’ 매도 수익률은 이미 2배를 훌쩍 넘었습니다. 한마디로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투자는 '대박’이 난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월스트리트 저널이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 정책을 후퇴 시킬 계획”이라는 기사를 냅니다.

모두가 비트코인만 바라보고 있고, 외려 더 사모아야 할 판인데, 엘살바도르는 왜 반대로 움직이려는 걸까요?


1. IMF 구제금융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정확한 보도 내용은 이렇습니다. “비트코인을 공식 화폐 (Official Currency)로 지정했던 엘살바도르가 IMF의 대출을 받기 위해 코인 정책을 후퇴시켰다 (Now It’s Backtracking for IMF Loan)”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한 뒤 한때 ‘수익률 –60%’를 버티는 인고(忍苦)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한 엘살바도르가 IMF로부터 경제를 살리기 위한 돈 14억 달러(우리 돈 약 1조9천6백억원/ 1400원 기준)의 대출을 받기 위해 코인 정책을 후퇴시키기로 했다고 전한 겁니다.


IMF는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쓰는 걸 아주 싫어하는데, 이번에 대출 협상을 하면서 역시 '코인 정책의 후퇴'를 요구했습니다. IMF의 설명입니다.


“부켈레 정부의 경제 개혁 아젠다를 지원하기 위한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 그 대가로 부켈레 정부는 비트코인과 관련된 리스크를 줄이기로 했다 (mitigate bitcoin-related risks)”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보면, 엘살바도르 정부의 비트코인 구매를 줄이고, 암호화폐 자산으로 세금을 납부받지 않으며, 2021년에 도입된 암호화폐 전자지갑 치보Chivo에 대한 정부 참여가 점진적으로 축소될 전망입니다.


2. IMF의 비트코인 알레르기


IMF가 코인을 가지고 엘살바도르와 다투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엘살바도르의 부켈레 대통령이 지난 21년 법정통화(legal tender)로 비트코인을 지정하자,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환호했지만, IMF는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 자산이 가난하고 빚이 많은 국가의 재정을 흔들 수 있다”라면서 재정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엘살바도르 정부의 자문을 맡았던 조지타운 아메리카스 연구소의 베르너 소장의 말을 인용해, “국제 금융공동체가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하는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법정화폐로 지정하는 건 협상의 방해물이 됐다”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3. IMF 없이 잘 버텨온 ‘대박’ 엘살바도르


실상 당시 IMF가 지원을 중단했어도 몇 년 동안 인구 650만명의 엘살바도르는 잘 버텨왔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특히 엘살바도르 경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해외인력 송금 수단으로 비트코인이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일하는 엘살바도르 국민이 약 250만명 정도인데, 이들이 고향으로 보내오는 돈이 GDP의 20%를 넘습니다.


또 달러 송금을 하면 엘살바도르 금융 여건 탓에 수수료가 10%를 넘을 정도로 였는데, 비트코인이 이 문제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밖에 2021년 법정화폐로 비트코인을 지정한 뒤 부켈레 정부는 비트코인 ATM과 가입자에게 30달러 상당의 무료 비트코인을 제공하는 전자지갑을 도입하는 데 2억 달러 이상을 지출했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 전자지갑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부켈레 대통령은 또 지열을 통해 얻은 전기로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산업을 밀어붙일 정도로 비트코인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오랜 내전의 후유증을 딛고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인플레이션이 잡히면서 엘살바도르 경제가 조금 나아지는 했지만, 그렇다고 IMF의 대출을 외면할 수 있을 정도까지 좋아진 건 아닌 모양입니다.


4. “들어오는 돈이 없다”


실제로 요즘 엘살바도르 경제는 어떤 상황일까요?


현지 대사관이 보내온 대한민국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의 경제는 예전에 비해 확실히 좋아지기는 했습니다.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3.5~4%로 상향 조정됐는데, 이 보고서는 “2024년 성장 전망치는 눈에 띄는 성장세”라고 평가했습니다.


치안 상황이 좋아지면서 관광객 유입도 늘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연 1~1.5% 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한 ‘부켈레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판단’ 역시 보고서 내용과 비슷합니다.


부켈레 대통령은 최근 X를 통해 “팬데믹 이후 강력한 송금과 관광의 놀라운 회복으로 경제가 좋아졌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공공안전도 좋아졌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던 때보다 많이, 그리고 빠르게 좋아진 것이지 경제적으로 풍족해진 건 아닙니다.


일단 최근 수출 상황이 좋지 못해 외국에서 달러를 들여오기 힘든 상황입니다. 설탕, 커피 등의 수출량이 줄었고, 특히 대 미국 수출이 줄어서 2024년 1분기 기준 전년보다 13.7% 수출이 감소했습니다.


또 외국 큰 손들의 엘살바도르 투자도 많지 않습니다.


유엔무역개발기구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남미 19개 나라 중에서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입액 기준으로 엘살바도르가 꼴찌에서 6번째입니다. (벨리즈, 파라과이,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가 1~5등입니다)


정리해보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IMF의 자금 수혈’이 불가피했고, IMF의 요구대로 비트코인 정책의 1보 후퇴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5. 내가 그럴 거라고 말했지?


"내가 그렇게 말했지? (I told you so)"


부켈레 대통령은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신기록을 갱신하자 X에 이 짧은 한 문장을 올렸습니다.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대박을 친 자만 할 수 있는 한마디겠죠.


그런 부켈레 대통령이 코인 정책을 완전히 철회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그 역시 당장은 IMF 말을 들어야 하겠지만, "비트코인은 계속 사겠다.더 빠른 방식으로 사겠"라고 (IMF 구제 금융 계획이 발표된 뒤) 의견을 내놨습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엘살바도르의 이번 정책 변화를 '코인 정책의 철회'가 아니라 '1보 후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IMF도, 이번 협상 과정에서 코인에 대한 입장이 조금 누그러진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돈 빌려주면서 이런 저런 '반 코인적인 조건'을 내걸기는 했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하고,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가 늘고, 특히 트럼프 2기가 다가오자 이에 대한 입장이 조금 유연해진 것도 사실이라는 게 월스트리트 저널의 평가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겠느냐’는 전문가의 분석도 함께 실었습니다.


솔직히 트럼프 2기가 다가오고, 가격이 치솟으면서 전세계적으로 비트코인에 대한 눈이 달라지는 분위기인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엘살바도르에 이어 지난 2022년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세계에서 2번째로 가난합니다)이나 카리브해 관광지에 코인을 법정화폐로 쓰는 경제 특구를 만든 온두라스 뿐 아니라 또 다른 나라들도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나 이에 준하는 금융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주로 파나마, 파라과이, 쿠바 같은 중남미 국가들이 거론되고 있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나 미국 경제 제재를 피하고 싶은 러시아도 얘기가 나옵니다.


이미 트럼프 2기의 화두로 떠오른 비트코인.


대박난 엘살바도르의 예에서 보듯, 아직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동시에 부켈레 대통령을 '전세계적인 스타'로 만들 만큼의 파괴력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로 화폐 가치가 불안정하거나, 인플레이션이 지독하게 심하거나, 아니면 경제적 어려움이 큰 나라들이 비트코인의 적극적인 사용을 검토하고 있는 모양새이기는 하지만, 과정이야 어떻든 비트코인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새로운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요즘 세상의 새로운 트렌드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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