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골프를

골프 잘치는 내새끼보다 골프 같이 치는 내새끼가 훨씬 더 좋다.

by easygoing

다이어트에 돈을 한 번 쓰고 나니 또 돈을 쓰고 싶어져서 아파트 커뮤니티 골프 강습 쿠폰을 끊었다.

20분 x10회= 25만 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면 바로 레슨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킬링 포인트). 준비물은 장갑(인터넷 가 3500원~), 7번 아이언(당근가 5만 원~) 이게 다였다. 레슨에 사용하는 7번 아이언은 모든 연습장에 여러 개 준비되어 있다. 전염병 시대니까, 7만 원 주고 당근에서 샀다.


주2회씩 3개월간 레슨을 받았다.


아이언 스윙을 완성했는데(제대로 쳤을 때 스스로 알 수 있는 수준) 그립이 엉망이라 장갑이 계속 찢어지고 늘어나서 이것저것 바꿔가며 한 5개 해먹어서 25000원, 역시 그립이 엉망이라 동네 골프샵에 가서 골프채 그립 부분을 15000원 주고 2번 바꿔서 30000원, 풀스윙 배울 때(그전까지는 헐렁한 스니커로도 아무 문제 없었다) 골프 신발을 하나 사서 45000원(한 4번 신고는 들고 가는 것도 갈아 신는 것도 너무 귀찮아서 그냥 다시 스니커 신고한다), 아파트 골프 연습장 사용료는 기본 관리비 포함으로 연습 비용 0원

총 13만 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들어갔다.



드라이버는 20년 전에 엄마가 쓰시던 걸 친정 창고에서 찾아내서 가져왔는데, 동네 골프샵에서 그립만 빼고는 멀쩡하다고 해서 그립만 교체했다. 중고 매장에 가니 쓸만한 게 15만 원 정도 했다.


입 다물고 + 혼자서 + 반복 = 내 스타일


낮 뜨개질과 저녁 골프 스윙으로 내 손가락과 손목에서 오도독 소리가 계속 나고 페트병 뚜껑을 열 수 없게 되긴 했는데 찜질과 스트레칭을 정성껏 해주면서 요령 있게 지내는 중이다.



특정 시간대를 제외하면 연습장이 한가하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어린이 골프채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당장 아이들을 데려갔다. 안 그래도 친구들 중에 골프 하는 애들이 있다면서 궁금해하던 중이라 아주 적극적으로 따라나섰다.

일주일에 한 번 20분 레슨받고 가끔 저녁 먹고 같이 연습장에 갔는데 애들이라 몸에 힘도 안 들어가고 딱히 아~무 생각도, 아~무 부담도 없어서 그런지 후루룩 배워 나갔다. 뭐 애들이 친구들이랑 대회를 나갈거야~ 라운딩을 갈 거야~ 실력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자기들이 골프채로 공을 칠 줄 안다는 것만으로 {골프 배웠다}는 호화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주 1회 20분 1:1 레슨 비용이 한 달 10만 원
플룻이나 바이올린보다 저렴하다


근처 인도어 연습장(그물 있는데)을 한 번 가봤는데 뻥 뚫려있어서 기분이 상쾌했다. 한 시간에 1인당 25000원 정도의 비용이 들고, 공이 날아가는 것에 흥분해서 시간 안에 빨리 많이 치겼다며 모두가 오버페이스 하는 바람에 다 같이 부상이 생겨서 2번 가고는 안 간다.





골프는 필드에서 하는 골프와 필드가 아닌 곳에서 하는 골프로 나뉘는데 이 두 가지는 같지만 매우 다른 운동이다.


필드에서 하는 골프가 나에게 불가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3명의 다른 사람들과 최소 5시간 동안 함께 운동하면서 계속 즐겁게 대화하고 친해져야 하는 일은 나에게 무리다.

2. 골프장의 기본 매너인 '살짝 드러내는 사치와 계급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의 돈 쓰기는 여윳돈이 없는 나에게 무리다. (이거 쓰고 나서 보니 SNS 느낌이네..)

3. 강한 빛으로 유발되는 격한 편두통이 있고 각종 알레르기가 두둑하며 특히,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심하게 나는 신체조건으로 땡볕 잔디밭에서 몇 시간씩 하는 운동은 무리다.


뭐 어쩌면 저 부분들에 대한 극복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일어나지 않을 일인 것은 확실하다.(남편은 골프장 골프에 대해 큰 문제가 없긴 하지만 내 생각엔 잘 못하는 거 들키기 싫어서 안 갈 것 같다.ㅋ)





자, 그러면 다시 나의 연습장 골프로 돌아와서-

딸아이는 160cm가 넘어서 내 채를 같이 쓰면 되는데, 아들 녀석은 어린이용 골프채가 필요했다. 카테고리 전체를 훑어 이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제품을 찾아냈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한 거다.



