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1.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2. 논쟁, 논의, 연구 따위의 대상이 되는 것
3. 해결하기 어렵거나 난처한 대상. 또는 그런 일
4. 귀찮은 일이나 말썽
5. 어떤 사물과 관련되는 일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2, 3, 4, 5번을 모두 1번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진 사람이 있다. 나다.
그리고 내 딸.
우리는 피곤하다.
지난주 오후에 갑자기 애가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자퇴하고 싶어."
"뭐? 왜?"
"애들이 너무 싫어."
학교에서 집에 오는 중이라는 아이와 20:10 동안 통화했다. 중간중간 차 소리 사람 소리가 꽤나 크게 난 것으로 미루어보아 큰길로 걸어온 것 같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며 통화를 종료한 아이는 현관에서 내 방으로 직진하여 나를 3초 정도 쳐다보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반 애들이 수업을 방해한다. 선생님을 대놓고 무시하고 남자 애들은 앞에서 여자애들은 뒤에서 욕을 한다. 자기들은 학원 다녀서 성적 잘 나오므로 학교 수업은 쓸모없다 한다.로 평범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갑자기 '영숙이(가명/단짝친구/손세정제와 물티슈를 하루 하나 이상 사용)가 자기 중간고사 끝나면 엄마 아빠한테 얘기해서 자퇴한데'로 급발진하더니 애들이 급식에 나온 디저트를 교실에 가지고 와서 집어던지며 논다. 교실 곳곳이 썩는데 청소를 안 한다. 지적을 받으면 ADHD 걸린 애한테 강제로 떠맡기는데 ADHD인데 청소를 잘할 수 있겠냐. 교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주인 없는 담요와 쿠션 같은 걸 자꾸 내 책상 위에 올려놔서 혐오스럽고 더러워 미치겠다.
여기서 내가 무심결에 빵 터졌다.
"왜 웃어? 왜 웃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다는데 왜 웃어? 왜 웃은 거야?" 물어뜯길래
"아니, 엄마가 맨날 설거지 하고 청소하다가 막 우는 거 이제 공감해 주나 해서."라고 답했다.
2초 정도 말이 없더니
애들이 전부 쓰레기다.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지 생각만 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른다. 장애인도 꼽준다. 수업 시간에 핸드폰 사용 9번 걸리면 선도 보낸다고 공지가 내려왔는데 전교에서 우리 반 애들만 이름이 적혔다. 신경도 안 쓴다. 먹히질 않는다. 나도 자퇴하고 싶다. 여기 있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순식간에 비난의 방향을 틀었다. 이 와중에 기술 쓰네...
"엄마가 담임선생님이랑 통화를 좀 해볼게. 선생님은 경험이 많으시니까 해결 방법을 알고 계실 거야."(아이가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과 관계가 좋음)
"아니 애들이 선생님 말을 안 듣는다고!"
"그래도 그런 애들 때문에 안 그런 애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게 옳은 일이야? 그나마 제정신인 애들이 학교를 그만두면 선생님은 뭐 지옥에서 일하냐?"
"아니!!!!(울부짖기 시작) 내가 지금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데 엄마는 왜 선생님 얘기를 해? 왜 내 말을 안 듣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문제가 심각하니까, 해결을 해야 할 것 아니야.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할 거 아니야."
"아니! 지금 내가 힘들다고! 내 편을 들어줘야 할거 아니야. 왜 딴 얘기를 해."
"딴 얘기가 아니라, 니가 힘들어하니까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아보려고, 조금이라도 힘듦을 줄여주고 싶어서 방법을 찾고 싶다는 거잖아. 그리고 중학교 때도 애들 때문에 학교 다니는 거 힘들다고 했는데 고등학교 와서도 또 애들 때문에 힘들어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하니까. 중학교 땐 애들이 미성숙해서 그런 거다 고등학생 되면 달라질 거다 생각했는데 계속 똑같은 거면 그냥 애들이 다 그런 거잖아. 스무 살 서른 살에도 똑같을 거잖아. 너 앞으로 걔네들이랑 같이 대학 가고 사회생활하고 같이 살아야 하는데 그럼 앞으로도 너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거잖아."
"아니 중학교 때는 걔네들이 나를 너무 싫어하니까 그게 힘들었던 거구 지금은 내가 애들이 싫은 거니까 다르지."
"다른 게 아니지 엄마가 보기엔 애들 그냥 평생 그렇게 살 것 같아."
"그건 아닐지도 몰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똑같을 거라니까. 아우,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근데 어딜 가나 인간 똑같은데. 어쩌면 좋냐."
나도 기술을 썼다.
걸어가면서 허공에 대고 고함치며 울부짖는 애 때문에 놀라셨을 동네 사람들께 죄송하긴 하지만, 천진난만하게 하교했다가 스피커폰으로 누나랑 통화하는 걸 듣고 조용히 자기 방에서 이불 덮고 누운 동생을 보며 얘 지금까지 자는 거냐 오늘도 학교 안 갔냐 물어볼 정도로 울분이 풀린 아이를 보며 오늘도 큰 고비를 넘긴 내가 자랑스럽고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