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
항상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병도 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책으로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도 있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엄기호, 공부 공부/ 엄기호, 공부 중독/ 엄기호 하지현
이슬아 작가의 책에서 찾아낸 정혜윤 작가의 책에서 엄기호 작가를 찾아냈다. 나와 같은 시공간의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책을 읽고, 언제부터인가 불안의 딱지를 붙이고 내 머릿속 인지 마음속 인지의 한 구석에 영역을 만들고 있던 어떤 덩어리들을 해결하였다.
학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또다시 들게 하는 책들이었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의 수업을 듣는다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쏘옥쏘옥 아주 다 빼먹을 수 있을 것 같다.(어찌 보면 최근에야 나의 대학 수학 능력이 완성된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책에 따르면 SKY는 교수를 만들기 위한 커리큘럼을 나머지 대학들은 기업 인재를 만들기 위한 커리큘럼을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방통대나 사이버대는 공부를 위한 공부를 선택한단다.) 내가 학교에 가면 교수의 수족이 되어 평생 졸업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변의 거센 만류와 함께 현실적으로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을 학교에서 배울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더해졌다. 아직까지는. 하지만 기다려보겠어!
'보수적인 부모는 아이가 서울대를 가기 바라고, 진보적인 부모는 아이가 비판적인 서울대 생이 되기를 바란다.' 솔직히 내 자식인데 당연히 명석하겠지. 환경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가꿔주고 있는데 당연히 뛰어나겠지. 그 부분이 뒤틀려 불편했다.
'해녀 학교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자기 숨의 길이라고 한다.' '자아는 실현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무한한 가능성 따위는 없다. 재능은 gift 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제외하는 작업을 통해서 내 한계를 파악해야 한다.
'강박은 상황을 통제하고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최적화와 효율성에 집착하면서 생겨난다.' '주인의 힘은 이루게 하는 힘이 아니라, 그만둘 수 있는 힘이다.' 왼손 검지 손가락 뼈 위에 x자 표시를 할 때 나의 강박이 오롯이 나의 탓은 아니었다고 몰래 웃을 수 있다.
'군대에서도 느꼈겠지만 우리의 주적은 북한군이 아니라 어리석은 동기, 우리 편이다.' '무엇이 대안이냐-라는 질문. 정말로 대안을 찾고 싶은 것인가, 지금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는 말인가.'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져야 희망이 보이고 희망이 보여야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의견은 참여자의 입장이다. 관전평, 품평은 구경꾼의 언어이다.' 전에 남편이랑 싸우다가 대안이 없으면 지적하지 말라고 고함지른 적이 있다. 책에 따르면 문제에 대한 의논이 꼭 정답 찾기에 수렴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나누다 보면 당장 긴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코로나 해결 방법을 모르니 대화에 참여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격리된 상태에서 혼자 앓다 죽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부가 무능하네, 트럼프가 돌았네, 내 저럴 줄 알았네, 그런 말들은 무책임하다.
좀 길게 생각해보니 내가 그때 남편한테 '안 그래도 잘 몰라서 불안한데 본인도 정답을 모르면서 틀렸다고 지적질하지 말라!'라고 한 것은 내가 잘못한 거고, 쩔쩔맬 때는 모른 척 해 놓고 정답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건 내가 혼자 푼 문제에 대해 '아니, 왜 그걸 그렇게 했어?'라고 품평한 것은 남편이 잘못한 거다. 그런 결론.
'피곤은 간 때문이 아니라 과로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이제 사람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값으로 착취한다.''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롭다.' '개인적인 모욕이 없는 사회는 문명화된 사회이고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는 품위 있는 사회이다.''개인의 존엄을 짓밟아 승리한다.' '사람을 불안에 몰아넣으면 미친 듯이 자기 착취를 합니다.' 내 자식들이 계급 상승은커녕 계급 유지도 힘들어졌다는 현실을 깨닫고 많이 무서웠다. 책임감을 느꼈지만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들에게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가 가진 용기의 70%가 소진되어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체제 전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동료들과 만나 미친 세상을 씹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다들 몰래 씹어대다 보면 어느 순간 사막을 정복하는 두더지 떼가 된다고 한다.
나는 씹는 것에 매우 노련하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