이 상황:

연습장이나 스크린 갈 때 아이도 같이 갈 수 있어야 한다.

기초가 가장 중요하니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사양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기대치가 높아져서 사이가 나빠지니 언제 그만둬도 속이 쓰리지 않을 적당한 가격이어야 한다.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알려주기 위해서 도소매를 뒤져서 상품을 만들었다. 내가 직접.

레슨 스타터 세트 65000원 (배송비 무료ㅎ) 6/7 아이언 1개와 드라이버 1개로 구성.


연습장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제품을 레슨 프로에게 직접 물어봐서 확인한 모델이다.

사이즈는 초등학교 저학년 용과 고학년 용 2가지 사이즈.



어린이들이 레슨 때 우는 경우를 몇 번 봤다. 힘들고 지겹고 왜 하는지 몰라서. 그리고 선생님 무서워서

아이들 레슨 선생님 고를 때는 목소리 작고 칭찬 많이 해주는 티칭 프로 선생님을 추천한다. 아이가 골프 신동이 아닌 이상 투어 프로에게 레슨을 시키면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때만 좋다. 일단 자신감이 생겨야 흥미도 생기고 흥미가 생겨야 배움이 시작된다.


퍼팅 연습장에서 '집에 안 갈래'를 외치는 아들을 보고 퍼터 20000원 추가 메뉴도 만들어 넣었다.



장갑과 가방도 세트에 넣어볼까 생각했는데


장갑은 카카오 프렌즈 같은 이쁜 걸로 매장에 가서 직접 끼워본 후에 한 2만 원짜리 한 번 사주면 잃어버리기 전까지 쓸 수 있고, 만약 아이가 불편하다고 하면 그립을 두툼하고 푹신할 걸로 바꿔 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 뺐다.

가방은 애들 사이즈는 풀백만 있고(취미 레슨에 들고 다니기는 많이 과하다) 하프백이나 쿼터백 같은 걸 어린이용이라고 팔고 있는데, 어린이들이 들고 다니기에 너무 길다. 학원에서 레슨받는 경우에는 차량을 타고 내리거나 메고 뛰다가 걸려 넘어지기(우리 아들만 걷는 기능 없는 건 아니더라) 십상이라 뺐다. 가장 좋은 건 아이랑 엄마/아빠/이모/고모/삼촌/할머니/할아버지가 같이 연습장에 다니면서 한 가방에 같이 넣어 가지고 다니는 거다.


내가 파는 세트 골프채는 안 비싸서 학원에 두고 다녀도 큰 부담이 없을 것 같다.






연주하는데 갑자기 5명의 감정선이 겹쳤을 때
전혀 엉뚱한 곳에서 근사한 장면을 마주했을 때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었을 때
같이 한 작업이 더 좋고 새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을 때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은 주로

말을 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순간들로 꾸려져있다.


나는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잘 못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도록, 본인이 원할 때 그만둘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스스로가, 몸을 사용하는 어떤 기술이 체화되면 마음이 힘들 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성취도 중요하지만 경험을 넓히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사람으로 자라줬으면 좋겠다.


이건, 번 외인데
엄마에게 받은 드라이버에 살짝 정신 나간 것 같은 표정의 말 인형 커버가 씌워져 있다. 중고생 시절에 선물로 다른 드라이버 커버를 사드리려고 백화점에 갔다가 그때 돈으로 4만 원이 넘는 걸 보고 바로 돌아 나온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은 드라이버 커버 얼마나 하지? 검색을 시작했다가 치명적인 나무늘보 커버를 찾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호랑이띠를 맞아 잘 팔린다는 호랑이를 샀다. 퀄리티 확인하고 아들에게 준 뒤(남편은 상당히 거친 디자인의 커버를 사용 중이다), 내 나무늘보를 사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하필이면 눈이 진짜 하나도 안 보이는 새벽 시간에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장바구니에 잔뜩 넣어뒀던 여러 가지 동물들 중에 나무늘보 위인지 아래인지에 있던 호랑이를.. 클릭... 그런데, 아들 드라이버에 끼우니 너무 큰 거다. 내 드라이버가 430cc인데(20년 전 제품) 내 드라이버에도 컸다ㅠㅠ. 아들이 괜찮아요~ 안 빠져요~ 드라이버에 끼우고 휙휙 돌렸는데 3바퀴째에 호랑이가 공중으로 날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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